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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박하는 美, 합의 강조 中… 무역협상 입장문 속 온도차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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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31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이 류허 중국 부총리(오른쪽 첫째) 일행을 백악관으로 초대해 만났다. [AP=연합뉴스]

1월 31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이 류허 중국 부총리(오른쪽 첫째) 일행을 백악관으로 초대해 만났다. [AP=연합뉴스]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의 휴전 종료 시한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지만, 무역협상 합의 가능성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지난해 12월 1일 휴전 이후 지금까지 합의된 사항은 중국이 미국산 상품 구매를 늘리기로 한 점, 그리고 협상을 계속 이어나간다는 점, 두 가지뿐이다.

30~31일 워싱턴서 고위급 무역협상 #"진전 있었다"면서 합의 내용 없어 #논의 의제 나열 백악관 성명과 달리 #中, 농산물 구입 확대 등 합의 강조 #2월 말 트럼프-시 회담서 타협할까

양국은 잇따른 협상을 통해 지식재산권 보호와 기술 강제 이전, 중국 산업 구조 개혁 등을 협상 의제로 올려놓는 데 합의했고, 논의를 진행해 왔다. 하지만 하나같이 민감한 주제여서 아직 어느 한 주제도 합의 사항을 발표하지 못했다.

미·중 협상 대표단은 30~31일(현지시간) 이틀간 워싱턴에서 고위급 무역협상을 마친 뒤 각각 "진전이 있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본질적인 문제에서는 입장차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양국 입장차는 각각 발표한 입장문에서 명확하게 드러났다.

1월 30~31일 이틀간 미국과 중국 간 고위급 무역협상이 워싱턴에서 열렸다. 류허 중국 부총리(왼쪽 첫째)를 비롯한 중국 대표단과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오른쪽 둘째),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오른쪽 셋째)를 비롯한 미국 대표단. [AP=연합뉴스]

1월 30~31일 이틀간 미국과 중국 간 고위급 무역협상이 워싱턴에서 열렸다. 류허 중국 부총리(왼쪽 첫째)를 비롯한 중국 대표단과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오른쪽 둘째),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오른쪽 셋째)를 비롯한 미국 대표단. [AP=연합뉴스]

건조한 미국 입장 발표

미국 측은 백악관 성명을 통해 "진전이 있었지만,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상 만료 시한인 3월 1일까지 만족할만한 결과가 도출되지 않으면 예정대로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를 인상하겠다"고 강조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90일간의 휴전 기간 안에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현재 부과하고 있는 200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율을 기존 10%에서 25%로 인상할 것이라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이를 실천하겠다는 으름장이다.

백악관 성명은 건조했다. 양측이 논의한 협상 의제 7가지를 나열했다. ①미국 기업에 대한 기술이전 강요 ②중국에서의 지식재산권 보호 강화 필요성 ③미국 기업에 대한 관세 또는 비관세 장벽 ④중국의 사이버 절도 ⑤보조금과 국유기업 등 시장 왜곡으로 인한 공급 과잉 ⑥ 미국의 대중 수출을 약화하는 시장 장벽 ⑦ 위안화 환율이다.

양측은 미국의 막대한 대중 무역적자에 대해 "논의"했다고 전했다. 중국의 미국산 상품 구매는 협상에서 "중요한 부분이었다"고만 언급했을 뿐 중국이 미국산 대두 등을 구매하기로 합의했다는 점은 언급하지 않았다.

협상을 마친 뒤 백악관을 방문한 류허 중국 부총리가 "미국산 대두를 하루 500만t 구매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 농민들이 기뻐할 것"이라고 화답했다.

중국의 미국산 농산물 구매 확대는 앞서 여러 차례 무역협상에서 중국이 제안한 내용이다. 이후 미국 정부는 "하루 500만t"이 아니라 "500만t이며, 시점은 특정되지 않았다"고 정정했다.

