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는 단풍처럼 … 지단, 쓸쓸한 아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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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네딘 지단이 한국과의 경기에서 무승부를 기록한 뒤 고개를 숙인 채 경기장을 떠나고 있다. [라이프치히 AFP=연합뉴스]

한국과 프랑스의 경기가 1-1로 굳어지던 후반 46분. 선수 교체 사인이 떨어지자 지네딘 지단은 오른팔에 차고 있던 팔띠(armband)를 내던졌다. 레몽 도메네크 감독이 악수를 하려 했으나 이마저 외면하고 벤치로 들어가 버렸다. 외신들은 이 장면을 소개하며 "지단이 프랑스 축구의 사망을 상징하는 심볼이 됐다"고 소개했다. 정신적으로는 위대했으나 체력적으로 너무 약했다는 것이다.

한국전은 프랑스 대표팀은 물론 최고의 미드필더로 축구계를 호령했던 지단 개인에게도 많은 상처를 남겼다. 지단에게 한국전은 마지막 월드컵 무대일 수도 있다. 후반 44분 옐로카드를 받은 지단은 경고 누적으로 24일(한국시간) 토고전에 뛸 수 없다. 두 경기에서 승점 2점밖에 챙기지 못한 프랑스가 16강 진출이 좌절될 경우 한국전은 그의 마지막 월드컵 경기가 된다. 지단은 이번 대회를 끝으로 대표팀을 은퇴한다고 공식 선언한 바 있다. 더구나 경기가 벌어지는 현지시간 23일은 그의 서른네 번째 생일이기도 하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의 부진을 만회할 기회를 놓친 것도 한스럽다. 그는 2002년 월드컵 직전 한국과의 평가전에서 다리를 다쳐 조별리그 세 경기 중 두 경기를 벤치에 앉아 있어야 했다.

1972년 알제리계 이주민의 아들로 프랑스 마르세유 빈민가에서 태어난 지단은 '아트 사커'의 지휘자로 불리며 축구계를 풍미했다. 98년.2000년.2003년 세 차례 국제축구연맹(FIFA) 올해의 선수로 뽑혔고, 2001년 유벤투스(이탈리아)에서 레알 마드리드로 옮길 때 6360만 달러라는 당시 사상 최고액의 이적료를 기록했다. 98년 프랑스 월드컵 결승에서 두 골을 뽑아 브라질에 3-0 완승을 이끌며 프랑스에 사상 첫 월드컵 우승을 안겼고, 2000년 유럽선수권대회(유로 2000) 우승도 만들어냈다.

하지만 최근 소속팀(레알 마드리드)은 물론 대표팀 경기에서도 전성기의 실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체력.스피드.개인기에서 한계를 드러냈다. 지단은 경기 후 "우리는 마지막까지 고통받게 됐다. 토고전을 반드시 이겨야 한다"며 "그러나 우리의 운명은 아직도 우리 손에 있다"고 말했다.

신준봉.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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