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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 할아버지 썰매 끌어줄 순록, 크리스마스 땐 사실상 동면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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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지난 22일 스위스 서부 몽트뢰의 레만 호수 위에 날고 있는 산타클로스와 썰매. 몽트뢰에는 스위스 최대의 장터가 열린다.[신화사=연합]

지난 22일 스위스 서부 몽트뢰의 레만 호수 위에 날고 있는 산타클로스와 썰매. 몽트뢰에는 스위스 최대의 장터가 열린다.[신화사=연합]

연중 여름 3개월만 풀 뜯는 북극 순록

산타 할아버지의 썰매를 끌어줄 사슴이 크리스마스에는 사실상 동면 중이라 활동이 어렵다고 미국 뉴욕타임스가 24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스위스 비엔나 대학의 월터 아놀드 교수는 최근 ‘추위에 대한 동물의 적응’이란 제목으로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게재한 논문에서 북위 80도에 가까운 노르웨이 스발바르 제도에 살고 있는 순록들은 해가 24시간 동안 떠있는 여름 3개월 동안에 거의 쉬지 않고 풀을 뜯으며, 나머지 긴 어둠의 겨울 동안에는 먹이 활동을 하지 않고 뱃속에 저장해둔 에너지에 의지해 지낸다고 밝혔다. 아놀드 교수는 “스발바르의 순록은 연중 단 3개월만 정상적인 포유류일 뿐”이라고 말했다.

북극 지방의 순록은 어떻게 이런 삶을 살 수 있을까. 그간 과학자들은 스발바르 제도의 순록들은 오랜 진화기간 동안 표준적인 24시간 단위의 생물학적 리듬 부족 때문에 생체시계를 잃어버렸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극한조건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극한 방식의 생활이 필요했다는 얘기다.

산타클로스가 순록이 끄는 썰매를 타고 다니는 모습으로 일반 사람들 앞에 등장한 것은 1822년 성탄절 이브라고 한다. 당시 미국 뉴욕의 신학자 클레멘트 무어가 쓴 '성 니콜라스의 방문'이라는 시가 그 효시다. [AP= 연합뉴스]

산타클로스가 순록이 끄는 썰매를 타고 다니는 모습으로 일반 사람들 앞에 등장한 것은 1822년 성탄절 이브라고 한다. 당시 미국 뉴욕의 신학자 클레멘트 무어가 쓴 '성 니콜라스의 방문'이라는 시가 그 효시다. [AP= 연합뉴스]

혹독한 환경 속 독특한 생체리듬 가지고 있어 

하지만 아놀드 교수 연구팀은 연구를 통해 스발바르의 순록들도 특이하긴 하지만 나름의 주기적인 생물학적 리듬을 가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 생물학적 리듬의 변화는 때로 아주 미미해서 수년 이상 세밀하게 관찰해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고 봤다.

연구팀은 센서가 들어있는 알약 모양의 금속 캡슐을 순록의 위장 속에 집어넣어 체온과 맥박ㆍ움직임 등을 측정했다. 그리고 2년간 순록 네 마리의 위장 속에서 전송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흥미로운 패턴을 발견했다. 계절이 여름에 가까워지면서 들판에 푸른 풀들이 올라올 즈음이면, 순록의 생체 주기 시계는 극과 극을 달렸다. 덕분에 해가 있는 낮 동안은 풀 뜯기에 여념이 없었다가 밤이면 활동이 극적으로 줄어들었다. 본격적으로 여름철이 되면 순록의 생체리듬은 무시할 정도로 약해졌다. 덕분에 하루 24시간을 거의 깨어 있으면서 풀을 뜯어 먹는데 몰두할 수 있게 됐다.

아놀드 교수는 “여름철이 되면 순록은 마치 교대 근무에 나선 노동자처럼 생체 시계를 무시할 수 있게 된다”며“북극의 긴 겨울을 이겨내고 생존하기 위한 핵심 요인이 바로 이것”이라고 말했다.

영국의 카밀라 왕세자비가 크리스마스를 앞둔 지난 6일 런던의 클라렌스 하우스 정원에서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 행사를 위해 순록과 함께 섰다. [AP=연합뉴스]

영국의 카밀라 왕세자비가 크리스마스를 앞둔 지난 6일 런던의 클라렌스 하우스 정원에서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 행사를 위해 순록과 함께 섰다. [AP=연합뉴스]

'루돌프는 움직이는 동면 동물' 

반대로 어두운 밤이 계속되는 겨울이 오면 순록의 생체시계는 하루 종일 졸음이 오는 쪽으로 돌변하게 된다. 아놀드 교수는 “순록이 동면에 빠지는 것은 아니지만, 거의 동면에 가까운 상태가 된다“며“이런 상태의 동물을 ‘움직이는 동면 동물’이라 부르고 싶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는 아놀드 교수의 연구를 인용해 겨울철이면 순록의 신진대사율이 여름철의 3분의 1수준으로 줄어들어 (산타 할아버지의 썰매를 끌어주기 위해) 지붕에서 뛰어오를 만큼의 상태가 되지 못한다고 전했다.

최준호 기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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