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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학대 막는 '착한패딩' 사러 갔더니 "그런 싸구려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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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아웃도어 브랜드 매장에 RDS 패딩들이 걸려있다(오른쪽 사진). 왼쪽 사진의 거위는 방한용 옷감 재료와는 직접 관련이 없음. [중앙포토, 백희연 기자]

스포츠 아웃도어 브랜드 매장에 RDS 패딩들이 걸려있다(오른쪽 사진). 왼쪽 사진의 거위는 방한용 옷감 재료와는 직접 관련이 없음. [중앙포토, 백희연 기자]

“그런 싸구려 말고, 이 패딩이 더 따뜻하고 가벼워요. 헝가리산 고급 거위털이라서.”

'산 거위털 안 뽑다' 홍보 #매장 찾아가자 “그게 뭐죠?”

지난 주말 RDS(Responsible Down Standard) 롱패딩을 사러 백화점에 간 강지영(25ㆍ여)씨는 황당한 경험을 했다. RDS는 살아있는 오리나 거위의 털을 뽑지 않는 방식으로 만든 제품에 부여하는 인증마크다. 스포츠 아웃도어 브랜드에서는 이를 ‘착한 패딩’ 또는 ‘착한 충전재’라는 문구로 홍보하고 있다. 지난해 큰 인기를 끌었던 ‘평창 롱패딩’은 대표적인 RDS 인증 제품이다.

하지만 강씨가 RDS 패딩을 집어 들자 매장 직원이 손을 내저으며 “가격이 저렴한 패딩은 무겁고 보온성이 낮다”며 다른 패딩을 권했다. 강 씨는 “인터넷에서 RDS 제품 판매를 하는 브랜드를 일부러 찾아간 건데 매장 직원들이 RDS가 뭔지 모르거나 RDS 인증 제품이 아닌 걸 권해 당황했다”고 말했다.

RDS 인증을 받거나 진행 중인 국내 기업은 47여개(올해 기준)에 달한다. 아웃도어 브랜드들이 동물 복지를 내세우며 RDS 패딩을 앞다퉈 홍보하고 있지만 정작 이를 구매하려는 소비자들은 헛걸음하기 일쑤다. 막상 매장을 방문하면 판매자들이 RDS 패딩의 개념조차 모르고 있거나 일부러 RDS 패딩이 아닌 다른 제품을 구매하도록 유도하기 때문이다. 인터넷 블로그나 카페에도 ‘RDS 패딩을 사기 힘들다’는 불만들이 심심찮게 올라오고 있다.

모든 패딩이 RDS 인증 제품인데….“그런 건 안 판다”

지난 26일 서울 시내에 있는 40여개의 스포츠 아웃도어 매장을 방문해 “RDS 패딩을 구매하고 싶다”고 하니 “우린 그런 거 안 판다”거나 “왜 굳이 그런 걸 입냐”는 반응이 돌아왔다. 그 말을 하는 판매자 옆에는 RDS 패딩이 걸려있었다. 이처럼 매장 내에 해당 제품이 버젓이 있는데도 다른 패딩을 권하는 이유는 마진 때문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비싼 제품을 팔아야 더 높은 수수료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 패션업계 관계자는 “대부분의 매장 직원들은 매출의 일정 부분을 수수료로 가져간다”고 말했다. RDS 패딩은 대부분 20~30만원으로 40만~100만원 선인 같은 브랜드 내의 다른 패딩에 비해 낮은 가격으로 책정돼 있다.

한 스포츠 아웃도어 브랜드 매장에 있는 RDS 홍보물. 백희연 기자

한 스포츠 아웃도어 브랜드 매장에 있는 RDS 홍보물. 백희연 기자

브랜드 본사에서 RDS에 대한 교육이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방문한 40여개의 매장 중 RDS 인증을 아는 판매자가 있는 매장은 절반 정도였다. “그런 건 처음 들었다”며 핸드폰에 ‘RDS’를 검색하는 판매자도 있었다. 한 스포츠 아웃도어 브랜드 관계자는 “책자를 비치해 파악하도록 유도하고 있다”면서도 “RDS 등에 대해 따로 교육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홍보는 RDS 패딩으로, 주력제품은 털(fur)이 붙은 패딩으로?

RDS 인증을 받은 패딩의 모자에 너구리털(라쿤퍼)이나 여우털(폭스퍼)를 붙여 가격을 높게 책정하는 브랜드도 있었다. 올해 모든 제품이 RDS 인증을 받았다는 브랜드 매장의 판매자 조차 “신상 패딩 모자는 폭스퍼라 인기가 좋다”며 구매를 유도했다. 라쿤퍼나 폭스퍼는 채취 과정에서 산 채로 가죽을 벗기거나, 좁은 우리에 가둬 생명에 위협이 될 정도로 살을 찌우는 등 동물 학대 논란이 있다. 윤리적 소비를 위해 RDS 인증을 받은 제품에 동물 학대 논란이 있는 털을 부착한 것이다. RDS 인증기관인 컨트롤유니언 코리아 관계자는 “우리도 모자에 털을 붙이는 게 RDS의 취지에 어긋난다고 업체들에 설명하긴 했다”면서도 “디자인은 브랜드의 자유라 그 부분까지 규제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백희연 기자 baek.heeyo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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