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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내부자 고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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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권혁주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권혁주 논설위원

권혁주 논설위원

공익신고는 한때 ‘양심선언’이라고 했다. 1990년 윤석양 이병의 기자회견도 그렇게 불렸다. 국군보안사령부가 당시 김수환 추기경, 김영삼 민자당 대표, 김대중 평민당 총재 등 각계 인사 1300여 명을 사찰해 왔다는 내용이었다. 국방부 장관이 해임됐고, 보안사 서빙고 분실을 철거했으며, 보안사는 기무사령부로 이름을 바꾸게 된 메가톤급 폭로였다. 정권의 압력으로 대기업의 부동산 투기 감사를 중단했다는 이문옥 감사관의 내부 고발(90년), 군에서의 부정투표를 만천하에 드러낸 이지문 중위의 용기있는 행동(92년)도 빼놓을 수 없다. 서지현 검사의 검찰 내 성추행 폭로(2018년)는 ‘미투’가 들불처럼 번지는 계기가 됐다.

지난달 국민권익위원회는 윤석양·이문옥·이지문·서지현씨의 고발에 더불어 전두환 정부의 보도지침 폭로(86년), 해군 군납 비리 내부제보(2009년) 등을 ‘한국사회를 변화시킨 10대 공익제보’로 꼽았다. 하나같이 검은 그림자를 햇볕으로 끌어내 사회와 제도를 바꾼 사례들이었다. 권익위는 공익신고를 활성화하기 위해 보상금을 내걸고 있다. 2011년 공익신고자보호법이 생긴 이래 최근까지 5800여 건에 58억원이 지급됐다. 단일 건 최고액은 지난해 호남고속철 입찰 담합 고발자가 받은 3억1534만원이다.

큰 보상까지 내걸었지만, 그래도 내부고발은 쉽지 않다. ‘배신자’로 낙인 찍히기에 십상이어서 직장에서 버티기 어렵다. 업계에 소문이 나 이직 또한 언감생심이다. 내부 고발자의 65%가 직장에서 쫓겨났고, 59%는 자살 충동을 느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실제 한 철도 검수원은 90년대 후반 철도 안전점검의 문제를 언론에 제보했다가 해임된 뒤 자살했다.

청와대의 KT&G 인사 개입과 적자 국채 발행 시도 의혹 등을 제기했던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이 어제 오후 서울 관악구의 모텔에서 발견됐다. “죽으면 제가 하는 말을 믿어줄 것”이라는 글을 남기고 잠적한 지 반나절만이었다. 자살 시도 여부에 대해 경찰은 공식적으로 함구하고 있다. “건강은 양호하다”라고만 할 뿐이다. 어쨌든 그가 극단적 선택을 생각할 만큼 심한 압박감에 시달렸을 것만은 분명하다. 추측 가능한 압박감의 배경은 다양하다. 스스로 우울증이 있다고 했다. 기재부는 그를 ‘기밀 누설’로 검찰에 고발했다. 여당은 “돈 벌러 나왔다”고 비난을 쏟아냈다. 하지만 그런 비난은 신 전 사무관이 보호해야 마땅한 공익신고자인지, 처벌 대상인지 가린 뒤에 해도 늦지 않다. 사람이 먼저다.

권혁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