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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1년]'대한골리' 달튼 "난 올림픽 위해 귀화한게 아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달 30일 안양빙상장에서 만난 한국아이스하키 귀화선수 맷 달튼이 한국여권을 들어 보이고 있다. 안양=임현동 기자

지난달 30일 안양빙상장에서 만난 한국아이스하키 귀화선수 맷 달튼이 한국여권을 들어 보이고 있다. 안양=임현동 기자

2018 평창 올림픽 당시 한국 귀화선수 15명이 뛰었다. 하지만 올림픽이 끝난 뒤 태극마크를 반납한 선수가 속출하고 있다. 피겨스케이팅 아이스댄스에서 민유라와 호흡을 맞춘 알렉산더 겜린은 후원금을 놓고 갈등을 빚으며 갈라섰다. 여자아이스하키와 바이애슬론 귀화선수들도 잇따라 한국을 떠났다. 단기적인 성과를 위한 '일회성 귀화'라는 지적이 나왔다.

평창 귀화선수들 태극마크 반납 속출에도 #아이스하키 달튼, 변함없이 한국 골문 지켜 #"여권 들고 내국인 줄서, 몰라본 직원 사과 #육군 특공대원 체험, 한국 사랑 더 커져" #"이순신 마스크? 이순신 같은 정신 위해 #더 좋은 제의왔지만, 한국 좋아 남았다"

하지만 변함없이 한국아이스하키 대표팀 골문을 지키고 있는 맷 달튼(33·한국명 한라성) 같은 선수도 있다. 2014년 국내 실업팀 안양 한라에 입단한 달튼은 2016년 한국에 귀화했다. 아시아 무대에서도 고전하던 한국아이스하키는 달튼과 함께 기량이 급성장했다. 2017년 세계선수권 월드챔피언십(1부 리그)으로 승격하는 기적을 연출했다. 평창올림픽에서는 세계 6위 체코(1-2패), 세계 4위 핀란드(2-5패), 세계 1위 캐나다(0-4패)를 맞아 선전했다.

최근 안양빙상장에서 만난 달튼은 "올림픽 때 스포트라이트를 받다보니 세계 여러팀에서 제의가 왔다. 하지만 난 한국에 있는게 더 좋다"면서 "난 올림픽만을 위해 귀화한게 아니다. 올림픽은 그저 한 부분일 뿐이다. 내가 한국하키를 위해 역할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지난달 30일 안양빙상장에서 만난 한국아이스하키 귀화선수 맷 달튼이 한국여권을 들어 보이고 있다. 안양=임현동 기자

지난달 30일 안양빙상장에서 만난 한국아이스하키 귀화선수 맷 달튼이 한국여권을 들어 보이고 있다. 안양=임현동 기자

평창올림픽이 열린지 1년이 지났다. 되돌아보면 어떤가.
"휴대폰 사진첩을 보다가 올림픽 사진이 나오면 그 순간 생각이 난다. 좋은 기억이었고 또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올림픽에서 조국 캐나다를 상대한 기분은.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이었다. 우리 가족들은 어릴적부터 친했던 캐나다 서드 골리 가족들과 관중석에서 앉아서 지켜봤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어색한 감정이 들었다."
2014년 한라에 입단했을 당시, 가족들이 북한 관련 뉴스를 보고 걱정을 많이 했다던데.
"처음에는 걱정했던 가족들이 벌써 한국에 3~4번이나 왔다. 오프시즌 때 캐나다 이웃들과 마주치면 '전쟁에 참전하는거 아니냐'고 묻는데, 이제는 대답하기 귀찮을 정도다. 이제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건 낭비다(웃음)."
캐나다 여권, 한국여권, 여권이 총 2개다.
"한국에 들어올 때 한국 여권을 쓴다. 한번은 인천공항에서 내국인 줄에 서있었는데, 직원이 '줄을 잘못 섰다'고 하더다. 한국 여권을 보여주니 '미안하다'고 했다."
대한민국 육군 체험에 나선 아이스하키 안양 한라 맷달튼. [사진 안양 한라]

대한민국 육군 체험에 나선 아이스하키 안양 한라 맷달튼. [사진 안양 한라]

