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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상연의 시시각각

아직도 2% 부족한 소통정부의 소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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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최상연
최상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최상연 논설위원

최상연 논설위원

문재인 대통령의 어제 신년 기자회견은 2% 부족한 장면이 또다시 연출 되고 말았다. 기존 주장의 반복은 그렇다 치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는 정치 이벤트가 돼버렸기 때문이다. 경제 상황은 악화 일로고 외부 여건은 갈수록 막혀가는 살얼음판 대한민국이다. 불안한 국민을 다독이는 희망의 메시지와 이념 과잉 정책을 바로잡겠다는 성찰에 대한 주문이 많았다. 하지만 겉보기의 레토릭과 달리 실제 내용은 기존 정책을 계속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결국 지난 회견처럼 각본 없는 파격 형식 자체가 더 많은 관심을 끌었다.

형식은 소통, 내용은 일방통행 회견 #감성 이벤트론 공감 만들기 어려워

회견장에 김민기 노래가 흐르는 등의 감성 요소는 여전했다. 하지만 답변의 구체성 면에선 사전에 조율 된 문답보다 후퇴해 버렸다. 물론 대통령이 직접 사회를 보며 꾸밈 없이 나서는 모습은 진일보한 소통 방식이다. 그래도 짜고 치는 회견이 아니란 건 대통령의 진솔하고 허심탄회한 소회와 국정 인식을 기대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질문과 답변은 대체로 겉돌았고 공감하기 어려운 자화자찬식 주장까지 겹쳐 소통보다 소통하는 모습에 치중했다는 느낌을 만들었다. ‘과거엔 권언유착이 있었지만 지금 정부는 언론인 인재를 모신 것’이라는 생뚱한 얘기마저 나왔다.

취임 100일 기자회견이나 대국민보고회 때의 ‘감성 접근’ 이벤트에선 그나마 다짐이 많았다. 문 대통령은 당시 ‘국회를 존중하고 야당과 소통해 국정 동반자로 함께 일하겠다’ ‘기업 환경을 개선하겠다고’ 약속해 박수 받았다. 물론 그때 뿐이긴 했다. 한 때 같은 청와대에서 일했던 자유한국당 김병준 비대위원장과는 여태 만남조차 성사되지 않았다. 소상공인과 기업들의 호소에는 ‘거시 경제가 견고하다’ ‘경제가 좋은데 언론이 왜곡한다’는 발언들이 되돌아왔다. 그런데 이번엔 그 때의 원칙적이고 원론적인 언급조차 나오지 않았다.

형식은 소통이지만 내용은 일방통행인 기자회견에서 문 대통령은 대신 소통 강화를 거론했다. 새삼스럽지만 지당한 말이다. 전임 정권 국정농단의 배경엔 소통 부재의 권력이 있었다. 그러자면 무엇보다 미국처럼 월 2, 3회 정례적인 기자회견은 아니더라도 한 달에 한번 정도는 국민들과 마주해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툭하면 기자들과 말타툼을 벌여 설화를 만들지만 거의 매일 취재진 앞에 선다. 그런데 문 정부는 집권한 지 채 2년이 안돼 대통령과 대화할 기회가 1년에 한 두 번인 ‘행사’가 됐다.

기자회견만이 아니다. 그러자면 또 진정성을 만들어야 한다. 소통은 쌍방향이다. ‘그렇게 아시면 되고요’는 소통이 아니다. 문 대통령은 첫 청와대 회의에서 ‘참모들의 이견 제시는 의무’라고 소통을 강조했다. 하지만 실제로 이견을 냈다는 참모는 들어본 적이 없다. 문 정부가 잘못을 알리는 내부 비판에 얼마나 귀를 열었는지는 김태우 전 수사관, 신재민 전 사무관 파문을 보면 안다. 소통 회견이 되려면 민정수석을 둘러싼 의혹에 유감 표명이라도 나와야 했다. 하지만 ‘현 정부 권력 기관에서 국민을 실망 시킨 일은 단 한 건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못 박았다.

생각이 다른 사람이 많아서 어려운 게 정치다. 소수 생각을 다수로 만들어야 하는 힘든 작업이다. 그것도 설득과 타협으로 공감을 만들어야 하니 더 어렵다. 그래도 그런 길을 가겠다고 소통 대통령, 소통 정부를 자처했다. 역사에서 가장 닮고 싶은 리더십의 인물로 세종대왕을 꼽으며 ‘국민과 눈 맞추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내 사람, 내 방식만 옳다는 고집 만으론 갈 수 없는 길이다. 감성적 접근 만으로 될 일도 아니다. 소통 정부에 소통을 주문해야 하는 아이러니는 언제까지 계속돼야 하는 것인지.

최상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