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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조강수 논설위원이 간다

몸 던지기 나흘 전 이재수 “나 살자고, 없는 걸 있다고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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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강수
조강수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 죽음 그 이후

박지만 EG회장이 지난 11일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의 안장식이 열린 국립대전현충원 장군 2묘역을 찾아 눈물을 흘리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박지만 EG회장이 지난 11일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의 안장식이 열린 국립대전현충원 장군 2묘역을 찾아 눈물을 흘리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삶과 죽음의 경계는 참 얇다. 살얼음같다. 작년 이맘때 국가정보원 댓글 수사 방해 혐의로 수사를 받던 변창훈 검사가 법원의 영장실질심사를 한 시간 앞두고 숨졌다. 지난주엔 세월호 참사 관련 사찰 혐의로 수사를 받던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이 영장 기각 나흘 뒤 살얼음을 깨고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겼다. 검사의 죽음 뒤에는 친정인 검찰의 압수수색이 있었다. 군인의 갑작스런 죽음 뒤에도 수갑 채우기 등 인권 침해 논란이 불거졌다.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엉이바위에서 몸을 던지자 측근들은 대검 중앙수사부의 모욕적 조사가 원인이라며 검찰 개혁을 촉구했다. 현 정부가 출범 후 가장 먼저 검찰조직에 칼을 댔지만 똑같은 비극이 반복되고 있다. 이재수의 삶과 죽음을 추적해봤다.

구속영장 기각 당일 이 전 사령관 #기무사 서버 다 털렸다며 걱정 #수갑 채워 망신주기에 모욕감도 #40년 지기 박지만 EG회장 #“한번도 화낸적 없는 군인” #차지철, ‘지만 파트너’로 선발

지난 10일 서울 일원동의 한 장례식장.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이 제복을 입은 채 영정 사진 속에 잠들어 있다.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당시 유족 동향을 사찰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던 도중 지난 7일 투신해 숨진 그가 지상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이었다. 오후 9시께 갑자기 장례식장이 소란스러워졌다. 일본에 머물던 박지만 EG그룹 회장이 급거 귀국해 문상을 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동생인 박 회장은 고인과 고교·육사 동기다. 고인의 아들 이모(32·대기업 사원)씨가 정혼녀와 함께 박 회장을 찾아와 인사했다.

“결혼할 여자친구입니다.”(이씨)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장가를 갔어야지.”(박 회장)

“...네...”(이씨)

“아버지는 정말 착하고 순수한 사람이었다. 한번도 화 내는 걸 본 적이 없어. 아버지가 자네 혼낸 적 없지?”(박 회장)

“네”

“그런 사람인데...이번에 대단한 사람인 줄 알게 됐어. 부하에 대한 사랑, 일에 대한 책임감이 크신 분이야.”(박 회장)

장례식장에 문상 온 이 전 사령관의 측근에게 고인과 박 회장이 어떤 사이인지 물었다.

“박지만 회장이 결혼할 때 이 장군이 함잡이를 했고 신원식 장군(전 합참 작전본부장)이 말잡이를 했다. 셋이 친하다. 박정희 대통령이 박지만을 육사에 보낼 때 따돌림 당할 것을 걱정해 차지철 청와대 경호실장에게 동반자를 선발해 같이 보내라고 했고 이 장군이 선발된 것으로 안다. 같은 소대에서 근무했다. 성품이 원만하고 착하다. 이 장군은 MB정부 때 육군본부 선발관리실장을 하다가 박근혜 사람이라고 해서 2군 인사처장으로 쫓겨났다. 그때 스스로 ‘유배간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너 박지만 친구 아니라고 하면 되지 않느냐’고 묻자 ‘40년 친구를 친구 아니라고 해서 별 하나 더 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되묻더라. 김관진 합참의장이 국방부 장관에 발탁되면서 이 장군이 살아났다. 인사사령관을 거쳐 기무사령관이 됐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  대장 진급은 떼논 당상이라고 했는데 최순실과 문고리 3인방의 견제로 박해를 받다가 결국 전역했다.”

지난 11일 서울 문정동 H오피스텔 13층 사무실 문이 굳게 닫혀 있다. 이재수 전 사령관의 지인 사무실로, 나흘 전 투신하기 직전 방문한 곳이다. [조강수 기자]

지난 11일 서울 문정동 H오피스텔 13층 사무실 문이 굳게 닫혀 있다. 이재수 전 사령관의 지인 사무실로, 나흘 전 투신하기 직전 방문한 곳이다. [조강수 기자]

다음날 이 전 사령관이 숨진 서울 송파구 문정동 H오피스텔을 찾았다. 암호화폐 사업을 한다는 13층 지인의 사무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홋수는 아예 지워져 있었다. 그가 떨어진 건물 내 1층 로비를 바라보니 까마득했다. 창문을 통해 서울동부지법과 서울동부지검 건물이 뚜렷이 보였다. 길 하나에 사법기관을 두고 극단적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나, 안타까웠다.

