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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字, 세상을 말하다] 兼聽則明<겸청즉명>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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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6호 33면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시진핑(習近平) 시대 중국의 한 특징은 자신감(自信感)이다. 미국과 비록 힘겨운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지만 어차피 세계 최강이 되기 위해선 언젠간 겪어야 할 성장통(成長痛)이 아니겠냐며 애써 자신만만한 모습이다. 얼마 전 중국의 개혁개방 40주년을 기념하는 연설에서도 시진핑은 중국 인민들에게 4가지 자신을 가지라고 역설했다. 도로자신(道路自信), 제도자신(制度自信), 문화자신(文化自信), 이론자신(理論自信)이 그것이다. 중국이 걷는 길, 중국의 사회주의 제도, 중국의 문화, 중국특색의 사회주의는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닌 올바른 것으로 자신감을 가지라는 이야기다.

자신감을 갖는 건 좋은데 이면엔 자기만이 옳다는 독선(獨善)의 위험이 어른거린다. 시진핑 시대의 중국 사회가 앞선 시대와 비교해 더 닫혀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언론이다. 시진핑 시기 들어 중국 언론은 자신의 성(姓)을 당(黨)이라 했다. 중국 공산당의 입장을 충실히 전파하고 선전하는 임무를 수행하겠다는 자기 다짐이었던 것이다.

좌구명(左丘明)이 춘추시대 8국의 역사를 기록한 책 『국어(國語)』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백성의 입을 막는 것은 물길을 막는 것보다 위험하다(防民之口 甚於防川).” 백성과의 소통이 그 무엇보다 중요함을 강조한 말이다. 한데 여론의 중추 역할을 해야 할 언론이 자신의 성을 당이라 하는 형편이니 시진핑 시기의 중국은 상명하달(上命下達)의 사회이지 민의상달(民意上達)의 사회는 아니라는 짐작이 든다. 그래서 그런지 시진핑 시기의 유행어 중 하나가 정층설계(頂層設計)다. 위에서 먼저 구체적인 그림을 그리겠다는 것이다. 널리 여러 사람의 지혜를 모아 이익을 꾀하는 집사광익(集思廣益)의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고 지도부 일부에 의한 편협한 결정이 내려질 위험이 크다. 당 태종(太宗)이 위징(魏徵)에게 명군(明君)과 혼군(昏君)의 차이를 물었을 때 위징은 “겸청즉명(兼聽則明) 편신즉암(偏信則暗)”이라고 간결하게 답했다.

널리 견해를 구하면 명군이 되고 치우쳐 들으면 어리석은 군주가 된다는 말이다. 무릇 지도자란 자만하지 말고 항상 여러 의견을 경청해야 한다. 진(秦)을 말아먹은 호해(胡亥)는 환관 조고(趙高)만을 신임했기에, 수(隋) 양제(煬帝) 역시 간신 우세기(虞世基)의 말만 듣다가 대세를 그르쳤다. 현재 중국 내에선 미·중무역전쟁에 대한 논의가 억제되고 있다고 한다. 시진핑 정부에 대한 책임론이 비등할까 두려워서다. 문제는 우리 사정 또한 별반 나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연말 삶이 팍팍하고 고단한 이들이 한둘이 아니다. 사상 처음으로 자영업자 폐업이 100만 명을 넘을 것이라 한다. 올 한 해 동안 나온 수많은 지적에도 불구하고 일방통행 정책을 강행한 결과가 아닌지 겸허히 돌아봐야 한다.

유상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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