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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 10년'의 트라우마…유족은 그곳서 호떡을 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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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산참사 10주년을 앞둔 19일 참사현장인 서울 용산구 한강로2가 옛 남일당 터에서 주상복합 건물의 공사가 한창이다. 백희연 기자

용산참사 10주년을 앞둔 19일 참사현장인 서울 용산구 한강로2가 옛 남일당 터에서 주상복합 건물의 공사가 한창이다. 백희연 기자

용산참사 10주기를 하루 앞둔 19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강로2가 224-1번지에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10년 전 철거민들이 망루를 설치하고 농성을 벌이던 곳이라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여느 공사장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당시 농성 진압 과정에서 경찰특공대원 1명과 철거민 5명이 사망했던 이 곳에는 2020년 1100세대 규모의 주상 복합이 들어설 예정이다. 시공사들이 사업을 포기하면서 빈 땅으로 남아있다가 2016년 4월 서울시가 용산4구역 정비계획 변경안을 통과시키고 개발이 재개돼 새 건물이 지어지고 있다.

용산참사 10주기…공간은 변했지만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내 시간은 2009년 1월 20일에 멈춰있다”

김영덕씨(64)가 서울 용산구 한강로2가 224-1번지 옛 남일당 건물 앞에서 3.3㎡가 채 되지 않는 비닐 천막 속 리어카 앞에 서서 호떡 장사를 하고 있다. 김씨는 10년 전 참사 당시 4층 건물 옥상에 망루에서 농성 중 사망한 양회성 씨의 아내다. [연합뉴스]

김영덕씨(64)가 서울 용산구 한강로2가 224-1번지 옛 남일당 건물 앞에서 3.3㎡가 채 되지 않는 비닐 천막 속 리어카 앞에 서서 호떡 장사를 하고 있다. 김씨는 10년 전 참사 당시 4층 건물 옥상에 망루에서 농성 중 사망한 양회성 씨의 아내다. [연합뉴스]

이제는 옛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이 자리를 아직 지키고 있는 사람이 있다. 용산참사 희생자 고 양회성씨의 부인 김영덕(64)씨다. 김씨는 작년 10월부터 사고가 발생한 옛 남일당 터인 건설 현장 앞에서 호떡 장사를 하고 있다. 김씨는 “이 앞에 있으면서 건물이 한 층 한 층 올라가는걸 보면 가슴이 찢어지지만 더 심한 고통을 겪으며 죽은 남편 생각에 참고 있다”고 말했다. 하루 종일 추운 곳에 서서 호떡을 부쳐도 손에 쥐는건 3만원 남짓. 어엿한 ‘사장님’이었던 참사 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다. 김씨와 남편은 사고 전까지 재개발구역에서 ‘삼호복집’을 운영했다. 김씨는 “그 때는 그래도 생계에 대해서는 걱정은 안 했다”고 말했다. 10년 전 사고 당시에 대해 물으니 김씨는 마치 어제 일 처럼 시간대별로 생생히 기억하고있었다. 김씨는 “트라우마로 남아서 그렇다”며 “약 없이 살기 힘들 정도로 고통 속에 살고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유가족인 고 이상림씨의 부인 전재숙(75)씨는 이 곳에 건물이 올라간 이후 발길조차 하지 않았다. 전씨는 “쳐다보기 조차 싫은데 뭐하러 가보겠냐”며 “내 시간은 2009년 1월 20일에 멈춰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전씨와 남편은 남일당 건물 바로 뒤에서 ‘레아 호프’를 운영했다. 손님이 끊이지 않아 장사는 잘됐다고한다. 현재는 동대문구에서 작은 도시락 가게를 운영중이다. 전씨는 “도시락 가게가 잘 될게 있겠나. 그냥 밥 먹고 사는 정도”라고 말했다. 전씨의 아들도 몇년 전 남영동 골목에 맥주집을 내며 당시 부모님과 함께 운영했던 ‘레아 호프’의 이름을 그대로 가져왔다. 전씨는 “한이 맺혀서 용산을 못 벗어나고 같은 이름의 가게를 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금 내리실 역은 용산참사역입니다”

