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의원 불법후원' 혐의 황창규 KT 회장 등 7명 송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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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는 황창규 KT 회장(가운데)이 18년 4월 17일 피의자 신분으로 서울 미근동 경찰청에 소환되고 있다. 최정동 기자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는 황창규 KT 회장(가운데)이 18년 4월 17일 피의자 신분으로 서울 미근동 경찰청에 소환되고 있다. 최정동 기자

경찰이 17일 국회의원 불법 후원 의혹에 연루된 황창규(66) KT 회장과 전ㆍ현직 임원 등 7명을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앞선 두번의 사전구속영장 신청이 불발로 돌아간 끝에 결국 불구속 송치로 종결됐다.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2014년부터 4년간 국회의원 99명에게 총 4억3790만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법인 자금으로 후원한 혐의(정치자금법위반)와 업무상 횡령 혐의를 적용해 이들을 검찰에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다”고 이날 밝혔다.

‘후원금 쪼개기’로 의원 후원금 보낸 혐의

경찰에 따르면 앞서 KT는 14,15,17년에는 CR부문(대관부서) 임직원 명의로,16년에는 고위 임원 등 관계자 27명의 명의로 19ㆍ20대 국회의원 99명에게 후원금을 보낸 것으로 조사됐다. 후원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이뤄졌다. 총 1000만원 이상의 후원을 받은 의원들도 8명 있었다. 권성동(1000만원), 김경진(1150만원), 박홍근(1100만원, 100만원 반환), 우상호(1000만원), 유의동(1400만원, 200만원 반환 이후 전액 반환), 이학영(1000만원) 의원이다. 당시엔 의원 신분이었던 이재영(1000만원), 조해진(1500만원, 200만원 반환) 전 의원도 있다.

경찰은 법인자금으로 상품권을 사들여 다시 현금화하는 이른바 ‘상품권깡’ 수법으로 비자금을 조성해 후원금을 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법인이나 단체가 정치자금을 기부하는 것이 정치자금법 위반이기 때문에 자금 출처를 감추려고 임직원 명의로 쪼개기 후원금을 보냈다는 게 경찰의 판단이다. 반면 황 회장 등은 경찰 조사 과정에서 “관행적으로 후원금을 납부한 것으로 일부 부서의 일탈 행위”라고 혐의를 부인했다고 한다. 연루된 의원실 측에서도 “KT의 후원금인 줄 몰랐다”는 취지로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인 등 조사 전혀 안 이뤄져” 검찰, 두차례 기각

경찰 압수수색 이미지. 사진은 기사와 관련이 없음. [중앙포토]

경찰 압수수색 이미지. 사진은 기사와 관련이 없음. [중앙포토]

앞서 경찰은 17년 11월 관련 첩보를 입수한 뒤 18년 1월 31일 KT 본사와 광화문 지사 등을 총 5회에 걸쳐 압수수색했다. 관련 문서나 후원회 계좌, 선관위 회계 보고 자료 등을 확보했다. 수사는 비교적 신속하게 이뤄졌다. 같은해 4월 17일 황 회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했고, 6월 18일에는 황 회장 등 4명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여기까지는 수사가 순조롭게 이뤄지는 듯 했다.

하지만 영장은 이틀 뒤 검찰(서울중앙지검 특수3부) 단계에서 기각됐다. 당시 검찰은 이례적으로 기각 사유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 검찰 관계자는 “공여자와 수수자가 모두 있는 정치자금수수 범죄에서 구속할 정도의 혐의를 소명하려면 수수자쪽 조사가 상당부분 이뤄져야 한다”며 “경찰 수사가 장기간 진행됐음에도 수수자쪽 정치인이나 그 보좌진 등에 대한 조사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상당한 인력과 시간을 투입한 경찰 입장에서는 상당히 자존심이 상할만 한 상황이었다. “기각 사유를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발 섞인 목소리가 경찰 내부에서 흘러나왔다. 게다가 당시는 검ㆍ경 수사권 조정 이슈가 뜨겁게 떠오르던 시기로 조정안이 발표되기 직전이었다. 두 기관 사이에 미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이후 경찰은 9월 7일 앞서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한 4명 중 황 회장을 제외한 3명에 대해 영장을 재신청했다. 하지만 다시 검찰 단계에서 기각됐다. “관련자들이 혐의를 시인하거나 부인(다툼의 여지)하고 있고, 증거인멸 및 도주 우려가 없다”는 이유였다. 결국 경찰은 황 회장 등 KT 전ㆍ현직 관계자들을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경찰 관계자는 “경찰 입장에서는 구속 필요성이 크다고 봤는데, 두차례나 불청구돼 아쉬움이 컸던 사안이었다”며 “보강 수사한 자료를 검찰에 넘겨 향후 단계에서 기소 및 처벌이 이뤄지길 바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경찰 이미지. [중앙포토]

경찰 이미지. [중앙포토]

이날 경찰의 발표에는 이같은 ‘아쉬움’이 묻어났다. “(검찰 지적 이후) 99개 의원실 관계자(보좌관 및 회계책임자)를 전수조사했고, 40여권, 1만4000여 페이지에 달하는 기록 일체를 재정리해 검찰에 송치했다”고 밝혔다.

향후 황 회장 등의 처벌 여부는 검찰의 기소 및 불기소 결정, 법원 재판에서 가려지게 된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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