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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 도운 혈맹 북한, 캄보디아 침공 땐 “의리 없는 국가” 관계 냉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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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베트남 전쟁에 파병된 북한의 미그기 조종사들. [연합뉴스]

베트남 전쟁에 파병된 북한의 미그기 조종사들. [연합뉴스]

오는 27일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는 베트남은 북한과 가깝고도 먼 나라다. 때로는 혈맹으로, 때로는 소원한 관계를 되풀이했기 때문이다. 북한과 북베트남은 1950년 국교를 수립했다. 57년 7월엔 호찌민 베트남 주석(69년 사망)이 평양을, 58년 11월과 64년 10월엔 김일성 북한 주석(94년 사망)이 하노이를 각각 방문하며 우의를 다졌다. 북한은 1970년대 베트남 전쟁 때 공군 조종사를 파견해 북베트남을 도왔다. 1966년 9월 21일, 미그-17과 미그-21 전투기 조종사를 파견하겠다는 북한의 요청을 베트남 공산당이 수용하면서다. 당시 북한에서 파견된 87명의 미그기 조종사들이 미국 전투기들과 맞섰다. 14명(정비사 2명 포함)이 전사했고, 이들을 위한 묘지가 하노이에 조성됐다. 2002년 북한에 유해는 모두 송환됐지만 묘터는 계속 관리되고 있다. 베트남전 때의 이 같은 물적·인적 지원을 계기로 양국은 ‘형제국’이라 부를 만큼 끈끈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탈출한 시아누크 캄보디아 국왕 #김일성이 평양에 거처 마련해줘

시아누크 전 캄보디아 국왕이 평양 망명(1978~91년) 시절 생활했던 장수원. [중앙포토]

시아누크 전 캄보디아 국왕이 평양 망명(1978~91년) 시절 생활했던 장수원.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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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78년 12월 상황은 반전됐다. 공산 통일을 이룬 베트남이 전쟁 때 소련 등으로부터 지원받은 무기를 앞세워 캄보디아를 침공하면서다. 전직 정부 당국자는 “베트남이 캄보디아를 침공하기 전 김일성 주석에게 관련 내용을 먼저 통보했고, 김 주석은 이에 대해 극력 반대했다”며 “베트남이 침공을 강행하자 김 주석은 베트남을 ‘의리 없는 국가’로 비난하고 관계를 끊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김 주석은 캄보디아를 탈출한 고 노로돔 시아누크 국왕을 평양으로 초청해 거처를 마련해 줬다”며 “시아누크 국왕이 본국에 돌아갈 때까지 13년 동안 거처를 마련해 줬다”며 “북한과 베트남은 서로 대사를 소환하며 경색됐다”고 귀띔했다.

90년대 말 베트남이 북한과의 관계 강화를 천명한 뒤 우호협력 관계를 다졌으나 2004년 베트남에 머물던 탈북자들이 대거 한국으로 입국하자 다시 냉각기에 들었다. 하지만 이듬해 베트남이 대북 쌀 지원에 나서며 개선의 길을 걷기도 했다.

특히 북한 당국이 2017년 2월 말레이시아에서 발생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 독살사건에 베트남 국적 여성 도안 티 흐엉을 고용한 것으로 나타나자 양국 관계는 다시 냉각기에 접어들었다. 외교 소식통은 “김정남 독살 사건에 부인으로 일관하던 북한이 지난해 말 베트남 당국에 비공식적인 유감을 표명한 것으로 안다”며 “당시 사건에 인도네시아 여성(시티 아이샤)도 포함돼 있지만 인도네시아 당국에는 아무런 설명이 없었던 점으로 미뤄 북한이 지난해부터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베트남과 관계 개선에 나선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소식통은 “김 위원장의 베트남 방문을 계기로 양국 관계를 재확인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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