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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신년사, 핵무장 ‘전략국가 지위’ 과시…남북관계 전향적 태도 가능성도

중앙일보

입력

Focus 인사이드 

2019년 김정은 위원장은 육성으로 신년사를 내놨다. 방식도 다소 파격적이다. 이제까지 연단에 서서 신년사를 읽어나가는 방식이었다면 이번에는 소파에 앉아서 했다. 좀 더 서구적인 현대 국가 지도자로서 할아버지 김일성과도 닮은 자태를 내보였다. 전반적으로 김정은 위원장의 모습은 ‘젊은 노숙한’ 지도자로서의 면모를 보이는 데 초점을 맞춘 듯했다.

평화 분위기 창출 필요성 반영 #대외 의존보다 자력갱생 방점 #군대 경제건설 적극 지원 독려 #미국 위협하는 모습도 보여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노동당 중앙위원회 청사에서 신년사를 발표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일 보도했다. [사진 조선중앙통신]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노동당 중앙위원회 청사에서 신년사를 발표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일 보도했다. [사진 조선중앙통신]

내용을 보자. 신년사 형식은 작년과 유사하나  경제와 남북관계, 그리고 미ㆍ북 관계에 보다 많이 할애했다. 주요 키워드를 보면 신년사의 초점이 어디에 가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경제’가 38회로 가장 많이 사용되었다. 이어 ‘사회주의’가 32회, 남북관계(북남)가 17회로 나왔다. 사회주의 경제체제 강화와 남북관계 개선에 초점을 뒀다는 증거다. 이에 비해 ‘선군’이 전혀 사용되지 않았다. 이것은 평양 당국의 대내외 정책의 성공을 위해서 평화 분위기 창출 필요성을 반영한다.

경제 분야에서는 대외적으로 의존하기보다 자력갱생 정책에 방점을 찍었다. 경제개발구라든가 대외협력 등에 대한 언급이 전무할 정도로 자주 경제에 치중한다. 김일성 시대 사회주의 경제정책(당이 대중 속에 들어가 사업하는 대안의 사업체계 등)을 답습하고자 하는 듯하다. 과거로의 회귀다. ‘핵의 평화적 이용’을 시사하는 대목도 주목된다. 풍력과 조수력을 포함한 원자력 발전 능력 향상을 이례적으로 언급했다. 이는 ‘평화적 핵 이용’을 통한 에너지 확보 노력의 하나로 판단된다. 인민생활 향상 강조도 되풀이되었다. 사회주의 경제체제 정상화에 초점을 두면서 개혁을 위한 기구와 사업체계 정비도 지속하고자 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일 오전 여동생인 김여정 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 조용원 당 조직지도부 부부장(왼쪽), 김창선 국무위원회 부장(오른쪽)과 함께 노동당 청사에 마련된 신년사 발표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일 오전 여동생인 김여정 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 조용원 당 조직지도부 부부장(왼쪽), 김창선 국무위원회 부장(오른쪽)과 함께 노동당 청사에 마련된 신년사 발표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작년과 달리 군사 분야는 다소 소극적으로 표명되었다. 핵 무력(핵과 운반수단 미사일)을 비롯한 군사력 강화 관련 작년 평가는 전무했다. 대신, 군수공업부문에서 민수용(농기계, 건설기계, 협동품, 인민소비품 등)생산 업적을 강조하고 나섰다. ‘4대 강군화 노선’을 강조하는 선에서 군사력 강화 메시지 전달이 전부다. 군수공업을 ‘세계 선진화 수준’으로 발전 강조함으로써 핵미사일 개발 고도화 지속 의지를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을 따름이다. 오히려 군대가 국방건설이 아닌 경제건설을 적극적으로 지원할 것을 독려하고 있다. 산업현장에서의 군대의 역할을 강조한 것이다.

군대의 산업 노동력 동원을 강화하겠다는 의미다. 핵ㆍ미사일 개발강화를 강조한 작년 메시지와는 달리 직접적인 핵 무력 개발 관련 언급을 극도로 자제하는 모습을 보였다. ‘2018년 작년의 경우 “핵탄두들과 탄도 로케트들을 대량생산하여 실전 배치하는 사업에 박차”를 가하자고 나선 것과는 딴판이다.

