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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 미국 스리마일 원전사고 충격…안전장치 개발로 과학적 대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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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아들 진후의 치료를 위해 미국과학재단으로 자리를 옮긴 1979년과 아들에게 신장을 이식한 80년은 개인적으로도 힘들었지만 세계 에너지계도 어려움에 부딪혔다. 제2차 석유파동을 겪은 미국의 지미 카터 행정부는 원자력을 비롯한 대체에너지 개발을 서둘렀고 자원 부족국가 한국도 이를 고민했다. 당시 미국은 원자력 발전소로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웨스팅하우스, 제너럴 일렉트릭, 밥콕 앤 윌콕스(B&W), 컴버스천 엔지니어링 등 발전설비 공급업체들은 고유 원전 모델을 개발하며 경쟁했다.

정근모, 과학기술이 밥이다 - 제131화(7607) #<59> 대체에너지 개발에 온힘 #원전 모델 경쟁적 개발과 건설 #한국도 미·캐나다·프랑스서 도입 #79년 스리마일 원전 사고 타격 #고장에 반복된 인간 실수 겹쳐 #원전 안전 획기적 개선 계기로 #과학재단 대체에너지 연구사업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스라마일아일랜드(TMI) 원전에서 사고가 발생하자 지미 카터 당시 미국 대통령이 통제실을 돌아보고 있다. 원전을 대거 건설해 석유 위기에서 벗어나려던 카터의 구상은 원전 사고로 일시 중지됐다. [위키피디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스라마일아일랜드(TMI) 원전에서 사고가 발생하자 지미 카터 당시 미국 대통령이 통제실을 돌아보고 있다. 원전을 대거 건설해 석유 위기에서 벗어나려던 카터의 구상은 원전 사고로 일시 중지됐다. [위키피디아]

이미 68년 원전 건설을 결정했던 한국도 국민 생활과 산업발전에 필요한 전력을 원전에서 찾았다. 웨스팅하우스의 60만kW급 가압경수로(PWR)를 선택한 데 이어 가압중수로를 쓰는 캐나다 원자력 공사의 60만kW급 캔두(CANDU)형 건설과 프랑스 국립 원전사 프라마톰의 가압경수로 도입도 결정했다.
그런데 79년 3월 펜실베이니아주 스리마일아일랜드(TMI) 원전에서 사고가 발생했다. B&W사가 건설해 운전한 지 1년이 되지 않았던 이 원전의 원자로 내 핵연료봉 냉각이 부족해 노심이 과열돼 녹아내렸다. 원자력 발전은 핵연료를 핵 반응시켜 발생한 열로 냉각수를 고온의 증기로 만들고 이 증기로 발전용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한다. 이때 원자로에서 발생한 열을 충분히 방출하지 못하면 핵연료봉이 가열돼 녹을 수 있는데 TMI 원전에서 이런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방사성 물질은 거의 유출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받은 충격은 작지 않았다.

1979년 3월 방사성 물질 누출사고가 난 스리마일아일랜드 원전에서 직원들이 제거 작업을 펴고 있다. [위키피디아]

1979년 3월 방사성 물질 누출사고가 난 스리마일아일랜드 원전에서 직원들이 제거 작업을 펴고 있다. [위키피디아]

원전 설계자는 방사능이 원전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겹겹이 다중 방호 시스템을 설치한다. 시스템 중 하나라도 유지되면 어떠한 사고에도 방사능 유출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게 원자력 안전공학의 원리다. 하지만 TMI 원전에선 기기 고장과 설계 오류와 같은 시스템의 결함과 정비원 실수, 운전자 오판과 같은 인적 오류가 복합적으로 일어나면서 사고로 발전했다.
이 사고 때문에 원자력으로 에너지 위기를 극복하려던 미국 전력 산업계는 충격을 받았다. 국민의 원전 추가 건설 지지도도 떨어졌다. 원자력 산업계는 사고를 교훈 삼아 안전 수준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방법으로 대응했다. 이후 원자력 안전은 공학적 안전 원리에 더해 심층 방어라는 철학적 안전 개념으로 진일보하게 됐다. 개선된 안전장치들을 개발해 설계에 반영했고 원전 운전자 훈련과 안전교육을 강화했다. 국민과 소통도 강화해 원전 이해도를 높이는 교육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제공했다. 사고에 감정 대신 이성적인 과학기술로 대응하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1979년 사고가 발생한 미국 스리마일아일랜드 원전. 사고가 난 왼쪽의 2호기는 가동을 중단했지만 오른쪽 1호기는 계속 가동 중이다. 사고 뒤 미국 원전 안전은 획기적으로 개선됐다. [위키피디아]

1979년 사고가 발생한 미국 스리마일아일랜드 원전. 사고가 난 왼쪽의 2호기는 가동을 중단했지만 오른쪽 1호기는 계속 가동 중이다. 사고 뒤 미국 원전 안전은 획기적으로 개선됐다. [위키피디아]

당시 나는 미국과학재단에서 대체에너지 개발에 관한 기술 검토와 개발 전략 수립 및 에너지 정책 연구 추진 업무를 맡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다. 아들의 건강 문제로 고심하면서도 과학재단의 대체에너지 업무에도 바빴던 시절이었다. 그 와중에 과학재단으로부터 최우수상을 받고 승진까지 했으니 지금 돌이켜 봐도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한국에서 갑자기 연락이 왔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황수연 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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