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외피 입고 새로 태어난 '조상의 삶'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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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은백색 스크린에 나비 한 쌍이 훨훨 날아다닌다. 부부 화합을 표현한 한기창씨의 비디오 아트다. 장자(莊子)의 '호접몽(胡蝶夢)'이 바로 연상된다. 내가 나비일까, 나비가 나일까. 스크린 아래에는 비단이불이 곱게 깔려있다. 옛 부부들은 이 침상에서 어떤 꿈을 꾸었을까. 나비가 날아드는 태몽을 꾸진 않았을까. 이불 앞에는 다산(多産)을 기원하는 동전꾸러미가 놓여있다.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꿈꾸었던 '이상적 삶'을 재연한 전시관이 14일 서울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선보였다. 출생부터 사망까지 우리 조상의 일생을 되살렸다. 1992년 민속박물관 개관과 함께 마련됐던 '한국인의 일생' 코너를 14년 만에 리모델링한 것. 1년 6개월의 준비 끝에 새로 탄생한 전시관은 전통과 첨단, 전시와 놀이를 접합했다.

전시장 초입의 비디오 아트부터 그렇다. '민속'보다 '현대'의 냄새가 짙게 풍긴다. 전시는 장수와 만복을 소망하는 '수복(壽福)'의 이미지를 형상화한 설치미술로 끝난다. 현대미술관에 들어온 느낌마저 준다.

태몽.신방 코너를 지나면 돌잔치를 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 오른쪽은 교육 코너. 벽 한쪽이 책.책상.벼루 등으로 꾸며졌다. 아이들이 주사위를 던지며 전국 명승지를 찾아다녔던 게임인 '청구람승도(靑邱覽勝圖)'도 보인다. 전시는 혼례.가족.출세.풍류.상례(喪禮).제례 등으로 계속된다.

전시품은 총 1400점. 예전보다 두 배 가까이 늘었다. 경남 산청군에서 수집한 길이 5m의 대형 상여(중요민속자료 230호.사진)가 눈에 띈다. 지방 주민들이 선정(善政)을 펼쳤던 관리들에게 기념품으로 증정했던 '천인산(千人傘.파라솔)'도 흥미롭다. 편지쓰기, 쌍륙놀이(주사위로 말을 진행시켜 적진으로 들어가는 놀이), 국악기 연주 감상, 한약재 냄새 맡기 등 전통 체험 프로그램도 다수 준비됐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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