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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재현의 시선

박근혜 사면…누가 방울을 달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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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박재현
박재현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박재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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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전 국무총리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특별사면 추진 여부를 묻는 말에 ‘통합’이란 말로 피해 나갔다. 그는 최근 자유한국당에 입당하면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박 전 대통령의 사면은 통합의 관점에서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법률가인 그는 현 상황에서 박근혜에 대한 사면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을 알고 있으면서도 정치적 언어를 선택했다.

늑장 재판하는 대법원 사실상 직무유기 논란 #대통령 지지도 하락시 정치적 모험 감행할 수도

박근혜를 지지하는 보수세력과 정치권 등에서 나오는 사면설은 정치적 수사에 불과할 뿐 법률적으로는 의미가 없다는 것이 법조계의 시각이다. 하지만 2017년 3월 31일 박근혜가 구속 수감된 이후 22개월째 접어들면서 “정치적 사건은 정치적으로 풀어야 한다”는 의견이 서초동 일대에서도 슬금슬금 나오고 있다. 김영삼 정부 때인 1995년 말 내란과 특가법상 뇌물 등 혐의로 구속된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2년만인 1997년 12월 사면된 전례를 떠올린 것 같다. 당시 외환위기로 코너에 몰린 집권층이 화합이란 명분을 내세운 것이다.

박근혜는 국정 농단(징역 25년)과 국정원 특활비 수수(징역 6년), 공천 개입(징역 2년) 등의 혐의로 지난해 모두 33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 중 공천 개입 혐의는 형이 확정됐지만, 국정농단과 뇌물 혐의는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그 때문에 형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선 대통령도 사면권을 행사할 수 없다. 일부 태극기 부대의 주장처럼 “탄핵과 기소는 원인 무효이기에 사면의 방식이 아니라 무조건 석방하라”는 주장도 현실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문제는 대법원이 대법원 1부에 사건을 배당한 뒤 5개월째 어떠한 액션도 취하지 않고 있는 데 있다. 통상의 경우 구속 피고인은 1, 2, 3심에서 각각 6개월 안에 재판을 끝내도록 권유하고 있다. 불가피할 경우 2개월 단위로 끊어 최대 네 차례 구속 기간 연장이 가능해 박근혜의 구속 만기일은 올 4월 16일이다. 일각에선 “세 차례만 가능해 2월 16일이 구속 만기다”라는 주장을 내놓지만, 소수설이다. 박근혜의 4월 석방론이 나오는 것은 그래서다. 물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대법원의 늑장처리는 박근혜 사건과 같이 연결된 최순실씨, 김기춘 전 비서실장, 이재용 삼성 부회장 재판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이는 박근혜 사건 특별검사법에도 위배되는 것이어서 관련 재판부가 사실상 직무유기를 하는 셈으로 볼 수 있다. 관련 사건 특별검사법은 “판결의 선고는 1심은 공소제기일부터 3개월 이내, 2, 3심은 전심의 판결선고일로부터 각각 2개월 이내에 해야 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특별검사가 공소 제기한 사건의 재판은 다른 재판에 우선해 신속히 해야 한다는 규정에 따른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박영수 특검이나 검찰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대법원이 결국 사건을 대법관 전원이 모여있는 전원합의체로 넘기는 방식으로 시간을 끌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 올해 말이나 내년 초로 넘어갈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여기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사법 농단 혐의로 구속 수감되는 사법부 사상 초유의 사태를 겪고 있는 것도 법원을 움츠러들게 하고 있다. “참담하다”는 김명수 대법원장의 말처럼 법원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정치권, 특히 청와대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는 사법적 상황이 만들어진 것으로 봐야 한다. 독자적으로 재판을 이끌 가능성이 작다는 의미다.

그럼, 문재인 대통령은 박근혜에 대한 사면을 과연 결심할 수있을까. 67세인 박근혜는 이미 세상과 단절한 상태이다. 그는 구속 이후 외부인 접견을 일절 하지 않고 있다. 유영하 변호사와 지지자들이 보내주는 책 등이 유일한 세상과의 통로이다. 그가 33년의 형량을 채우리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박재호 민주당 의원은 유튜브를 통해 “문 대통령은 절대 박근혜를 사면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면을 얘기하는 사람들은 문 대통령의 성격을 모르고 하는 말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아킬레스건이라 할 수 있는 경제난이 계속되고 이로 인한 지지도 하락이 이어질 경우 박근혜 사면론은 여권 내에서 불거질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내년 4월 총선 전 어떤 방식으로든 박근혜를 사면해 ‘박근혜 신당’ 등의 야권 분열 구도를 만들지 않겠냐는 게 그 근거다.

실제로 지난해 말 청와대 일부 참모들은 사면의 득실을 조심스럽게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면 이후 그의 정치적 잠재력에 대한 평가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필요한 건 법률적 조치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 대법원이 사건을 전원합의체로 넘긴 뒤 특검과 검찰의 행보를 살펴보는 게 박근혜 사면론의 실체에 접근할 수 있는 가늠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누가 먼저 사면이라는 화두에 방울을 달까. 제왕의 칼에 비유되는 사면권을 문 대통령은 어떻게 다룰까. 사면의 정치학이 위기의 돌파구로 이뤄질지, 아니면 정치개혁을 명분으로 내세운 야권 분열의 승부수로 다뤄질지도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다.

박재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