또 다른 특이점은 군수산업 분야가 민수산업을 지원하도록 하는 조치다. 군대의 산업 노동력화와 군수공업의 민수화( 농기계, 건설기계, 협동품, 인민소비품 생산) 경향을 드러낸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사회주의 경제건설에 총력을 집중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당 중앙위 7기 3차 전원회의 (2018. 4. 20)에서 ‘사회주의 경제건설 총력 집중’을 위해 국방 부문의 노동력과 기술력을 민수부문 발전을 위해 투입하겠다는 발표가 있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1일 올해 신년사를 통해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재천명하면서 2차 북미정상회담 용의가 있음을 시사했다.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1일 올해 신년사를 통해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재천명하면서 2차 북미정상회담 용의가 있음을 시사했다. [연합뉴스]

 통일부문에서는 2018년 남북관계 진전 상황을 “결정적 변화,” “대단히 만족”으로 후하게 평가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지난해 북남관계 결정적 변화”, “북남관계 대전환.” “놀라운 변화”라면서 “아직은 첫 걸음에 불과”하나 “대단히 만족한다”는 식이다.

이에 기반을 두어 남북정상회담 및 미ㆍ북 정상회담 합의 이행ㆍ실천 목표에 초점을 둔 대남 및 대미 관계 발전을 강조하였다. 2018년 3차례의 남북정상회담 합의 사항 및 남북군사합의 이행을 위한 실천적 조처를 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남북 군사합의를 “사실상 불가침 선언”이라고 하여 그 정당성을 제고함으로써 이의 이행 실천 필요성을 부각하고자 하였다. 다양한 대화 협력 방향을 제시하면서 “더 큰 전진”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남북 공동선언의 철저 이행, 군사적 적대관계 청산, 교류협력 전면적 확대, 평화체제 다자협상 추진, 통일방안 마련 주장 등이 그것이다.

이번 신년사에서 또 다른 이례적인 부문이 있다. 대미 메시지가 많이 길어졌다. 대화 지속의 속내를 보이면서도 대미위협 태세도 견지하는 과감성도 보였다. 원론적인 비핵화 평화 의지를 표명하면서 미ㆍ북 정상회담 합의 사항 이행 실천을 요구하였다. 미국 중심의 비핵화 관련 요구 강권이 지속할 경우 적대적 대응책도 불사한다는 것으로 미국을 위협하는 모습도 보였다.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정상회담을 가진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사진 연합뉴스]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정상회담을 가진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사진 연합뉴스]

외세 배격을 의미하는 자주를 명분으로 미국의 한반도 군사적 개입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자 의도도 드러내었다. “북남관계를 가로막는 외부개입은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외세와의 합동군사연습 중지”와 “외부로부터의 전략자산을 비롯한 전쟁 장비 반입의 완전한 중지”를 요구하였다. 제재 대상이 될 수 있는 개성공단 및 금강산관광 재개 용의를 밝힌 것도 한ㆍ미 대북제재 공조 이완 및 남한 사회 내 ‘미국이 남북관계 장애물’이라는 반미여론을 확산할 수 있어 북한의 의도적인 제스처로 받아들여진다. 정전협정을 평화체제로 가기 위한 다자회담 제의로 국제적 평화 분위기도 띄우고자 하였다.

이번 신년사는 핵무장을 한 ‘전략국가 지위’를 과시하는 북한의 대내외 정책의 과감성을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핵 국가로서 대내외 전략을 적극적으로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전반적으로 ‘핵 무력 완성국가’ 목표 달성 선언 이후 군사적 자신감에 기초한 정책적 태세를 보이는 셈이다. 북한은 미ㆍ북 관계 개선을 위한 대화 재개에 초점을 두되 여의치 않을 경우 민족자주의 동질성을 기초로 남북 간의 협력 조치를 적극적으로 강화해 나가고자 할 것으로 전망된다.

평양 당국이 남북관계 발전을 위한 좀 더 전향적인 태도로 나올 가능성도 있다. 비핵화 관련 미국의 요구(선 핵 리스트 제출 등)에 변화가 없는 한 미ㆍ북 정상 회담 개최에 연연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북한, 대미비난 재개→ 핵미사일 개발 활동 재개 움직임→ 한반도 군사적 긴장 분위기 창출 가능성이 상존한다. 남북관계 차원에서는 민족공조 분위기 부각으로 남북교류 활성화 조치강화(신년사에서 ‘북남’ 17회 언급)와 함께 반미활동 심화로 미국을 압박하는 태세를 견지할 가능성도 있다.

북한연구소 소장 정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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