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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예산 없어 다리 폐쇄…지금 일본 지방도시서 일어난 일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이형종의 초고령사회 일본에서 배운다(16)

미국 자동차 산업의 몰락으로 슬럼가로 변한 디트로이트 도심. 미국 디트로이트 시는 180억 달러 넘는 부채를 안고 파산 신청했다. 인구 유출로 세수가 줄어들고, 막대한 채무를 상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남정호 특파원]

미국 자동차 산업의 몰락으로 슬럼가로 변한 디트로이트 도심. 미국 디트로이트 시는 180억 달러 넘는 부채를 안고 파산 신청했다. 인구 유출로 세수가 줄어들고, 막대한 채무를 상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남정호 특파원]

지방자치단체가 파산한 뉴스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기업이 적자경영으로 파산하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지자체의 파산은 좀처럼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다. 실제로 2013년 미국 디트로이트시는 180억 달러 넘는 부채를 안고 파산 신청했다. 인구 유출로 세수가 줄어들고, 막대한 채무를 상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이보다 앞서 지방 도시가 파산한 사례가 있다. 홋카이도에 있는 유바(夕張)리 시다. 유바리 시는 석탄산업 말고는 산업기반이 부족해 고용 사정이 좋지 않았다. 일찍부터 젊은 세대는 도시로 나가 인구가 급속히 감소하면서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됐다.

1990년대 석탄산업의 쇠퇴하자 테마파크 건설·스키장 개설·기업유치로 돌파구를 마련해 지역경제를 재생하고, 젊은 세대의 인구유출을 억제해 고용을 창출하려고 했다. 그러나 관광과 레크리에이션 시설들은 방만 경영으로 누적적자에 허덕이다 2007년 353억엔의 적자를 안고 재정 파탄에 이르자 ‘재정재생단체’로 지정됐다.

석탄산업 붕괴로 재정 파탄에 이른 유바리 시

탄광도시였던 유바리 시의 옛 풍경. 유바리 시는 전성기에 인구가 12만 명이었지만 지금은 약 9000명이다. [유바리역사자료관]

탄광도시였던 유바리 시의 옛 풍경. 유바리 시는 전성기에 인구가 12만 명이었지만 지금은 약 9000명이다. [유바리역사자료관]

유바리 시는 전성기에 인구가 12만 명이었지만, 지금은 약 9000명이다. 지자체 도산에 해당하는 재정재건단체로 지정된 유일한 도시다. 재정재생단체가 되면 예산편성을 할 때 국가의 동의를 얻어야 하고, 독자적인 사업을 할 수 없다. 지자체이면서 자치가 허용되지 않는다.

시민은 18년에 걸쳐 차입금을 상환하며 생활해야 한다. 세수가 8억엔밖에 없는데 매년 26억엔씩 상환해야 한다. 예산편성을 할 때마다 숨이 막힐 것 같은 심각한 논의가 이어진다. 계획에 없는 예산은 확보하기 어렵다. 계획을 변경하려면 국가의 동의가 필요하다. 어떤 행정업무도 쉽게 처리하기 어렵다.

결국 재정 파탄의 혹독한 대가를 치르는 건 시민들이다. 유바리 시의 주민은 전국 최저의 행정서비스와 전국 최고의 재정부담을 지고 있다. 재정 파탄 후 새롭게 입탕세와 쓰레기처리 수수료 등이 도입됐고, 각종 세금과 공공요금이 인상됐다. 파산 전보다 시민세는 3000엔에서 3500엔으로, 자동차세는 1.5배, 하수도 요금은 동경의 약 2배로 올랐다. 시민세와 도민세는 지자체 중에서 가장 높다. 지역의 공공시설 이용료도 모두 올랐다.

집회장소와 대중편의시설, 중학교 등 공공시설이 점차 폐쇄돼 남은 공공 서비스는 전국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저출산이 진행되면서 7개의 초등학교, 4개의 중학교는 각각 1개교씩 통폐합됐다. 도서관과 미술관 시설은 모두 폐지됐다. 공원은 정비되지 않고 의료기관도 축소됐다. 노후화한 시영주택을 수리하거나 위험한 폐가를 제거할 돈도 없다. 주민들은 생활고로 인해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재정 파탄 상황에서 행정 서비스의 소중함을 인식하고 있다.

유바리 시는 주민의 부담만 요구하지 않고, 스스로 살을 깎는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먼저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주민에게 더 많은 부담을 호소했다. 인건비지출을 억제하려고 시의 직원 수를 대폭 줄였다. 260명의 시 직원을 100명으로, 의원 수도 18명에서 9명으로 줄였다. 재정 파탄 후 55명의 관리직 중 정년퇴직을 앞둔 부장은 전원이, 과장급은 3명만 남기고 모두 퇴직하였다.

남은 직원의 연봉은 40% 삭감했다. 국가는 인구감소에 따라 직원 수를 줄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어떤 지원대책도 취하지 않았다. 그러나 인구가 줄어도 사무는 그에 비례해 줄어들지 않는다. 직원은 야근으로 잔업을 처리했다. 경비절감을 위해 오후 5시가 되면 겨울에도 난방을 껐다.

