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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포럼

매몰비용의 오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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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사람들은 이득에서 얻는 기쁨보다 손실로 인한 고통을 훨씬 크게 느낀다. 특히 불확실한 미래의 이득을 택하기보다 눈앞에 보이는 확실한 손실을 피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예를 들어 보자. 조용필 공연 티켓을 공짜로 받았는데 하필이면 날씨가 궂어 눈보라가 몰아칠 경우 당신은 그 공연을 보러 가겠는가. 조용필의 열혈 팬이 아니라면 아마도 조금은 고민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당신이 조용필 공연의 티켓을 거금을 주고 어렵사리 구했다면 어떻겠는가. 아마도 웬만큼 궂은 날씨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공연을 보러 가기가 십상이다. 현대 행동심리학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람은 중요한 시합이나 공연 티켓을 직접 구입한 경우에는 눈보라 속을 헤쳐서라도 공연장까지 가지만 공짜로 얻은 경우에는 가지 않는다.

사실 티켓 대금은 이미 지불된 것이므로 공연 참석 여부에 관계없이 돌려받을 수 없는 것이다. 공짜 표나 구입한 표나 눈보라를 헤치고 공연장에 가다가 사고를 당하거나 다칠 위험은 다를 게 없다. 그런데 공짜 표의 경우에 비해 자신이 직접 구입한 표에 대해서는 유난히 집착이 강하다. 왜 그럴까. 공짜 표로 공연을 보는 데서 얻을 수 있는 이득에 비해 직접 구입한 표를 이용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손실이 더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공짜로 얻은 티켓은 안 써도 별반 손해가 아니지만 거금을 주고 산 표를 날씨 때문에 버리는 것은 큰 낭비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리처드 탈러는 이 같은 심리적 착시 현상을 '매몰비용(sunk cost)의 오류'라고 지적했다. 이미 지불한 돈에 대한 불합리한 집착을 일컫는 말이다. 매몰비용의 오류는 대규모 재정사업의 경우에도 빈번히 나타난다. 수조원을 들인 국책사업이 공정의 90%를 넘긴 상황에서 사업의 타당성에 중대한 의문이 제기되었을 때 과연 사업을 중단하고 원점에서 재검토할 수 있을까. 대개의 경우 이미 들어간 사업비가 아까워서라도 일단 공사를 계속하자는 쪽으로 기울고 만다.

기업의 투자도 마찬가지다. 잘못된 투자로 판명이 났는데도 그동안 들인 돈이 아까워 사업을 접지 못한다. 부실 기업에 밑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돈을 퍼붓는다고 살아나지 않는다. 매몰비용에 대한 집착을 버리기 어려운 데는 심리적 효과 외에 책임의 문제가 작용한다. 만일 거액이 들어간 사업을 중단할 경우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 그 책임의 중압감에서 벗어나기 위한 심리적인 거역 작용이 매몰비용의 오류다. 이왕 여기까지 왔는데 끝장을 봐야 한다거나, 당장은 어렵지만 결국은 빛을 볼 것이란 자기 합리화가 꽤 그럴 듯하게 횡행한다. 그러나 매몰비용은 결코 되돌릴 수 없고, 더 나가면 손실은 더 커진다.

최근 노무현 대통령과 주요 장관들이 5.31 지방선거에서 나타난 민심의 판정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정책을 차질없이 추진하겠다"거나 "기존의 입장에서 한 발도 물러설 수 없다"고 목청을 돋우는 것을 보면, 이 정부가 총체적으로 매몰비용의 오류에 빠진 것 같다. 이미 잘못된 것으로 판명이 난 정책을 고집스럽게 밀어붙이겠다는 심리의 근저에는 '여기까지 와서 중단하면 그동안의 노력이 너무 아깝다'거나 '그간의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지기 싫다'는 인식이 중첩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매몰비용은 빨리 포기하는 것이 낫다. 자존심 때문이든 책임회피를 위해서든 잘못된 정책을 더 끌고 나가면 얻을 것은 없고, 피해만 더 커진다.

김종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