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평] 운(運), 둔(鈍), 근(根)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자고로 성공에는 세 가지 요체가 있다. 운(運), 둔(鈍), 근(根)이 그것이다. 사람은 능력 하나만으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운을 잘 타야 하는 법이다. 때를 잘 만나야 하고, 사람을 잘 만나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운을 잘 타고 나가려면 역시 운이 다가오기를 기다리는 일종의 둔한 맛이 있어야 한다. 운이 트일 때까지 버티어 내는 끈기와 근성이 있어야 한다."('호암어록', 2백96~2백97쪽 참조)

*** 왜 분열과 분쟁의 중심에 서나

노무현 대통령은 운이 좋은 사람이다. 물론 능력없이 운만 좋은 사람이란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는 분명 대운이 따른 사람이다. 지난 대선 후보경선 과정에서도 그랬고, 후보단일화 과정에서도, 또 대선 바로 전날의 공조 파기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에 당선된 것을 봐도 그렇다.

그런데 운이라는 것은 바닷물과 같다. 밀물과 썰물의 흐름이 있는 것이다. 때로는 주체할 수 없으리만큼 운이 밀려와서 뭘 해도 되는 때가 있는가 하면, 그 반대로 썰물 빠지듯 운이 빠져나가 백방이 무효인 경우도 있게 마련이다.

盧대통령에게는 요즘이 그런 때가 아닌가 싶다. 뭐 하나 제대로 되는 일이 없다. 태풍이 한쪽 뺨을 후려치니 환율이 또 다른 한 쪽을 후려친다. 민심도 경제도 영 죽을 맛이다. 여당이 둘로 쪼개져 신당을 차렸다지만 별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여당 없는 정부만 겉돌고 있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盧대통령에게는 다시 운때가 오기를 기다리는 일종의 둔한 맛, 즉 둔기가 필요한 것인지 모른다. 그런데 대통령은 예나 지금이나 너무 예민하고 조급하다. 느긋하게 기다리는 맛이 없다. 거침없는 말만큼 빠르고 성마르다.

그래서 이런저런 구설에 오르고 또 그것이 계기가 돼 가파른 대립구도가 우리 사회 전반으로 퍼져가는 것이 지난 반년 동안 반복돼온 일이다. 그 결과 통합을 이뤄내야 할 대통령이 항상 분열과 분쟁의 중심에 서버리는 결과를 자초하고 말았다.

그에겐 '한 박자 쉬고'가 없다. 뭐하나 그냥 지나가는 것이 없다. 말과 생각이 걸러지지 않는다. 혹자는 그것이 매력이라고도 말한다. 하지만 그것이 늘 혼란을 부채질하였음 역시 부인하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말 좀 아끼고 좀더 둔해지는 것이 盧대통령에게는 물론이고 국민도, 나라도 평안을 되찾는 간단하지만 긴요한 처방이 아닐까 싶다.

대통령은 시간적으로 한 템포 늦추는 것만이 아니라, 여론과 공론에도 좀 둔감할 필요가 있다. 여론을 존중하는 대통령은 '굿 프레지던트'다. 그러나 여론에 애써 둔감하면서 그것에 휘둘리지 않고 국가의 나아갈 방향을 보다 분명하게 제시할 줄 아는 대통령이야말로 '그레이트 프레지던트'다.

치국(治國)의 근본은 '결정'이라고 하지 않던가. 나라를 다스림이란 곧 결정해야 할 때 결정할 줄 아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원전수거물관리시설(원전센터)도, 사패산도, 경인운하도 모두 여론과 공론의 덫에 걸려 결정을 미룬 채 허공에 매달려 있다.

대통령과 정부가 여론과 공론에 너무 민감한 탓에 그것에 떠밀려 정책과 실행이 표류하고 있는 것이다. 태풍이 올라오는 날 '인당수 사랑가' 뮤지컬을 관람할 정도로 여유있게 배포있고 '둔' 할 수 있으면서 왜 언론과 여론에는 그토록 민감한지 잘 모르겠다.

*** 運이 다시 올 때까지 버티어 내야

나라가 참 어렵다. 지금은 다시 나라의 운이 트일 때까지 버티어 내는 근성과 끈기가 절실히 필요한 때다. 그런데 대통령은 그 근성과 끈기 대신 여전히 오기로 뭉쳐 있는 것 같다.

종교계 원로들이 대통령을 찾아가 언론과 화해하라고 이야기했더니 그럴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바로 그게 오기다. 대통령은 권력자다. 그것도 최고 권력자다. 권력자가 오기를 부리면 국민은 피곤해지다 못해 절망한다. 진정으로 '관용의 정치'를 이루고 '감정의 정치'로부터 자유롭고자 한다면 대통령부터 변해야 한다.

"사장 그릇만큼 기업은 큰다." 마찬가지로 "대통령 그릇만큼 나라도 큰다." 나라를 쪼개는 대통령이 아니라 더 크게 키우는 대통령이 되기 위해 '운, 둔, 근'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씹길 바란다.

정진홍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