이번 협상과 관련해 백악관 성명에는 "합의(agree)"라는 표현이 한 번 등장하는데, 합의 이행과 관련된 내용이다. "양측은 어떤 결론이 나오더라도 완전하게 집행 가능해야 한다(fully enforceable)는 데 합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언론 질의응답에서 협상단이 "엄청난 진전(tremendous progress)"을 이뤘다면서도 "그렇다고 합의가 된 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미국 측 협상대표인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미국이 요구하는 중국의 구조 개혁에 대해 깊이 있고 상세한 논의를 했다"면서도"양측은 협상안 초안 작성 작업을 이제 막 시작한 단계"라고 말했다. 합의가 나오기까지 갈 길이 멀다는 의미다.

1월 30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미중 고위급 무역협상에 중국 측 협상대표로 참석한 류허 중국 부총리. [AP=연합뉴스]

1월 30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미중 고위급 무역협상에 중국 측 협상대표로 참석한 류허 중국 부총리. [AP=연합뉴스]

합의 강조한 중국 입장 발표

중국 측은 관영 신화통신을 통해 비슷한 입장을 내놨다. 신화통신은 중국 관료를 인용해 "무역협상은 중대한 진전을 이뤘으며, 양측은 솔직하고 건설적인 논의를 했다"고 전했다.

미·중 양측이 이번 협상에서 지식재산권 보호와 기술 이전 문제를 매우 중시하면서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고 전했다. 이를 포함해 중국 측 입장에는 "합의"라는 표현이 세 번 나온다.

중국이 무역협상에서 논의했다고 밝힌 협상 의제는 백악관이 성명을 통해 발표한 7가지 의제보다 협소하다. 백악관 발표 의제 7가지 가운데 중국 측이 언급하지 않은 의제는 중국의 사이버 절도, 보조금과 국유기업 등 시장 왜곡으로 인한 공급 과잉, 위안화 환율 문제 등이다.

대신 중국 측은 "공정한 시장 경쟁 환경을 만들라는 미국의 요구에 적극적으로 응하기로 했다"고 포괄적으로 언급했다.

또 중국이 미국산 상품 구매를 확대하기로 한 점을 중국 측은 명확하게 밝혔다. "중국은 미·중 무역 균형을 위해 미국산 농산물, 에너지, 상품과 서비스의 수입을 크게 확대하기로 했다." 이어 "미국산 수입 확대는 중국 경제의 질적 발전과 인민의 더 나은 삶을 위한 요구를 충족하기 위한 것"이라고 덧붙여 수입 확대의 명분을 함께 언급했다.

2월 말 트럼프-시진핑 '빅딜' 하나

이번 고위급 협상의 중요한 결과물은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만나기로 합의한 점이다. 미·중 정상회담은 중국 측이 먼저 제안했다.

무역협상 중에 중국 대표단은 미국 측에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중국 남부 휴양지 하이난다오에서 만날 것을 제안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전했다.

시점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난 직후인 2월 말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익명의 소식통이 전했다. 로이터통신은 트럼프-김정은 회담 일정과 트럼프-시진핑 회담 일정의 연계 가능성을 전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서 시 주석과의 정상회담 가능성을 언급했다. 그는 트위터에 "나와 내 친구 시 주석이 이른 시일 안에 만나 오래된, 그리고 복잡한 문제들을 논의하고 합의하기 전까지 최종 합의안은 나오진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시진핑 정상회담을 앞두고 2월 중순께 미·중 고위급 무역협상이 다시 열릴 예정이다. 라이트하이저 대표와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을 단장으로 하는 미국 협상단이 베이징을 방문해 협상을 이어간다.

블룸버그통신은 "협상을 이어 나가겠다고 양측이 합의한 점이 무역전쟁 해소에 대한 희망을 키우고 있다. 하지만 양측이 지식재산권 보호와 중국 정부의 시장 개입과 같은 난제에 대해 시각차를 좁혔다는 근거는 거의 없다"고 평가했다.

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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