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년 어느 날 아침 등장한 광고 하나가 이 모든 것을 뒤집었다. 참전병사들이 곤히 자고 있는 침대차에서 한 소년병사가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하고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 시간은 새벽 3시42분. 내일이면 그는 대서양을 건너고 있으리라. 어둠 속에서 그 소년이 보고 들었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고향에서 먹던 햄버거와 팝콘, 역에서 어색한 동작으로 헤어진 아버지, 전쟁터에서 신을 양말을 짜서 준 어머니, 예쁜 여자친구, 같이 뛰놀던 개…. 소년의 가슴이 뭉클해진다. 아마 눈물이 흐르는지도 모른다. 괜찮아 소년이여, 울고 싶으면 맘껏 울려무나. 지금은 어둡고 아무도 널 보고 있지 않으니….
소년이 가야 할 수천 마일 밖 그곳에서는 아무도 소년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전 세계가 소년이 오기를 기도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갈 것이다. 전쟁의 상처로 피 흘리고 있는 세계의 새로운 희망과 평화와 자유를 위해….
"다음에 기차를 탈 때 이 소년을 기억하십시오. 서서 가야만 할 때, 나 대신 그 소년이 앉아서 가는구나 생각하십시오. 식당차에 자리가 나기를 기다려야만 할 때 그 소년과 다른 병사들이 지금 식사를 하고 있구나 생각하십시오."
뉴헤이븐 철도를 욕하던 모든 사람들이 이 광고를 보자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자기 자신을 욕했다. 다른 철도회사들도 이 광고를 빌려 게재했다. 정부에서는 전시 공채를 팔기 위해 이 광고를 이용했다. 전국의 기차역 대합실에 이 광고가 걸렸다. 라디오에서도 이 광고의 카피를 읽었다.
이런 종류의 '의견광고(Advocacy Advertising)'는 오늘날 기업광고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 뉴헤이븐 철도 광고처럼 자기 제품이나 회사에 쏟아지는 부정적인 눈길을 딴 데로 돌리려는 뻔한 수작을 하고 있다. 그런 광고일수록 알맹이 없는 싸구려 감상주의적 표현에 의지한다.
얼마 전 퇴임한 국회의장이 다수 국민이 겉포장이 화려한 사람을 선호하는 이른바 '이미지 정치' 풍조를 비판했다고 하는데 일리가 있다. 목욕은 하지 않고 치장에만 신경을 쓰는 사람을 얼마 동안이나 좋아할 수 있겠는가.
김동완 그레이프커뮤니케이션즈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