이 전 사령관의 죽음을 둘러싸고 변호인 측은 과잉·압박 수사가 있었다고 주장했으나 검찰은 그런 일은 없었다고 했다. 이 전 사령관 측 석동현 변호사를 만나 수사의 문제점을 물었다.

구속영장이 기각됐는데 숨졌다.
“차라리 구속됐더라면 하는 안타까움이 든다. 옆에서 보니 몇 달 동안 살아도 산게 아니었다. 특히 자신이 구속되면 직권남용 혐의를 넘어서 정치관여죄까지 적용하려 들 것으로 걱정했다.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 청와대, 경우에 따라서는 대통령까지도 해가 미칠 지 모르는 상황에 대해 답답해했다.”
검찰 조사에 문제는 없었나.
“먼저 검찰 조사가 두세번 이뤄지고 영장이 청구될 줄 알았는데 한번 조사후 청구돼서 놀랐다. 11월 23일 첫 소환조사 때 ‘다음엔 대통령 비서실장 또는 국가안보실장(김관진 전 장관) 등 윗선에 대해 물을 테니 준비해 오라’고 했다. 그래서 한두번 더 조사할 줄 알았다. 그런데 다음날(24일) 호의로 임시 거주할 집을 빌려준 지인과 그 회사에 전화해 압박을 했다. 회사 재산 빌려준 게 배임인 줄 알고는 있느냐며. 이사직은 있으나 사무실도 없는 EG에 대해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았다. 과잉 수사의 조짐도 있었다. 영장실질심사 때 수갑 채운 것도 심각한 문제다. 군인에게 모욕감을 줬다. 수갑은 도주 우려와 난폭 행위 가능성 외엔 채우지 말도록 명문화 돼 있다. 김경수·안희정씨 등에겐 채우지 않았던 것과도 배치된다. 이 전 사령관은 실질심사 전날에도 집을 구하러 다녔다. 구속될텐데 집은 뭐하러 구했느냐고 묻자 ‘세종시에 있는 아내가 올라오면 머물데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해서 변호사인 나도 울컥 했다.”
영장 기각을 예상 못했나.
“전혀 못했다. 이 전 사령관과 그 부하 참모장의 실질심사가 나란히 잡혔다. 변론 전에 95%는 구속이라고 얘기하고 실질심사를 포기하자고 했다. 검찰 수사 단계에서도 진술 을 거부하고 법원 재판 과정에서 진술을 하자고 권유했다. 그런데 그가 법에 있으니 실질심사를 하자고 했다. 앉아서 칼 맞기는 싫다며. 실질심사 시작되자마자 판사가 기무사가 왜 상황 파악만 하면 되지 사태를 분석하고 대책을 세우는 등의 의무없는 일을 하느냐고 강하게 나무라길래 ‘다 틀렸다. 99% 발부구나’ 생각했다. 검찰이 기무사 서버에서 꺼낸 자료를 갖고 청와대, 국방부 장관에게 한 보고 중에 다의적인 보고를 범죄 혐의라며 30여분간 프리젠테이션 했다. 이어 내가 구두 변론에 나섰다. ‘기무사가 한 일은 사찰이라는 이름의 동향 보고보다 긍정적인 대민 업무가 더 많았다. 그래서 백서까지 만들었는데 그 중의 몇 가지 항목을 문제삼아 4년여가 지나 단죄하는 것이 정의인가. 이 법정 안에 당시 팽목항에 가본 분 있느냐. 당시 어디까지가 임무이고 어디까지가 사찰인지도 불분명했다.’ 마지막에 판이 바뀌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기각됐다. 그럼에도 몸을 던진 것은 저주의 굿판을 그만 끝내달라는 말없는 웅변 아닌가 싶다.”

장례식장에서 만난 김관진 전 장관 측 인사는 검찰의 강압·별건 수사조짐이 있었다고 했다. 이들은 “서울중앙지검 공안 2부가 국내의 여러 정보가 들어있는 기무사 서버와 경찰청 정보국을 압수수색해 수백건의 자료를 확보한 것으로 안다”며 “이 전 사령관은 ‘검찰은 모든 걸 알고 있는데 나는 아무 것도 아는게 없다’고 불안해 했다”고 전했다. 이어 “영장 기각으로 서울구치소에서 나온 날 만났는데 CCTV가 있다며 공개된 장소를 피해 건물 아래쪽에서 대화를 나눴다”며 “내가 살자고 없는 것을 있다고 할수도 없고 없다고 하자니 주변 사람들이 다쳐 고민이라고 하더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기무사령관의 직속 상관은 대통령이라서 ‘위선을 불라’고 다그칠 사안이 아니며 영장 기각 후 실익이 없다고 판단해 영장을 재청구하지 않기로 결정했었다”며 “다만 수갑 착용 여부와 관련, 특수수사를 지휘하는 3차장 산하는 대부분 안 채우고 공안 수사를 지휘하는 2차장 산하는 대부분 채우는 식으로 운영돼 와 정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재수 전 사령관이 투신한 문정동 H오피스텔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울동부지검과 마주보고 있을 정도로 지척이다.오른쪽 작은 건물이 해당 오피스텔이다. [조강수 기자]

