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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임세원 막기 위해 치료명령제 도입하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참석자들이 임세원 교수 사망사건 관련해 추모 묵념을 하고 있다. [뉴스1]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참석자들이 임세원 교수 사망사건 관련해 추모 묵념을 하고 있다. [뉴스1]

국회 보건복지위가 지난달 31일 발생한 고(故) 임세원 교수 피살 사건 후속 입법 논의에 분주하다. 이른바 ‘임세원법’을 만들어 사건 재발을 막겠다는 취지다. 자유한국당 소속의 이명수 국회 보건복지위원장도 “2월 임시국회에서 처리되는 것을 목표로 상임위 일정을 조기에 마무리할 계획”이라며 의욕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실제 입법이 속도를 낼 지는 미지수다. 의료인 폭행을 막기 위한 법안만 현재 10건 이상이 계류 중이다. 정신질환자 관리를 강화하는 법안도 따로 발의돼있다. 9일 열린 보건복지위 긴급 현안보고에서도 사안별로 의원들과 정부 의견이 엇갈렸다.

계류 중인 법안은 크게 세 종류다. ①의료인 폭행 가해자 처벌 강화 ②병원 내 안전시설 및 인력 확충 방안 ③정신질환자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는 안이다.

①처벌 강화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흉기를 휘둘러 정신과 전문의 임세원 교수를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는 박모 씨가 9일 오전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뉴스1]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흉기를 휘둘러 정신과 전문의 임세원 교수를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는 박모 씨가 9일 오전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뉴스1]

가장 많이 발의된 건 의료인에 상해를 입힌 가해자에게 처벌을 높이는 법안이다. ‘의료법’ 개정안을 통해 다양한 처벌 강화 수단을 제시하고 있다. 처벌 하한을 정하거나 반의사불벌죄 조항을 삭제하는 등의 방안이다. 술에 취해 범행을 저지르면 가중처벌하는 법안도 발의돼있다. 의료인 폭행을 가중처벌하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도 있다.

처벌 강화 법안 주요내용

▷피해자가 원치 않으면 처벌 않는 반의사불벌죄 조항 삭제(한국당 김명연)
▷술에 취한 상태에서 상해에 이르게 하면 가중처벌(민주당 기동민)
▷음주로 인한 심신미약을 이유로 형을 감경하지 않는다(한국당 이명수)
▷상해=1년이상, 사망=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민평당 김광수)

하지만 처벌 강화에 대한 의견은 엇갈린다. 보건복지위 법안심사 소위원장인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의원은 이날 열린 현안보고에서 “비슷한 사건이 터질 때마다 가중처벌하는 법을 계속 올리는 게 능사인지 고민”이라 말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도 “정신질환자가 벌이는 사고는 예방과 치료를 중점적으로 한다. 사후에 처벌을 강화하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며 반대 목소리를 냈다.

②비상벨ㆍ대피공간 설치

외래 진료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숨진 고(故)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빈소가 2일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서울적십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조문을 마친 강북삼성병원 동료 의료진이 침통한 모습으로 장례식장을 나서고 있다. 왼쪽 가슴에 단 근조 리본이 보인다. [연합뉴스]

외래 진료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숨진 고(故)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빈소가 2일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서울적십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조문을 마친 강북삼성병원 동료 의료진이 침통한 모습으로 장례식장을 나서고 있다. 왼쪽 가슴에 단 근조 리본이 보인다. [연합뉴스]

의료인을 위한 비상벨과 대피공간을 설치하고 보안 관련 인력을 늘리는 내용의 법안도 제출돼있다. 비상벨과 안전공간 마련은 의사협회에서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은 “약 3만개의 의원, 1500여개의 중소병원 중 대부분이 대피공간, 대피로, 비상벨 등이 없다”며 “최소한의 안전망 구축이라는 차원에서 국가 재정을 투입해 안전관리기금을 조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능후 장관은 “안전관리기금에 대한 재정 투입은 신중하게 검토해보겠다”고 답했다.

안전 강화 법안 주요내용

▷복지부에 진료환경 안전 실태조사 및 정책수립 의무화(민주당 신동근)
▷안전관리 업무 전담 인력 의무화(바른미래당 최도자)
▷비상벨ㆍ비상공간 의무 설치, 안전요원 배치(한국당 김승희ㆍ윤상현)
▷경찰과 연계된 긴급출동시스템 구축(한국당 윤종필)

다만 효과가 크지 않을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임세원 교수가 근무했던 강북삼성병원의 신호철 원장은 “병원에 대피로와 비상벨, 보안요원을 다 갖추고 있다. 간호조무사가 보안요원을 불러 도착하는데 2분 남짓 걸렸다”며 “그 사이에 벌어진 일인데 보안요원이나 시설이 있어도 긴급히 대처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③치료명령제 강화

진료 중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유명을 달리한 고(故)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발인식이 엄수된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직십자병원 장례식장에서 고인의 유가족이 운구차에 오른 고인의 관을 잡고 오열하고 있다. [연합뉴스]

진료 중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유명을 달리한 고(故)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발인식이 엄수된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직십자병원 장례식장에서 고인의 유가족이 운구차에 오른 고인의 관을 잡고 오열하고 있다. [연합뉴스]

9일 현안보고에서 관심이 쏠린 건 ‘치료명령제’였다. 중증 정신질환자에게 외래진료를 강제하는 ‘외래치료명령제’와 정부가 나서 보호자 동의 없이 입원시킬 수 있는 ‘사법입원제’가 화두였다.

민주당 정춘숙 의원은 외래치료명령제를 골자로 한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을 4일 발의했다.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가 병원 밖에서도 지속적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다.

정신질환자 관리 강화 법안 주요내용

▷정신병원장, 정신건강복지센터장(주로 보건소장)은 보호자 동의 없이 외래치료명령을 지자체장에 청구할 수 있으며 치료비는 국가가 부담
▷자ㆍ타해 위험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한 정신질환자 중 정신과 전문의가 퇴원 후 치료가 중단될 위험이 있다고 진단하는 경우에 한해 퇴원 사실을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에 전달

정춘숙 의원은 “2017년 기준으로 전국에 외래치료명령을 받은 케이스가 4건이다. 정말 말도 안되는 것”이라며 “외래치료를 안 받고 있으면 어떻게 할 거냐.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법입원에 대한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권준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장은 “사법입원을 포함하는 사법치료명령제 등을 하지 않고는 해결하기 어렵다”며 “상당한 선진국에서 사법입원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당 김승희 의원도 “사법적 절차를 통해 (입원)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2016년 9월 보호의무자 2명과 전문의 1명의 동의 하에 정신질환자를 입원시킬 수 있게 하는 정신건강보건법 조항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보호입원 제도 그 자체가 위헌이라 본 건 아니지만 제도 악용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이에 따라 2017년 입원 요건이 강화되는 등 강제입원은 까다로워지는 추세다. 박능후 장관은 “외래치료명령제는 어떻게 실효성을 갖출 수 있도록 할지 깊이 논의하고 있다”면서도 “(사법입원 제도는) 다른 사법기관에서도 이 제도에 대해서 부정적”이라고 말했다.

한영익 기자 hany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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