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완의광고로보는세상] 의견광고의 뻔한 수작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2면

매사추세츠.로드아일랜드.코네티컷 지역을 중심으로 영업하던 '뉴헤이븐 철도'라는 회사가 있었다. 승객 수에 비해 운행 횟수가 턱없이 부족해 서서 가기 일쑤였고 식당차에도 자리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서비스도 형편없어 열차로 출퇴근을 하던 뉴욕시 인근의 사람들에게 특히 악명이 높았다. 회사는 광고를 통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개선해 보고자 했으나 효과가 있을 리 없었다. 제2차 세계대전에 미국이 참전하게 되자 뉴헤이븐 철도도 군수물자와 참전병사를 수송하게 되었고 따라서 이 회사의 일반 서비스는 더욱 나빠질 수밖에 없었다.

1942년 어느 날 아침 등장한 광고 하나가 이 모든 것을 뒤집었다. 참전병사들이 곤히 자고 있는 침대차에서 한 소년병사가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하고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 시간은 새벽 3시42분. 내일이면 그는 대서양을 건너고 있으리라. 어둠 속에서 그 소년이 보고 들었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고향에서 먹던 햄버거와 팝콘, 역에서 어색한 동작으로 헤어진 아버지, 전쟁터에서 신을 양말을 짜서 준 어머니, 예쁜 여자친구, 같이 뛰놀던 개…. 소년의 가슴이 뭉클해진다. 아마 눈물이 흐르는지도 모른다. 괜찮아 소년이여, 울고 싶으면 맘껏 울려무나. 지금은 어둡고 아무도 널 보고 있지 않으니….

소년이 가야 할 수천 마일 밖 그곳에서는 아무도 소년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전 세계가 소년이 오기를 기도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갈 것이다. 전쟁의 상처로 피 흘리고 있는 세계의 새로운 희망과 평화와 자유를 위해….

"다음에 기차를 탈 때 이 소년을 기억하십시오. 서서 가야만 할 때, 나 대신 그 소년이 앉아서 가는구나 생각하십시오. 식당차에 자리가 나기를 기다려야만 할 때 그 소년과 다른 병사들이 지금 식사를 하고 있구나 생각하십시오."

뉴헤이븐 철도를 욕하던 모든 사람들이 이 광고를 보자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자기 자신을 욕했다. 다른 철도회사들도 이 광고를 빌려 게재했다. 정부에서는 전시 공채를 팔기 위해 이 광고를 이용했다. 전국의 기차역 대합실에 이 광고가 걸렸다. 라디오에서도 이 광고의 카피를 읽었다.

이런 종류의 '의견광고(Advocacy Advertising)'는 오늘날 기업광고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 뉴헤이븐 철도 광고처럼 자기 제품이나 회사에 쏟아지는 부정적인 눈길을 딴 데로 돌리려는 뻔한 수작을 하고 있다. 그런 광고일수록 알맹이 없는 싸구려 감상주의적 표현에 의지한다.

얼마 전 퇴임한 국회의장이 다수 국민이 겉포장이 화려한 사람을 선호하는 이른바 '이미지 정치' 풍조를 비판했다고 하는데 일리가 있다. 목욕은 하지 않고 치장에만 신경을 쓰는 사람을 얼마 동안이나 좋아할 수 있겠는가.

김동완 그레이프커뮤니케이션즈 대표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