이재수 전 사령관이 투신한 문정동 H오피스텔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울동부지검과 마주보고 있을 정도로 지척이다.오른쪽 작은 건물이 해당 오피스텔이다. [조강수 기자]

요즘 법조계에선 검찰 수사의 폐해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유독 많다. 특히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을 상대로 한 수사는 집요하다. 검찰과 경찰, 감사원이 달라붙어 싸이버 댓글 사건과 관련해 정치 관여 및 수사 축소 혐의, 세월호 사건 관련 공문서 손괴 및 기무사 민간사찰 연루 혐의, 기무사 계엄 문건 사건, 방산 비리, 제주 해군기지 보고 누락 건 등을 조사했거나 조사가 진행중이다. 김 전 장관은 한 차례 구속됐다가 구속적부심에서 석방됐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문무일 검찰총장은 전국의 특수부를 없애는 등 수사 기능을 축소하는 개혁을 추진하는데 서울중앙지검에서만 대형 수사가 진행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과잉수사가 금도를 넘어섰다는 법조계 안팎의 비판은 무성하다. 한 검찰 원로가 들려준 이야기는 죽비 소리다. “맹장이 아파 수술을 받은 환자에게 의사가 가위를 넣고 꿰맸다고 개복 수술을 합니다. 봉합해놓고 거즈가 남았다며 또 수술. 막판엔 메스를 놓고 닫았다며 재수술하자 환자가 고함을 쳤답니다. ‘야. 아예 배에 지퍼를 채워라’. 지금 수사가 이런 식 아닙니까?”

구속영장 청구서와 문건으로 본 이재수 전 사령관의 혐의와 반박

이재수 전 사령관의 반박 문건

이재수 전 사령관의 반박 문건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서에는 두 가지 혐의가 기재돼 있다. 세월호 유가족 사찰 및 속칭 ‘좌파 집회’ 첩보의 보수단체 제공이다. 적폐 수사에 공통으로 적용되는 이른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다.

먼저 사찰 혐의는 2014년 4~7월 세월호 유가족들의 인적사항, 무리한 요구사항, 성향, 진도 현장 및 안산 합동분향소 관련 분위기 등을 파악해 세월호 사태의 조기 종결이나 사태 해결, 대통령이나 여당의 지지율 회복에 필요한 각종 제언을 계획하고 실행했다는 것이다. 이 중 사찰 첩보 사례로는 ‘진도 지역 실종자 가족들의 경우 가족들을 위한 구강청결제 대신 죽염을 요구하였다’, ‘자녀 생일에 따른 미역국 등 지원 요구’, ‘유가족 대변인은 정의당 출신으로 인터넷 자료 참고’ 동향 등이 적혀 있다. 또 첩보 제공은 15차례에 걸쳐 세월호 추모 집회 등 좌파 및 진보단체들의 집회·시위 첩보 15건을 수집하고 이중 4건을 재향군인회에 제공한 부분이다.

이와 관련해 본지는 이 전 사령관이 한달여전 직접 작성한 A4용지 5페이지 분량의 반박 문건(사진)을 확보했다. 여기엔 세월호 관련 수사 개시 이후 개인적 소회와 세월호 민간사찰 의혹이 성립될 수 없는 12가지 이유가 적혀 있다. 이 문건에서 그는 “참사 발생 직후인 4월 19일부터 미국·캐나다 정보기관 방문 출장이 예정돼 있었으나 급거 취소하고 구조활동에 전념했다”며 “지금와서 부대원들이 야전부대 원복조치 등 불이익을 받거나 가혹하게 질책당하는 것을 보며 무력감과 자괴감이 들어 허탈한 생각마저 들었다”고 적었다. 이어 “기무사가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원이라는 명목하에 유가족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 조성을 목적으로 불법 사찰행위를 계획·실행했다는 것은 성립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특히 “사고발생 이후 투입된 군의 활동상황과 부대의 지원내용을 세부적으로 기록해 향후 유사한 국가재난 발생시 참고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백서 형태로 남긴 기무사 자체 기록을 문제삼아 사찰 의혹을 제기했다”며 “의도적 사찰을 시행한 부대라면 이런 기록을 스스로 남겼을 리 만무하지 않느냐”고 주장했다. 법원은 팽팽히 맞선 양측 주장을 영장실질심사 때 듣고 구속의 필요성이 없다며 영장 기각 결정을 내렸으나 이 전 사령관은 나흘만에 숨졌다.

조강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