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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미술품 시장서 가장 비싼 작가, '치바이스', 한국왔다

중앙일보

입력

사람들은 치바이스를 두고 '중국의 피카소'라는 표현을 쓰곤 하는데, 치바이스는 그 자체로 하나의 완결한 장르다.

치바이스 초상, 오작인作

치바이스 초상, 오작인作

2018년 12월 5일부터 내년 2월 17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같고도 다른: 치바이스와의 대화’가 열린다. 지난해 ‘치바이스-목장(木匠)에서 거장(巨匠)까지’ 전시가 다녀간 지 약 1년 만이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치바이스전 #중국 당국 허가 있어야 반출가능한 작품들 대거 전시

왜 또 치바이스일까?

치바이스는 동아시아 정신을 현대적으로 가장 잘 해석한 작가다. 그는 매화·난초·국화·대나무(사군자)에 한정됐던 소재를 새우, 여치, 호박 등 우리 일상 속 소재들로 확장시켰다. 치바이스는 농민화를 문인화의 반열까지 올렸다. 93세에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그는 숱한 걸작들을 남겼다. 지난 전시에는 그의 '작품'에 집중했었다면 이번 전시는 치바이스란 거장이 탄생하게 된 과정과 중국 미술계에 미친 영향에 대해 살핀다.

리후 作 ‘치바이스상, 1963, 중국국가미술관

리후 作 ‘치바이스상, 1963, 중국국가미술관

스물 일곱에 스승 만나, 서른에 이름 알려

치바이스는 1864년 중국 후난성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몸이 약해 농사일을 돕지 못하고 혼자 목공일을 하거나, 그림을 그렸다.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해 시, 그림, 조각은 독학으로 익혔다. 그는 스물 일곱에야 스승 후친위안胡沁园, 천샤오판陈少蕃을 만나 시화를 배웠고 서른에 직업화가로써 이름을 알렸다. 그는 산수, 인물, 화조, 미인도를 잘 그리는 것은 물론, 서예와 전각에도 두루 능했다. 40대에는 자연으로부터 영감을 얻고자 5차(1902~1916)에 걸쳐 전국을 유람했다. 치바이스는 스스로 '나이 여든이 돼서 그림다운 그림이 나왔다.'고 말할 정도로, 창작에 매진하고 창조에 전력을 다했다.

치바이스 作, 두 손으로 조롱받을 받쳐 든 노인, 1994, 중국국가미술관 소장

치바이스 作, 두 손으로 조롱받을 받쳐 든 노인, 1994, 중국국가미술관 소장

치바이스 作, 분향승(1933)

치바이스 作, 분향승(1933)

세계 미술품 시장에서 가장 비싼 작가

2011년 베이징에서 열린 미술품 경매에서 치바이스의 ‘송백고립도(松柏高굤圖)’가 4억2550만 위안(한화 약 718억원)에 낙찰됐다. 그해 피카소와 클림트를 넘어서는 최고가였다. 2017년에는 '산수십이조병(山水十二條屏)'이 9억3150만위안(한화 약 1530억원)에 낙찰됐다. 그는 여전히, 중국은 물론이고 세계적으로도 가치를 인정받는 화가다.

강 위에 범선들

강 위에 범선들

이번 전시에는 치바이스의 걸작 80여 점과, 팔대산인의 작품 7점, 오창석 14점 등 총 116점의 걸작이 공개됐다. 특히 치바이스 '화훼초충책(花卉草蟲冊)'과 오창석의 ‘화훼책(花卉冊)’ 등 국보에 해당하는 국가 1급 문물도 포함됐다.

오창석 作, 갈매기, 1927, 중국국가미술관소장

오창석 作, 갈매기, 1927, 중국국가미술관소장

치바이스와 팔대산인, 오창석의 작품은 중국 당국의 허가가 있어야 해외로 반출 할 수 있다. 중국에서도 치바이스의 진품을 직접 본 사람은 많지 않다. 이번 전시를 위해 한국에 온 중국국가미술관 우웨이산 관장은 "이번 전시는 중국이 한국문화에 대한 존중을 표시하는 것"이라 밝혔다. 중국 미술이나 수묵화에 관심이 없어도, 치바이스는 한 번 쯤 경험해보길 권한다. 실제로 보면 그 생명력과 수묵의 깊이에 감탄하게 된다.

차이나랩 임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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