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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개혁 외치며 검찰부터 찾아···정치권의 '경찰패싱'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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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정양석 수석원내부대표 등이 29일 오전 서초동 대검에서 항의 방문 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유한국당 정양석 수석원내부대표 등이 29일 오전 서초동 대검에서 항의 방문 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 검찰이 아닌 정권의 시녀."  "검찰은 정권 입맛에 맞는 공권력 행사 기관으로 남을 것."

[현장에서]

29일 오전 대검찰청을 찾은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검찰을 향해 독설을 쏟아냈다. 항의 방문단 대표로 참석한 정양석 원내수석부대표는 "검찰이 한국당 고발 사건을 대검이나 중앙지검에서 수사하지 않고 분산시켜 쪼개기 수사를 벌이고 있다"며 검찰을 비판했다. 한국당 '손혜원랜드게이트' 진상규명TF'의 김현아 의원은 "검찰의 공정한 수사만이 특검이나 국정조사로 이어지지 않게 하는 첫 단추"라며 은근한 압박도 가했다.

"검찰 개혁하라"는 한국당…한달새 16건 검찰 고발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항의방문에 앞서 규탄 발언을 하고 있다. 이날 자유한국당은 신재민·김태우 사건과 손혜원 의원 부동산 투기 의혹 등과 관련해 철저히 수사할 것을 촉구 했다. [뉴스1]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항의방문에 앞서 규탄 발언을 하고 있다. 이날 자유한국당은 신재민·김태우 사건과 손혜원 의원 부동산 투기 의혹 등과 관련해 철저히 수사할 것을 촉구 했다. [뉴스1]

한국당은 지금의 검찰을 ‘정치 검찰’로 규정하고 있다. 지난해 1월 법조 개혁을 위한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첫 전체회의에서 당시 장제원 한국당 의원은 "정치검찰을 혁신하고 긴 세월 동안 쌓인 사법부의 구태를 혁신해서 국민 검찰, 국민 사법부로 돌려드리는데 역량을 쏟아붓겠다"라며 '검찰 개혁'에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정권이 바뀐 뒤 나온 한국당의 검찰 불신 발언은 셀 수 없이 많다.

하지만 한국당의 행보를 보면 검찰이 과연 '개혁 대상'인지 갸우뚱하게 된다. 이날 정 원내수석은 "지난해 12월 20일 임종석 전 실장과 조국 민정수석 등에 대해 직권남용과 직무유기, 민간인 사찰과 블랙리스트 등 혐의로 고발하는 등 지난 20일까지 총 16건의 고발장과 수사 의뢰가 있었다"고 밝혔다. 개혁 대상인 검찰에 사건을 무더기로 맡기고 있는 셈이다. 현장을 지켜본 한 검찰 관계자는 "정치검찰이라고 자꾸 비판하면서 왜 자꾸 정치 사건을 검찰로만 가져오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검찰총장 출장 뒤늦게 알고 나경원 원내대표 불참 

이날 회견을 마친 한국당 의원 10여명은 검찰 수뇌부에 항의 뜻을 전달하기 위해 대검 청사 안으로 들어갔지만 문무일 검찰총장을 만나진 못했다. 문 총장이 25일부터 31일까지 중국·베트남 등을 방문하는 해외 출장 중이기 때문이다. 한국당은 이를 모른 채 항의 방문 계획을 세웠다가 전날 밤 문 총장이 출장 중인 사실을 뒤늦게 전해 들었다고 한다. 한국당 관계자는 "검찰총장을 만나지 못하게 되자 모양새를 고려해 나경원 원내대표는 항의 방문에 불참했다"고 전했다. 한국당의 준비 부족이 여실히 드러난 촌극이 아닐 수 없다.

29일 자유한국당 당대표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한 황교안 전 국무총리(왼쪽)과 같은날 황 전 총리를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소한 옛 통합진보당 국회의원을 지낸 김미희 전 의원. [연합뉴스·뉴스1]

29일 자유한국당 당대표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한 황교안 전 국무총리(왼쪽)과 같은날 황 전 총리를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소한 옛 통합진보당 국회의원을 지낸 김미희 전 의원. [연합뉴스·뉴스1]

이날 검찰을 찾은 정치인들은 또 있다. 해산한 통합진보당 소속 국회의원이었던 김미희·김재연·오병윤 전 의원은 황교안 전 국무총리에 대해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및 공무상비밀누설 혐의 등으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김미희 전 의원은 "황 전 총리는 직권을 남용해서 헌법재판소를 압박하고, 통진당을 강제해산으로 몰아갔다"며 취지를 설명했다. 검경수사권 조정 등 검찰 개혁에 목소리를 높이던 이들도 정작 자신과 관련된 사건에선 검찰을 찾았다.

'검찰 힘 빼기' 외친 정부·여당도 고발사건 모두 검찰로…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의 페이스북 소개 사진. [조국 민정수석 페이스북 캡처]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의 페이스북 소개 사진. [조국 민정수석 페이스북 캡처]

'검찰 힘 빼기'를 주장하는 정부와 여당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의 페이스북 소개 사진엔 "검찰개혁은 행정부와 여당이 협력해 법안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했고 사개특위에서 의미 있는 진전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현재 국회 의석 구조를 생각할 때 행정부와 여당의 힘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국민 여러분, 도와주십시오."라고 적혀있다. 검찰 개혁이 마치 한국당의 반대로 더디게 진행되는 것처럼 느껴지는 문구다.

하지만 실상은 달라 보인다. 청와대 특별감찰반원이었던 김태우 수사관의 폭로가 이어지자 청와대는 김 수사관을 공무상비밀누설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기획재정부 역시 신재민 전 사무관의 폭로에 대해 공무상비밀누설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문재인 정부가 지난해 1월 '권력기관 개혁방안'을 발표한 이후 정부·여당은 여야가 맞붙은 정치적 사건 10건을 모두 검찰에 고발하거나 수사 의뢰했다. 정치권이 일만 있으면 검찰을 찾아 오히려 검찰에 힘을 더 실어주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만하다.

정치권의 잇따른 검찰 고발에 대해 법조계는 비판 여론 일색이다.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을 지낸 김한규 변호사는 "검찰개혁의 일환으로 검경수사권 조정이 이슈인데, 수사기관의 도움이 필요하면 정치권 주장대로 일차적 수사권이 있는 경찰에 고소·고발을 해야 한다"며 "검찰한테 의존하면 검찰 부담도 늘어나고 정치권에서 얘기하는 검찰 개혁도 요원해진다"고 지적했다. 검사 출신인 김용원 변호사는 "정치적 사건은 기본적으로 국민 여론에 호소해 풀어나가야 할 문제"라며 "정치인들이 검찰에 신세를 지게 되고 보은을 하면서 정치 검찰이 명맥을 유지한다"고 꼬집었다.

최근 만난 한 검찰 간부급 인사는 "검경수사권 조정은 결코 안 될 것"이라며 "검찰을 이용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다름 아닌 정치인들"이라고 꼬집었다. 검찰을 통해 정쟁을 벌이고 있는 정치인들이 검찰 개혁의 가장 큰 걸림돌이란 지적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김기정 기자 kim.ki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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