유바리 시는 파탄 후 10년이 지나 116억엔을 상환했다. 유바리 시의 전문가로 구성된 재생대책검토위원회는 혹독한 구조조정으로 유바리 시 전체가 한계에 직면했다고 생각했다. 재정재생계획이 끝나면 시 직원은 모두 떠나고 조직 자체가 없어질지 모른다며 위기감을 전했다. 위원회는 재정의 재건성 확보에 노력하면서 자녀 양육지원 서비스 충실, 콤팩스테이화를 전제로 한 복합 공공시설 정비, 시 직원의 처우 개선을 시장에게 제안했다.

유바리 시장은 위원회의 제안을 받아들여 국가에 긴축일변도 정책의 개선을 호소했다. 국가는 지금까지 유바리시의 개혁 열정을 높이 평가하고, 2017년 3월 재정재생계획의 근본적인 개선을 검토하기로 했다. 남은 부채 200억엔 상환에 주력하고, 지역재생을 위해 필요한 예산은 실정에 맞춰 유연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승인했다.

유바리 시의 재정 파탄 후 10년이 지났다. 인구는 약 30% 감소하고, 시 직원은 대량 퇴직했다. 그러나 유바리 시는 아직도 험난한 길을 계속 가야 한다.

유바리 시의 2019 고향 납세 팜플렛. 유바리 시는 주민의 부담만 요구하지 않고, 스스로 살을 깎는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먼저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주민에게 더 많은 부담을 호소했다. [출처 유바리 시 홈페이지]

유바리 시의 2019 고향 납세 팜플렛. 유바리 시는 주민의 부담만 요구하지 않고, 스스로 살을 깎는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먼저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주민에게 더 많은 부담을 호소했다. [출처 유바리 시 홈페이지]

앞으로도 유바리 시와 같이 일본의 많은 지자체는 심각한 재정 상황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 2009년 총무성은 지자체의 재정 파탄에 대비해 법률 검토에 들어갔다. 재정이 심각하게 악화하기 전에 일찍 대책을 마련하도록 지방재정 건전화 법을 만들었다. 재정적자비율이 일정기준을 넘는 지자체는 재생계획을 만들도록 했다.

현재 상당수의 지자체는 급격한 인구감소와 고령화 진행으로 기능 자체가 어려운 상황에 있다. 앞으로 고령화에 따라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지방의 재정은 악화할 것이다. 지자체의 재정 건전화 문제는 더욱 불거질 것이다. 많은 지자체가 언제 파산할지 모른다.

와카야마 현 타나베(田辺)시에선 아키츠 다리가 2017년 3월부터 통행이 금지됐다. 안전점검 결과 위험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시의 예산이 부족해 대체 보수할 여유가 없어 철거방침을 세우고, 주민의 통행을 차단했다. 타나베 시는 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지만, 인구감소에 따라 세수도 대폭 줄어들고 있다.

지금까지 지자체는 생활 인프라를 정비하는 데 재정 투입의 우선순위를 두었다. 그러나 이제는 재원 부족으로 예산이 없어 손을 쓸 수 없는 부분이 늘어나고 있다. 방치해둔다면 행정서비스가 멈출 수밖에 없다.

지방세의 국세 이전 놓고 갑론을박  

최근 총무성은 이러한 지자체들에 재원을 지원하는 개혁안을 제시했다. 동경 등 대도시와 지방의 세수 격차 문제를 시정해 지방의 심각한 재정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다. 지방세인 법인사업세 일부를 일단 국세로 전환하고, 지자체에 재배분할 것을 제안했다. 약 40조엔의 지방세 수입 중 지방 법인세는 6조엔을 차지한다. 이 세금은 기업이 집중된 대도시권에 편재돼 있다. 주민 1인당 세수 최대인 도쿄와 최소 나라 현의 격차는 6배나 된다.

그러나 도쿄는 반발하고 있다. 지방세 이전은 일본의 경제성장에 마이너스 효과가 나고, 지자체의 근본적인 구제대책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방 재원 자체가 전국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세수 격차를 시정하려면 국가에서 지방으로 세원을 이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국지사회는 지방 법인세의 편재시정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지방의 세금을 놓고 대도시와 지자체가 서로 대립하고 있다.

고령화로 정부채무 급증하는 일본. 일본은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고령화 선진국이다. 유바리시의 파탄 사례는 선진국이 겪고 있는 고령화로 인한 최악의 상황을 단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 자료제공 = 니혼게이자이 신문 ]

고령화로 정부채무 급증하는 일본. 일본은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고령화 선진국이다. 유바리시의 파탄 사례는 선진국이 겪고 있는 고령화로 인한 최악의 상황을 단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 자료제공 = 니혼게이자이 신문 ]

일본은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고령화 선진국이다. 유바리 시의 파탄 사례는 선진국이 겪고 있는 고령화로 인한 최악의 상황을 단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일본 대부분의 지자체에서 고령화에 따라 의료비와 병간호비가 대폭 늘어나고 있다. 지금은 지자체의 재정이 비교적 양호하더라도 고령자가 더 늘어나면 일시에 빈곤 지자체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

일본의 모든 지자체는 고령자 증가·인구감소·재정악화라는 공통된 과제를 안고 있다. 한 지자체의 일시적인 재정 파탄 문제가 아니라 고령화를 극복하고 대응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형종 한국금융교육원 생애설계연구소장 acemn040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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