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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 우수연구센터 지원 막히자, 조순 부총리가 ‘특별예산’ 내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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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1977년 설립된 한국과학재단은 정부가 지원하는 과학기술 기초연구비의 배분을 맡았는데 88년 이사장을 맡은 나는 이를 활용해 대학 연구기능을 강화하려고 했다. 나는 우선 장기 지원을 받으며 수행하는 대규모 집단 연구를 ‘우수연구센터 사업’으로 명명하고 이를 추진했다. 우수연구센터는 기초과학 핵심연구 과제를 담당하는 과학연구센터(SRC), 첨단산업의 기초기술을 중점 연구하는 공학연구센터(ERC)로 나누고 나중에 지역연구센터(RRC)를 추가했다.

1988년 한국과학재단 이사장을 맡은 정근모 박사(오른쪽)가 소련 과학원의 프롤로프 부원장과 한-소 과학기술협력및 과학자교류에 관한 의정서에 서명한 뒤 교환하고 있다.정 이사장은 국내 대학의 우수연구센터 사업 외에 국제협력에도 노력했다. [중앙포토]

1988년 한국과학재단 이사장을 맡은 정근모 박사(오른쪽)가 소련 과학원의 프롤로프 부원장과 한-소 과학기술협력및 과학자교류에 관한 의정서에 서명한 뒤 교환하고 있다.정 이사장은 국내 대학의 우수연구센터 사업 외에 국제협력에도 노력했다. [중앙포토]

우수연구센터로 선정되면 각 3년씩 3기에 걸쳐 총 9년간 매년 10억까지 지원받을 수 있도록 했다. 개별 학교의 울타리를 넘어 협력 연구가 가능하도록 적어도 5개 대학이 참여하고 해당 분야 전문 교수 20명 이상이 참여하도록 요구했다. 88년 여름, ‘SRC·ERC 사업’으로 불리는 우수연구센터 프로젝트가 가동하면서 대학가의 연구 열기가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서로 다른 대학의 동일 분야 교수들이 함께 모여 연구 아이디어를 논의하고 격려하는 새로운 연구 풍토가 정착해갔다.

정근모, 과학기술이 밥이다 - 제131화(7614) #<67> 대학 연구예산 극적 돌파구 #“대학가를 연구 열기로 달구자” #9년간 매년 100억 지급 연구센터 #최소 5개대 교수 20명 참가 조건 #대학 울타리 넘어 협력 연구 유도 #혁신사업 하려니 예산 시한 지나 #예산담당 조순 부총리 찾아 브리핑 #“특별 예산 남았다” 흔쾌히 지원

문제는 자금이 부족했다는 점이다. 과학재단은 우선 자체 기금으로 사업을 시작한 뒤 정부에 특별 예산지원을 요청했다. 그러나 과학기술처는 “정부 예산은 이미 5월 초 신청을 마감해 예산 배정이 어렵다”고 통고해왔다. 나는 실망하는 과학재단 실무자들을 격려하면서 예산을 총괄하는 경제부총리를 직접 찾아 호소하기로 했다. 과학기술을 진흥해 잘 사는 나라를 만드는 데 꼭 필요한 사업이기 때문에 신청 시한이라는 형식 논리를 뛰어넘어 추진할 방법이 꼭 있을 것이란 신념이 있었다.

당시 조순 경제부총리는 68~88년 서울대 교수로 재직하며 학문적 업적을 쌓고 숱한 제자를 기른 경제학자였다. 서울상대를 마치고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 버클리)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은 그는 88~89년 경제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으로 일한 뒤 92~93년 한국은행 총재를 맡았다. 선출직으로 95~97년 서울특별시장, 98~2000년 국회의원(강릉 을)을 지냈다.

1990년 당정회의에서 새해 예산안을 설명하는 조순 부총리 겸 경제기회원 장관.[중앙포토]

1990년 당정회의에서 새해 예산안을 설명하는 조순 부총리 겸 경제기회원 장관.[중앙포토]

조 부총리는 내가 열정적으로 ‘SRC·ERC 사업’을 브리핑하자 경청하다가 끝나자마자 내 손을 덥석 잡았다. “정 박사, 고맙소. 이렇게 좋은 제안이라면 정부가 지원해야 하오. 부총리가 결정할 수 있는 예산이 남아 있으니 필요한 예산을 특별 배정하겠소.”

나는 감격했다. 조 부총리의 격려와 예산 배정 약속을 받으면서 ‘SRC·ERC 사업’은 날개를 달았다. 140장이 넘는 우수연구센터 지원서는 전문가들이 심사해 지원을 결정했다. 나는 연구 지원이 취약했던 사립대와 지방 소재 대학이 꼭 선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수연구센터가 서울대와 카이스트에만 집중된다면 사업 의미가 반감된다는 생각이었다. 사립대와 지방 소재 대학에 자리 잡은 교수들이 장기적으로 연구할 터전을 마련해줘야 한다는 논리였다. 결국 13개 SRC·ERC가 선정돼 사업이 시작됐다. 진통은 있었어도 새 시대는 열렸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황수연 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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