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포럼

김근태 체제가 성공하려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5면

김근태 의원은 자신에게 철저한 사람이다. 여당의 대선 주자군에 포함돼 있으면서도 동료 의원과 식사조차 자주 하지 않는 이유를 물어보았다. "앞으로는 자주 하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돈이 없어서 그러느냐"고 했더니 그는 "사실은 그렇다"고 했다. 후원회를 통해 받는 정치자금으로는 식사비를 내기 힘들다는 얘기였다. 김 의원은 2002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도중에 "권노갑씨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았다"고 고백했다가 재판정에 서야 했다.

김 의원은 논리적이고 성실하다. "콘텐트는 있는데 대중성이 부족하다" "늘 한 박자 늦다"는 지적을 받는 것도 논리적 완결성을 추구하는 그의 특성과 무관하지 않다. 심지어 자신의 감정조차 논리로 치환해 설명하려 한다. 옆에서 보기에는 노무현 대통령과 감정의 골이 깊은데도, 그는 이 '감정'이 자신의 행위를 결정짓는다는 사실을 결코 인정하지 않는다.

두 사람 사이가 벌어진 것은 꽤 오래됐다. 2002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때 김 의원은 노무현 쪽 사람이었던 유시민(현 보건복지부 장관)씨로부터 '대중성 부족'을 이유로 사퇴 요구를 받았다. 노 후보의 지지율이 바닥권이었던 그해 가을 김 의원은 노 후보와 정몽준 의원의 '후보 단일화'를 추진했다. 노 대통령은 민주당 대선 경선 자금을 해명하면서 김 의원의 고백을 "웃음거리가 됐다"고 표현했다. 그런 갈등 국면마다 김 의원은 감정을 표출하기보다 역사와 정치철학을 말했다. 흔히 DJ와 YS의 관계에 비유되는 두 사람의 관계를 알기에 그는 한동안 여당 의원들의 기피 대상 1호였다.

그런 그가 이제 난파 직전의 열린우리당 당의장을 맡았다. 당장 방향 설정부터 새로 해야 한다. 해답은 투표 내용에 다 들어 있다. 여당 지지자의 40% 이상이 한나라당에 표를 던졌다고 한다. 진보 노선을 지지하던 유권자가 현 정권에 실망했다면 민노당에 표를 줄지언정 한나라당을 지지하겠는가. 개혁의 원칙에는 동감했지만 실효성 없는 정책에 실망한 중도 성향의 국민이 돌아선 것이다. 국정운영에 책임이 없는 민노당 식으로 가지 못해 안달한다면 백전백패다. 민노당 식 발언으로 개인의 인기 관리를 하려는 의원들에 대해 "그러려면 차라리 민노당으로 가라"고 말해야 한다.

김 의장은 좌파였다. 좌파 운동가 출신은 '변절'이니 '수정주의자'니 하는 말을 가장 듣기 싫어한다. 김 의장이 '서민경제'를 강조하고 '추가 성장론'을 주장하자 좌파 진영에서 당장 "우향우 하는 거냐"는 비판이 나왔다. 그러자 여당 대변인이 "지금 비상 깜빡이를 켜고 직진하고 있다"고 해명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김 의장이 그런 비판에 흔들리는 조짐이 아닌가 우려되는 대목이었다.

선거 후 노 대통령은 '마이 웨이'를 외치고 있다. "교조적 논리로 정부 정책을 흔드는 것이 가장 위험하다"는 말도 했다. 청와대는 부인했지만 이 발언은 여당의 실용 노선 채택 움직임에 대한 경고로 받아들여졌다. 노 대통령과의 결별을 두려워해서는 여당의 회생이 어려울 수 있다. 노 대통령에 대해 정치적 채무가 별로 없는 그가 이 시기에 당의장을 맡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김 의장은 "민주화 세력이라는 것을 더 이상 훈장처럼 달고 다니지 않겠다"고 했다. 이병완 청와대 비서실장을 만나서는 "중산층과 서민의 고통을 피부로 느꼈다"고 말했다. 비서실장에는 현대차 사장과 현대캐피탈 회장을 지낸 이계안 의원을 택했다. 이런 행보에서 나타난 각오와 초심을 지켜 나가야 김 의장과 여당의 앞날에 작은 희망이라도 있다.

김두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