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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의 시시각각] 무결점 환상에 빠진 내부자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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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8호 30면

김동호 논설위원

김동호 논설위원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고용이 나빠 할 말 없게 됐다”면서도 “정책 기조를 그대로 유지하겠다”고 다짐했다. 급격한 경기 하강과 고용참사에도 J노믹스(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를 3년째 밀어붙이겠다는 선언이다. J노믹스는 정체성이 여전히 모호하다. 핵심 참모들도 명확한 설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의 이름에서 따왔다는 설명도 있고, 일자리(job)에서 따왔다고 해석하는 참모도 있다. 어디서 따왔든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성역으로 굳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어떤 부작용에도 문 정부에선 인정하려는 기미가 없다.

J노믹스 오류에도 묻지마 강행 #집단사고 벗어나야 경제도 살려

이 증상을 그동안 전문가들은 확증편향의 오류, 정신승리법이라는 식으로 비판했다. 그런데 이 정도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그래서 심리학·사회학·경영학을 뒤져봤다. 집단의사결정의 오류를 해부하기 위해서다. 놀랍게도 많은 증상들이 분석돼 있었다.

우선 잘못불가의 증상이다. 우리 판단은 절대로 오류가 없다는 의식이다. 우리가 내린 의사결정에 결점은 있을 수 없고, 그 결정은 비판 또는 공격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얘기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고용참사가 빚어지자 “경제 체질 변화에 수반되는 통증”이라는 유체이탈식 답변을 내놓는 이유다. 둘째 합리화 증상이다. 경고에는 귀를 막고 기존 결정과 모순되는 정보는 깎아내린다. 청와대는 현실과 동떨어진 통계를 제시하며 최저임금의 효과를 합리화했다. 심지어 통계청장까지 갈아치웠다.

도덕적 환상은 더욱 치명적이다. 내부자들은 집단의 입장은 무조건 옳고 질책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윤리성이나 도덕성의 논의 대상도 아니라고 본다. 청와대 특별감찰반 김태우 전 수사관이 정권 내부의 의혹을 제기하자 “미꾸라지 한 마리가 개울물을 흐리고 있다”고 했다. 전·전전 정권의 적폐와는 달리 나 또는 우리는 문제 삼지 말라는 태도다. 윤리성·도덕성에서 ‘내로남불’의 극치 아닌가.

더 무서운 것은 자기검열이다. 내부자들은 집단의사결정에 대한 의심을 표출하지 않고 침묵을 지킨다. 집단의 합의와 응집성을 해칠까 두려워서다. 개인적으로는 “이상하다” 싶어도 동료에게 말하지 않는다. 여기서 더 나간 것이 만장일치의 환상이다. 침묵은 동의로 간주되고 동료들이 진정으로 동의하고 있는지 알아보려고 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서는 동조압력에 지배당하게 된다. 집단의 입장을 거스르는 동료는 충성심이 부족하다고 몰아붙이고 김태우·신재민처럼 ‘이단아’로 낙인을 찍는다.

한 발 더 나가면 선택쏠림 현상을 초래한다. 내부자들은 집단 외부의 사람들은 선한 의도가 없고 어리석다고 본다. 어떤 충언을 해도 검토하지 않는다. 그러고선 내 갈 길을 간다. 이런 과정을 통해 ‘마이웨이’를 질주하게 된다.

문제는 그 결과다. 집단의사결정에서 일어나는 오류는 미 예일대 임상 정신과 의사였던 어빙 재니스에 의해 처음 소개된 ‘집단사고’로 귀착된다. 집단사고는 극도로 응집성이 강한 집단에서 조화와 만장일치에 대한 열망이 지나쳐 내부자들이 집단의 결정을 현실적으로 평가하려는 노력을 묵살하면서 발생한다. 그것이 바로 대한민국호를 궤도에서 이탈시키고 있는 J노믹스의 맨얼굴이다.

지난해 2%대로 추락한 성장률은 내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관측되고, 투자·생산·소비·고용·수출 등 경제 활동의 모든 지표에 빨간불이 켜졌다. 반도체의 나홀로 특수는 지난해 4분기 막을 내렸고 올 상반기 경착륙이 예상된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획일적 근로시간 단축은 기업의 손발을 다 묶어놓았고 이 충격으로 지난해 자영업자 100만 명이 폐업에 내몰렸다. 지금이라도 무결점의 환상에서 깨어나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희망을 꿈꿀 수 있다.

김동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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