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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내 방북 공언한 시진핑이 안가고 김정은이 4번째 찾은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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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중국을 찾은 것은 지난해 3월 이후 4번째다.  1년도 채 못되는 단기간에 한  나라의 정상이 특정 국가를 4차례 방문하는 건 외교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더구나 그 사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방북은 단 한차례도 이뤄지지 않았다. 그래서 올 해에는 시 주석의 방북이 먼저 이뤄질 것이란 게 대체적인 견해였다. 청와대 발표에 따르면 시 주석 자신이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과의 회담 때 그런 뜻을 밝히기도 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타고 온 전용열차가 8일 오전 베이징 역사 귀빈실 입구에 정차해 있다. [신경진 특파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타고 온 전용열차가 8일 오전 베이징 역사 귀빈실 입구에 정차해 있다. [신경진 특파원]

8일 오후 중국 베이징 역사를 나서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전용 벤츠. 차 문에 국무위원장 휘장(금색)이 선명하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8일 오후 중국 베이징 역사를 나서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전용 벤츠. 차 문에 국무위원장 휘장(금색)이 선명하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이와 별개로 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 시기가 머지 않았다는 관측도 끊임없이 제기됐다. 양국 외교장관 등 고위급 상호 방문이 이어지는 동안  러시아 정부는 김 위원장에 대한 초청 의사를 분명히 했고 김 위원장이 수락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트럼프와의 만남 앞두고 둘 다 필요성 #중국은 한반도 문제 발언권 재확인하고 #북한은 중국 지지 강조해 협상력 강화

김정은의 4차 방중은 그런 예측이 나도는 가운데 단행됐다는 점에서 전격적이고 파격적이다. 그 파격은 2차 북미 정상 회담 추진과 맞물려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북미 정상회담에 임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고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이에 화답함으로써 2차 북미 회담은 급물살을 타는 모양새다.

중국으로서는 한반도 문제에 관한 자국의 발언권과 위상을 다시 한번 확인할 필요가 있다. 김정은 위원장의 입을 통해 북한이 2차 회담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 배경과 의도는 물론 논의중인 회담 장소 등의 진행 상황을 직접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 시 주석은 김위원장을 직접 만나 한반도 문제에 관한 중국의 입장을 다시 한 번 명확하게 전달할 필요가 있다.

더구나 김위원장의 신년사에는 “정전협정 당사자들과의 긴밀한 연계 밑에 조선반도의 현 정전체제를 평화체계로 전환하기 위한 다자 협상도 적극 추진하여”란 부분이 포함되어 있다. 한반도 문제의 논의 과정에 중국이 본격 참여할 때가 됐다는 김 위원장의 인식을 비친 것이라 할 수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5월 중국 다롄을 찾아 시진핑 국가주석과 회담한 뒤 해변을 산책하고 있다. 당시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의 북미 정상회담을 코앞에 둔 시점이었다. [중앙포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5월 중국 다롄을 찾아 시진핑 국가주석과 회담한 뒤 해변을 산책하고 있다. 당시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의 북미 정상회담을 코앞에 둔 시점이었다. [중앙포토]

김 위원장 역시 시 주석과의 만남이 필요하다. 정상 회담 및 협상에 앞서 중국과의 관계를 공고히 다짐으로써 북한의 입지를 강화하고 회담에서의 협상력을 높이는 결과로 이어가려 하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6월 싱가포르 회담 직전에도 다롄(大連)을 찾아 시 주석과 회담 전략을 숙의한 실례가 있다. 회담이 끝난 직후에도 다시 베이징으로 가 시 주석에게 회담 결과를 설명하고 향후 공조 방안을 논의했다. 이 과정을 통해 중국은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과시했고, 북한은 중국의 배후 지지를 내보임으로써 미국에 일방적으로 끌려가지 않는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뿐만 아니라 북한은 대북 제재가 고착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의 경제 지원이 절실하다. 제재 완화에 대한 중국의 지지를 이끌어 내고 이를 관철시킬 해법을 논의하는 것도 김 위원장의 중요한 숙제다.

이처럼 김위원장이 연거푸 4차례 중국을 찾은 것은 북미 회담이란 변수를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다. 새해 벽두 4차 방중이 이뤄졌다는 것은 그만큼 북미 회담의 성사가 임박했다는 방증일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시진핑 주석의 평양 답방 역시 북미 정상회담의 향방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게 중론이다. 만일 2차 김정은-트럼프 회담에서 가시적 성과를 도출해 내고 제재 완화의 물꼬가 트이면 시 주석의 평양행은 순탄하게 열릴 수 있다. 중국 지도자의 평양 방문을 계기로 대규모 경제지원을 제공해 온 전례를 감안하면 시 주석의 방북 실현에는 제재 완화가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시 주석의 평양 답방길이 열린다면 그 시기는 상반기 중이 될 가능성이 높다. 시 주석이 6월 오사카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길에 한국을 방문하는 방안이 외교 경로를 통해 추진되고 있다. 베이징의 외교 소식통은 “시 주석은 2014년 한국을 단독방문한 적이 있고 그 결과 북ㆍ중 관계가 더욱 경색된 전례가 있어 이번에는 북한을 먼저 방문하는 모양새를 연출하려 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자신의 방북 결심을 밝힌 것은 남북한 방문 순서에 대한 설명과 함께 이뤄졌을 수 있다.

반대로 2차 북미 회담이 무산되거나, 성사되더라도 실질적 성과가 미흡하고 뚜렷한 진전이 없다면 시 주석의 방북은 계속 미뤄질 수도 있다. 북미 관계가 틀어지는 상황에서 시 주석이 방북해 김 위원장의 손을 들어주고, 그 결과 미ㆍ중 대립이 가속되는 것은 중국으로서도 바라지 않는 시나리오다. 지난해 하반기 북한 정권수립 기념일(9ㆍ9절) 등을 계기로 한 방북이 이뤄지지 않았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베이징=예영준 특파원 y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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