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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대우조선 빠진 조선사 빅2 시대…청사진은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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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김도년 경제정책팀 기자

김도년 경제정책팀 기자

현대중공업그룹이 대우조선해양 인수 의사를 밝힌 직후인 지난 1일. 국내 신용평가사들은 이번 인수합병(M&A)은 현대중공업그룹 신용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당분간 대우조선의 안정적 수익성 확보는 불투명한 반면, 현대중공업그룹의 재무 부담이 커질 것이란 이유에서다. 옛 주인인 KDB산업은행은 ‘큰 짐’을 덜겠지만, 새 주인은 이를 떠안을 수 있다는 의미다.

출혈경쟁 사라져 경쟁력 향상? #조선업 회복 안 되면 동반부실 #구조조정 과정도 곳곳에 지뢰 #철저한 대책 따라야 성공한 M&A

유건 한신평 기업평가본부장은 “현대중공업그룹은 대우조선을 편입하는 과정에서 증자 참여(3500억원), 대우조선이 발행한 영구채(2조3000억원) 상환 등 실질적인 재무 부담 증가가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승자의 저주’ 없는 조선업 구조 개편이 이뤄질 수 있을까. 지난달 31일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산경장 회의)를 열어 추진키로 한 대우조선 매각 방안에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시장에선 매머드급 조선사 3곳이 2곳으로 줄면, 출혈 경쟁이 누그러져 조선업 경쟁력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감도 나왔다.

그러나 한편에선 현대중공업그룹도 인력 구조조정 중이었던 만큼, 업황이 회복되지 못하면 동반 부실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당장 한신평은 대우조선 인수가 그룹 전반의 재무 구조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계열사인 현대오일뱅크의 신용도부터 재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현대중공업그룹이 대우조선을 인수하면, 전 세계 조선 업황에 그룹 운명이 좌우될 여지가 더 커지게 된다. 인수 후 그룹 내 조선 사업 비중은 전체 매출액(지난해 9월 말 기준)의 32%에서 45%로 확대된다. 반면 정유 사업 비중은 인수 전 53%에서 43%로 줄어든다.

조선업은 경기에 따라 실적이 좌우되는 대표적인 ‘경기 민감 업종’이다. 기업의 실적 희비가 세계 경기에 따라 들쭉날쭉할 가능성이 더 커진다. 김연수 NICE신용평가 선임연구원은 “현대중공업의 조선업 비중이 확대될 것으로 보이는 점은 향후 신용도 개선을 제한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긍정적·부정적 전망이 혼재된 상황에서 시장은 정부의 다음 스텝에 더욱 주목하고 있다. 정부가 조선업 ‘빅2’ 체제에 맞는 경쟁력 강화 청사진을 내놔야 한다는 것이다. 대우조선을 인수할 회사는 몸집 비대화로 업황 대응력이 약해질 수 있고, 인수 기회를 놓친 회사는 원가 경쟁력 저하와 시장 점유율 하락이 예고돼 있다.

여기에 중복 인력 감축 등 구조조정 과정에선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노사 갈등과 독과점 논란, 헐값 매각 시비, 매각 과정의 불투명성 문제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정부가 대우조선의 ‘민간 주인 찾기’에만 골몰한 나머지, 다음 대책을 생각하지 못하면 M&A는 오히려 득보다 실로 돌아올 수도 있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현 정부의 산업 구조조정 역량에 대한 불신이 깊다. 산업 구조조정은 다양한 전문가와의 의사소통을 통해 첨예한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게 필수적이다. 그러나 정부가 콘트롤타워로 내세운 ‘산경장 회의’는 지난해 5월 이후 8개월 동안 ‘개점휴업’ 상태였다. 매월 1회 개최를 원칙으로 하지만, 이 규정조차 사문화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말 열린 산경장 회의에서도 대우조선 매각 방안만 안건에 올랐다. 6조원대 ‘혈세’ 지원과 영업력 강화 대책 등이 포함된 현대상선 경영 정상화 방안은 지난해 10월 작성됐지만, 회의 안건에 오르지 못했다. 산업은행·한국해양진흥공사 등 실무기관에선 산경장 회의 공백으로 발 빠른 구조조정 업무도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허정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산경장 회의가 특별한 구조조정 이슈가 벌어져야만 열리는 것은 문제”라며 “정부 경제 정책이 소득주도 성장에만 방점이 찍혀 있다 보니, 주력 산업 경쟁력 강화 등 중요한 문제에는 소홀하게 대처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도년 경제정책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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