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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휴수당, 시간 최저임금 산정에 포함…시행령 통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서울 모 대학교 앞 대기업 프랜차이즈 매장에서 일하는 김모(22)씨는 일주일에 14시간 30분 일한다. 김씨는 "예전엔 매일 4시간~6시간 일했는데 지난해부터 줄었다"고 말했다. 근로기준법에 따라 주15시간 이상 일하면 하루 치 임금을 더 줘야(주휴수당) 한다. 이를 피하기 위해 근로시간을 주휴수당을 지급해야 하는 법적 기준 이내로 줄인 셈이다. 일종의 쪼개기 노동이다. 앞으로는 이런 쪼개기 일자리가 많아질 수 있다. 주휴수당 문제로 논란을 빚던 최저임금법 시행령이 개정됐기 때문이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31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55회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이날 국무회의에서 최저임금 산정기준 시간에 법정 주휴시간을 포함하되, 노사 간 합의로 정한 약정휴일 시간과 수당은 제외하는 내용의 최저임금법 시행령 개정안 수정안이 심의·의결됐다..[뉴스1]

이낙연 국무총리가 31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55회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이날 국무회의에서 최저임금 산정기준 시간에 법정 주휴시간을 포함하되, 노사 간 합의로 정한 약정휴일 시간과 수당은 제외하는 내용의 최저임금법 시행령 개정안 수정안이 심의·의결됐다..[뉴스1]

쪼개기 일자리가 많아진다는 건 해당 일자리에서 일하는 근로자의 소득이 그만큼 준다는 얘기다. 예전 소득을 맞추려면 여러 곳에서 일해 보충해야 할 수밖에 없다. 메뚜기 근로다. 또 대기업과 영세 소기업, 상공업계에서 일하는 근로자 간의 격차는 더 벌어질 수 있다.

국무회의, 최저임금법 시행령 개정안 의결 #주 15시간 미만 쪼개기 일자리 많아질 수도 #대기업과 영세 중소기업 근로자 간 격차 심화 #경영계가 반발 다소 누그러지는 모양새 #'임금체계 개편, 주휴수당 폐지'로 옮겨져 #"임금체계 단순·명확해야 임금 논란 제거돼"

정부는 3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이낙연 국무총리 주재로 올해 마지막 국무회의를 열어 최저임금법 시행령 개정안 수정안을 심의 의결했다. 주휴시간과 수당을 최저임금 산정기준에 포함하는 내용이다.

정부는 "이번 시행령 개정은 30년간 해오던 행정지침을 명문화한 것"이라고 말했다.

근로기준법에는 주휴수당을 지급토록 하고 있다. 근로기준법은 강행법으로 무조건 이행해야 한다. 대법원 판결은 주휴수당을 임금으로는 계산하되 일하지 않는 시간이므로 근로시간으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을 유지해왔다. 따라서 시간당 임금을 계산할 때 분자(임금)가 크고, 분모(시간)는 작아진다. 시간당 임금이 불어나는 셈이다. 최저임금위원회는 3년 전 월 환산 최저임금을 고시할 때 주휴수당과 주휴시간을 모두 산입해 계산, 공표하기로 했다. 경영계가 동의했다. 세 가지 해석을 두고 혼란이 일었다. 정부가 "그동안 법률(근로기준법)과 판결, 행정지침 사이에 산정방식을 두고 일던 해석상의 혼란을 명확하게 정리한 것"이라고 설명하는 이유다.

경영계는 여전히 반발했다. 그동안 가장 강하게 반발했던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입장문을 내고 "기업의 어려운 경영 현실과 절박성은 반영되지 않았다"며 "기업의 경영재원과 권리가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지난달 24일 국무회의가 열린 뒤 낸 입장문에 비해 사뭇 누그러진 모양새다. 당시 경총은 "크게 낙담하고, 억울한 심경마저 느낀다"며 "정부가 진실을 정면 외면하고 불합리한 기업 단속 잣대를 끝까지 고집하는 것"이라며 격하게 반응했다. 글자 수만 1768자에 달했다. 그러나 이날 입장문은 528자에 그쳤다.

모 경제단체 관계자는 "경총이 3년 전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주휴수당과 주휴시간을 산입하기로 노동계·정부와 합의한 사실을 최근에야 알고 당황했던 것으로 안다"고 그 배경을 설명했다.

경총의 이날 입장문에서 보이는 두드러진 변화는 임금체계 개편 문제다. 경총은 "정부는 구시대적 임금체계를 전면 개편하는 작업을 최우선적 과제로 설정하고 주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전 입장문에선 "노조 동의 없이 임금체계 변경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었다. 정부는 그동안 "고연봉자가 최저임금 위반으로 적발되는 것은 최저임금법이 5월 개정됐는데도 임금체계를 개편하지 않은 데 기인한다"며 "임금체계 개편 시간을 최장 6개월 부여할 방침"이라고 밝혀왔다. 경총의 이날 입장문은 이런 정부 입장에 수긍하는 모양새로 비친다.

반면 소상공인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이날 헌법재판소에 위헌명령심사를 청구하고, 불복종 투쟁에 나설 수 있음을 시사했다. 전국편의점가맹점협회도 지난 28일 "지금도 주휴수당을 못 주는 곳이 수두룩한데, 사업주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최저임금을 정해놓고 처벌하겠다는 것은 자영업자를 범죄자로 몰고 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야당도 반발에 가세했다. 추경호 자유한국당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이 시행령을 재가한다면 이로 인한 민생경제 파탄의 책임은 모두 문 정부가 져야 할 것"이라며 문 대통령에게 반려를 요청했다. 김학용 자유한국당 의원(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은 "고용부의 주장은 사법부에 대한 도전"이라며 "주휴수당 폐지 법안을 곧 발의하겠다"고 말했다.

경영계도 이참에 주휴수당 폐지론으로 논점을 갈아탈 조짐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이날 코멘트 자료를 내고 "선진국에 거의 없는 주휴수당 등을 조속히 입법으로 다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휴수당은 대만이나 터키 등 일부 국가에서만 운용된다. 대체로 노사가 합의한 약정휴일 형태로 운영되거나 주45시간 이상 일한 경우에만(터키) 인정하는 등 까다롭다.

문제는 주휴수당이 1953년 근로기준법 제정 이후 60여 년 동안 유지됐다는 점이다. 주휴수당을 없애면 근로자의 월급이 10~20%가량 줄어든다. 한국노총은 고용부의 사업체노동력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주휴수당을 없애면 노동자 1인당 평균 월 48만5000원 삭감된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노사 간에 첨예하게 대립할 수밖에 없다.

결국 해법은 기형적이고 복잡한 임금체계를 단순하고 명확하게 정비하는 방법뿐이다. 이는 최저임금뿐 아니라 통상임금, 평균임금 등 임금을 둘러싼 온갖 논란을 잠재우는 유일한 해법이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 교수는 "대체로 모든 임금문제와 관련된 논란은 후진적이고 복잡한 임금체계 때문"이라며 "정부도 성과형 임금체계 도입·폐기와 같은 일관성 없는 정책을 지양하고, 공공부문부터 임금체계 개편에 온 힘을 쏟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기찬 고용노동선임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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