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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심장은 왼쪽, 지갑은 오른쪽’ 두는 경제정책 바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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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 교수 리셋 코리아 고용노동분과 위원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 교수 리셋 코리아 고용노동분과 위원

2018년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화두는 소득주도성장으로, 그 핵심은 3년 내 최저임금 1만원 달성이었다. 올해 최저임금은 16.4% 올랐고, 내년에도 10.9% 오른다. 설상가상으로 최저임금 산정 시간에 주휴 시간까지 넣어 대법원 판례 대비 20.1%의 추가 인상 효과가 발생한다. 합법 판결을 받은 기업들은 이제 시행령에 근거해 근로감독을 받을 경우 법령 위반으로 기소될 수 있다.

최저임금에 주휴시간 포함해 #기업은 과중한 부담 떠안아 #새해에는 노조 편향 벗어나 #국민 위한 실용주의 정책 펴길

통상임금 산정 때는 시행령을 대법 판례에 맞추어야 한다고 강조하더니 최저임금에는 거꾸로 시행령으로 판례를 바꾸어야 한다는 자기 모순적 행정으로 노동시장 혼돈은 커져만 간다. 주 52시간 규제도 도입되었지만, 근로시간제도 유연화가 패키지로 추진되지 못했다. 탄력근로제는 내년 2월까지는 국회 입법을 한다고 하지만, 절차의 유연화 없이 기간만 6개월로 연장하는 생색내기에 그칠까 염려된다.

지난 2월에는 GM 군산공장이 폐쇄됐고 본사의 대대적 구조조정 계획이 발표됐다. 트럼프 행정부는 수입차에 25% 관세 부과 카드를 만지작하니 자동차 산업은 시계 제로이다. 대통령 공약 사항인 광주형 일자리는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고자 투자를 유치하자는 것인데, 정치 포퓰리즘으로 변질했다. 전국 단위 노동조합이 합의하지 않은 점, 근로자를 채용하지 않은 상태에서 맺은 단체협약 유예의 유효성, 관련 기업의 공정거래법 위반 소지, 외국 투자자들의 소송 가능성 등의 복병들이 도사리고 있다.

조선업도 일본과 유럽이 정부 지원을 빌미로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준비 중이어서 회복 기미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이 와중에 경제성장률은 연초 3%에서 2.7%까지 낮추어졌고, 기계·건설 등 주요 산업들은 부진을 면치 못했다. 제조업 가동률은 72.8%까지 추락했고 설비 투자도 전년 대비 20% 축소됐다. 임금 체불액은 올해 1조5000억원을 기록해 역대 최고치를 경신할 것으로 전망된다.

시론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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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년의 정책은 노동조합 존중이었지, 국민 존중이 아니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도 노조 등 내부자의 고용 세습 비리로 얼룩졌고, 공개 채용 원칙이 무너져 청년들의 낙담은 커져만 갔다. 소득 분배는 악화해 기득권 이익을 더하고 약자를 배제하는 수구 정부 아니냐는 반문조차 나왔다.

문재인 정부는 과거 노무현 정부와 달리 노동계에 지속해서 러브콜을 보냈지만, 노동계는 반발하며 불법 점거와 임원 폭행 등이 잇따랐다. 상반기에 운영된 노동행정개혁위원회는 이전 정부의 주요 노동 행정을 담당했던 공무원들을 적폐로 몰았고 공무원 사회의 복지부동은 커졌다.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자회사 방식이 보편적으로 활용되었지만 노노 갈등은 커졌고 불법 파견 시비는 해결된 게 없다. 노동계의 민원 사항인 국제노동기구(ILO) 노동기본권 협약 비준 관련 공익위원 안도 발표되었고 내년에는 ILO 100주년 행사에 대통령이 참석해 비준 연설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국내 노동시장은 온갖 규제로 억제해 글로벌 스탠다드와는 거리가 멀면서, 유독 노동계 민원인 집단적 노사관계 이슈와 관련된 국제조약 비준 준비는 서둘렀다.

혁신성장정책을 한다지만 그것을 위한 밑그림이나 주체 활용 방안은 없었다. 혁신생태계 조성을 통해 산업의 신성장 동력을 마련하기 위한 종합적인 규제 혁신 정책을 펼쳐야 하는데, 1년 반이나 지나서야 “‘산업정책이 없다’는 비판에 뼈아픈 자성이 필요하다”는 대통령의 언급이 나왔다. 노동정책도 노사관계를 넘어 국민 경제 성장의 시각에서 정책을 펼쳐야 일자리 생태계가 조성됨을 인지해야 했다. 사회적 대화체도 노동계의 민원 처리, 집행하기 어려운 정책들의 하치장으로 전락해 정책 수립과 집행 과정에서 책임 정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새해 노동행정은 2018년과 달라야 한다. 포용정부라면 합리적 비판에 귀를 열어야 한다. 정책 비판을 정권 비판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권력 정점인 청와대의 순혈주의 운동권, ‘똑부’(똑똑하고 부지런함)들의 부처 정책에 대한 개입이 경제정책의 경맥(經脈)을 눌러왔다. 경제의 자율 생태계를 존중하고 글로벌 경제의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해 외부 전문가들의 열린 네트워크를 균형 있게 활용할 줄 아는 ‘똑게’(똑똑하고 게으름)가 되어야 실용적 경제정책을 수립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은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취임사를 불망초심(不忘初心)해야 한다. 독일 하르츠 노동 개혁, 중국의 흑묘백묘(黑猫白猫) 정책, ‘잃어버린 20년’을 경험했던 일본 노동시장의 부활도 국민을 위한 개혁,책임 정책을 펼칠 때 가능했다. 새해에는 심장은 왼쪽, 지갑은 오른쪽에 두는 실용주의 정책을 펼치길 바란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 교수·리셋 코리아 고용노동분과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