2009년 용산참사를 목격한 작가들이 모여 일종의 ‘시국 선언’을 했다. 용산참사를 계기로 ‘6ㆍ9작가선언’을 결성했고『지금 내리실 역은 용산참사역입니다』라는 용산 참사 헌정 문집을 냈다. 여기에 참여한 작가들은 10년간 변한게 없다고 한 목소리로 말했다. 공선옥 작가는 “새로운 건물은 그 공간 자체가 오랜 세월 지녀온 땀과 손길이 축척된 걸 넘어서지 못한다”며 “그걸 다 밀어버리고 돈이 돈을 낳는 공간을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신형철 작가는 “용산참사는 우리 시대 자본의 탐욕이 작동하는 방식을 순수하게 보여줬다”는 생각을 밝혔다. 송경동 시인은 “지금도 철거 현장에서 폭력적인 철거 작업을 하고 있다는 것에 더 주목해야한다”며 “‘야간에는 진압 작전 안 한다’는 정도로는 좀 나아진거라고 얘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10년간 변해온 것들

한창 재개발 공사중인 옛 남일당 터 옆에 아직도 옛 모습을 간직한 먹자 골목이 남아있다. 권유진 기자

한창 재개발 공사중인 옛 남일당 터 옆에 아직도 옛 모습을 간직한 먹자 골목이 남아있다. 권유진 기자

10년 전을 기억하는 상인들은 아직 옆 건물에서 터전을 지키고 있다. 옛 남일당 건물 옆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김모씨는 “그날 새벽 5시가 아직도 생생하다”며 “사방에서 건물에 라이트 쏘고, 물 쏘고 난리였다”고 전했다. 또 다른 가게 주인 A씨는 “10년 새 주위에 몇십 층짜리 건물 들어섰지만 10년 전보다 장사가 안된다”며“수익이 그때에 비해 절반 이상 줄었는데 그에 비해 임대료는 70만원에서 154만원으로 올랐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에도 남일당 건물에 들어설 주상복합은 인기가 많다. 근처 부동산 주인은 “전매제한이 걸려서 값이 얼마나 오를지 알 수가 없다”면서도 “여기가 현재 ‘핫’한 동네다보니 20억은 넘을 것 같다”고 밝혔다.

경찰은 경찰 물리력 사용 기준 등에 대한 개선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지난 14일 민갑룡 경찰청장은 기자간담회에서 “개선 사안 추진 상황을 봐서 적절한 때를 잡아 유가족에게 사과하겠다”고 밝혔다. 용산참사와 관련해 경찰 수장이 사과 의사를 표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다만 경찰 내부에서는 공권력의 과잉 행사는 물론 폭력시위 역시 근절돼야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용산참사 당시 경찰력이 과잉 행사된 정황들이 지난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 등에서 밝혀졌지만 ‘볼트 새총’이나 화염병 등이 동원된 일부 시위대들의 폭력성 역시 재발돼선 안 된다는 것이다. 서울지역에서 근무하는 한 경찰관은 “당시 공권력의 과잉 행사 문제도 경찰이 반성해야하지만, 화염병 등을 사용하는 일부 폭력적 방식의 시위도 근절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날 현장에서 직접 시위대를 만나는 경찰들은 지난 10년간 많은게 바뀌었다고 말한다. 경찰 관계자는 “예전에는 집회나 시위가 조금만 거세질 것 같아도 일단 다 잡아들이고 봤다”며 “영장이 발부가 되든 안 되든 우선 체포해서 조사하고 내보냈다”고 말했다. 그는 “못 잡아오면 ‘왜 못 잡아들였냐’, ‘빨리 잡아와라’ 등의 질책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그러나 용산참사 이후 이제는 그런 문화가 거의 없어졌다”고 전했다.

권유진ㆍ백희연ㆍ윤상언 기자 kwen.y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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