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국회 재판 청탁 의혹, ‘침묵의 카르텔’부터 깨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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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국회의원들의 ‘재판 청탁’ 의혹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인 사건 선처를 대법원 측에 청탁했다는 의혹에 이어 자유한국당 현직 의원 관련 의혹까지 불거져 나왔다. 주목되는 건 두 정당이 꼬리에 꼬리를 문 채 ‘이중 잣대’의 행태를 보인다는 사실이다.

민주당은 서 의원 문제에 대해 그 경위를 조사하지도, 사과하지도 않고 있다. 서 의원이 지난 17일 원내수석부대표·상임위원을 사퇴한 게 전부다. 심지어 일부 의원들은 “관행일 뿐”이라며 동정론을 펴고 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해 “재판 독립을 훼손한 반헌법적 범죄행위로 반드시 처벌받아야 한다”(21일 이해찬 대표)면서 정작 자기 당 의원 의혹에 대해선 눈을 질끈 감고 있는 것이다.

그제 서 의원 징계요구안을 국회에 제출한 한국당도 크게 다르지 않다. 검찰의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추가 공소장엔 노철래·이군현 전 의원 재판 관련 청탁을 했다는 법사위 소속 현직 의원이 등장한다. 그가 누군지는 기재돼 있지 않다. 자체 조사에 들어가는 시늉이라도 해야 할 한국당은 해당 문제에 대해 정치적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다. 오죽하면 “대체 양당이 얼마나 재판청탁을 해왔길래 이 문제를 덮으려고 짬짜미를 하고 있는 거냐”(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개탄이 나오겠는가.

재판 청탁은 사법제도의 근간을 뒤흔드는 일이다. 더구나 국회의원이 정치적 영향력을 이용해 재판을 왜곡시킨다면 그 피해는 전체 국민이 볼 수밖에 없다. 손혜원 의원 의혹에 묻힐 사안이 아니다. 두 당은 상대 당 의혹을 부각하는 데만 급급하지 말고, 즉각 조사와 징계에 들어가는 것은 물론 검찰에 엄정한 수사를 촉구해야 한다. 전수조사를 해서라도 재판에 대한 청탁만큼은 뿌리뽑겠다는 각오를 보여야 한다. 그렇게 국회에서부터 ‘침묵의 카르텔’이 깨지지 않는 한 사법개혁은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