지난해 11월 육군수도군단에 입소해 특공대원 체험을 했다.
"어릴 적부터 국가를 지키는 군인에 대한 존경심을 갖고 있었다. 영화처럼 아름다운 장면을 상상했는데 총성소리가 났고, 훈련이 힘들었다. 골리 장비는 동료들과 담소를 나누면서 20분 걸쳐 착용하는데, 부대에서는 전투복과 장비를 30초 이내에 신속하게 착용했다. 얼굴에 위장크림도 칠하고 각개전투도 했다. 비록 단 하루였지만 국가를 지킨다는게 이렇게 힘든줄 몰랐다. 한국인과 한국에 대한 사랑이 더 커졌다."
2017년 12월16일 핀란드와 경기 중 이가 깨졌는데, 끝까지 골문을 지켰다.
"상대가 때린 퍽이 마스크를 강타했다. 너무 충격이 커서 '대'자로 뻗었다. 입안에서 뭔가 씹혀서 처음에는 마스크 파편인줄 알았다. 뱉어보니 깨진 이였다. 아프지만 게임을 끝내야했다. 참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실 코치진이 만류하길 바랐는데 가만히 있더라(웃음)."
한국팬들이 '갓(god, 신)'을 합해 '갓달튼'이라 부르는데.
"오글거린다(웃음). 멋진 별명을 붙여주셔서 감사하다."
한국 남자 아이스하키는 1982년 일본에 0-25 참패를 시작으로 34년간 1무19패에 그쳤다. 귀화선수들이 가세한 뒤 2015년 3-0으로 이겼고, 2017년 4-1 완승을 거뒀다.
"선수들이 처음으로 일본을 꺾은 뒤 너무 좋아하더라. 일본과 역사적인 부분이 있다는걸 나중에 알게 됐다. 앞서 한라 소속으로 일본 오지 이글스를 연파했을 때도 기분이 좋았다."
지난해 2월 3일 인천 선학국제빙상장에서 열린 남자아이스하키 국가대표 평가전 한국과 카자흐스탄의 경기. 한국 골리 맷 달튼이 경기 전 몸을 풀고 있다. 마스크에 있는 그림은 이순신 장군. [연합뉴스]

지난해 2월 3일 인천 선학국제빙상장에서 열린 남자아이스하키 국가대표 평가전 한국과 카자흐스탄의 경기. 한국 골리 맷 달튼이 경기 전 몸을 풀고 있다. 마스크에 있는 그림은 이순신 장군. [연합뉴스]

평창올림픽 마스크에 이순신 장군을 새겼는데, 정치적 표현을 금지하는 국제올림픽위원회 규정 탓에 쓰지 못했다.
"일단 올림픽을 앞두고 한국역사를 공부했다. 당시 약팀으로 평가받던 한국아이스하키가 처한 상황이, 이순신 장군의 상황과 비슷했다. 그래서 이순신 장군과 같은 정신으로 임하겠다는 표현이었다. 하지만 대회 일주일을 앞두고 못쓴다는 이야기를 들어 실망이 컸다. 나중에 세계선수권에 착용하고 뛰었다."
평창올림픽 귀화선수 중 태극마크를 포기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올림픽 때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인지도가 올라가다보니 세계 여러팀, 더 좋은 리그에서 제의가 왔다. 잠시 생각해보긴했지만, 난 한국에 있는게 더 좋다. 우선 귀화를 통해 올림픽을 뛸 수 있게돼 영광이다. 하지만 난 올림픽만을 위해 귀화한게 아니다. 다른선수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게 하키인생에서 올림픽은 그저 한 부분일 뿐이다. 한국에 친구들도 있고 좋은 기억들도 많다. 내가 한국하키를 위해 역할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선수들이 귀화선수들과 함께 뛰며 기량이 발전했다.
"난 한국선수들이 매일매일 노력하고 발전하는 모습이 좋다. 아이스하키는 일시적인 귀화가 아니다. 귀화선수 라던스키는 한국팀에서 10년간 뛰었다. 올림픽 때 누군지 모르는 선수와 뛴게 아니라, 오랜시간 함께 지내고 매일 훈련하는 선수와 함께 뛰었다. 처음에는 한국선수와 귀화선수의 기량차가 큰게 사실이었지만, 이제는 확실히 줄어든 것 같다."
캐나다 출신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수문장 맷 달튼. [사진 대한아이스하키협회]

캐나다 출신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수문장 맷 달튼. [사진 대한아이스하키협회]

나중에 어린 아들에게 '아빠가 올림픽에 한국대표로 뛰었다'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겠다.
"모든 아버지가 희망하듯, 아들에게 아빠가 자랑스러웠다는걸 말해주고 싶다. 다행히 올림픽 때 와서 사진을 함께 찍었다. 언젠가 아들에게 한국생활을 들려줄 그런 날이 올거다. 나중에 아들과 안양 삼겹살집에 가서 돌판에 김치와 함께 구워 먹겠다. 오프시즌 때 캐나다에서 너무 먹고 싶어서 한국식당을 갔는데 그 맛이 안나더라. 한국에 돌아와 첫 훈련을 마친 뒤 곧바로 달려갔다(웃음)."
앞으로 한국에서 몇년간 더 뛸 것 같나.
"플레이는 3~4년 정도 하면서 더 머물고 싶다. 한국에 계속 있겠다는 건 거짓말이고 언젠가 돌아가야 한다. 하키를 떠나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크다. 부모님도 나이가 드셨고, 시스터도 아이를 낳았고, 친구들이 결혼식을 올렸는데, 곁에 있어주지 못했다. 언젠가 캐나다로 돌아가 가족들과 추억을 나누고 싶다."
한국아이스하키 선수로서 목표는.
"경기도 경기지만, 품행이 바른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 한국하키 발전을 위해 힘쓴 선수로 남고 싶다. 지금도 그렇겠지만, 앞으로도 도움 줄 수 있는 선수로 남겨지고 싶다." 

안양=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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