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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전영기의 시시각각

원자력의 마지막 숨통마저 끊으려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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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전영기
전영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추락하면서 ‘반문(反文)국민연대’ 논의가 활발하다. 문 대통령의 기이한 정치 행각에 반대하는 모든 세력이 친박·비박·태극기·중도·진보 가릴 것 없이 하나로 뭉쳐 저항하자는 것이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이를 “조원진에서 안철수까지”라는 말로 압축한 바 있다. 반문연대론은 긍정적 목표 없이 부정적 감정에 호소한다는 점에서 퇴행적인 면이 있다. 그럼에도 이런 논의가 초정파적, 자연발생적으로 터져 나오는 이유를 문 대통령이 심각하게 느껴야 한다. 청와대와 민주당이 지혜롭게 대처하지 않으면 반문연대는 마른 하늘에 들불처럼 순식간에 번질 것이다.

신한울 3, 4호기 건설 취소 임박 #탈원전 반대 100만 명 서명 돌입

지난 13일 국회 도서관 지하강당에서 탈원전 미신을 타파하고 원자력 에너지를 살리자는 100만 명 국민 서명운동이 시작됐다. ‘원자력 반문연대’는 문재인 정권을 전반적으로 무조건 반대하지 않는다. 원자력의 씨를 말리는 난폭한 탈원전 정책만 반대한다. 목표는 신재생 외바퀴가 아니라 태양광+원전(原電) 쌍바퀴로 굴러가는 안정적인 에너지 정책의 재수립이다. 공식 이름은 ‘탈원전 반대 및 신한울 3, 4호기 건설 재개를 위한 범국민 서명운동본부’(공동 본부장 최연혜 의원).

 발족 사흘 만인 16일 오후 8시 현재 7만2000명이 온라인 서명을 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탈원전 반대를 주제로 숱한 청원이 있었지만 이번처럼 참여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적은 없다. 그만큼 탈원전으로 현재가 고통스럽고 미래가 두려운 사람이 많아졌다는 얘기다. 이번 주부턴 취직할 곳이 없어진 전국의 원자력학과 대학생들, 일터와 생활 공동체가 파괴된 울진 주민들이 앞장서 전국 주요 도시에서 길거리 서명을 받는다고 한다. 그들의 목표대로 100만 시민이 서명을 완료해 탈원전 미신을 타파하는 동력이 되길 바랄 뿐이다.

서명본부 발족식엔 한국당 계열뿐 아니라 바른미래당(정운천·김중로 의원), 정의당(고범규 김포지역위원회 사무국장) 사람들도 합류했다. 호남에서 태어나고 자라 광주시 환경생태국장을 지낸 신광조(61)씨까지 무대에 올라 “탈원전은 망국에 이르는 길”이라고 외쳤다. 그는 자신을 이낙연 총리의 광주일고 4년 후배이자 골수 좌파 운동권 출신이라고 소개했다. 신광조씨는 12일자 한겨레신문 1면에 몇 년간 모은 적금을 깨 통단으로 광고를 실은 주인공이다. 1970년대 권력에 탄압받는 동아일보에 백지광고를 내는 심정이라고 했다. 신씨는 ‘이낙연 총리께 드리는 탈원전 정책 공개질의’라는 제목 아래 “막연한 두려움으로 과학기술의 발전과 미래에 대한 도전을 포기할 것인가”라고 묻고 “친환경의 쌍두마차, 원전과 태양광의 미래지향적인 에너지 믹스가 답”이라고 말했다. “45년간 사고 한 번 안 내고 대한민국에 헌신해 온 원자력이라는 머슴을 하루아침에 저버리는 배짱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이냐”고 절규했다.

이 정부의 탈원전 프로그램 다음 수순은 울진에 부지 조성까지 다 끝낸 신한울 3, 4호기 건설을 취소하는 것이다. 신한울 3, 4호기는 한국 원자력의 마지막 숨통이다. 이 숨통마저 끊으면 원전 기술인력과 부품 생태계는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붕괴된다. 앞으로 해외나 북한과 원전 수출계약이 맺어진다 해도 국내 공급 능력은 사라진다. 손발은 몰라도 숨통은 한번 끊어지면 다시 살아날 수 없다. 초이념, 초지역적 원자력 살리기 불길이 신한울 3, 4호기 타살이 임박한 시점에 타오른 이유다. 100만 명 서명운동으로 문 대통령의 생각이 바뀐다면 반문연대는 더 이상 존재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신한울은 숨을 쉬어야 한다.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