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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조작, 거짓정보 유포…증시범죄 누가 많이 저지르나 봤더니 ‘내부자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결국 범인은 '내부자'였다. 2년 전 증시를 발칵 뒤집어 놨던 한미약품 주식 공매도 사건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투자자들이 적지 않다.

회사가 정식으로 공시하기도 전 기술 수출 계약이 파기됐다는 소식이 소셜미디어네트워크(SNS)에 돌았다. 일부 전업 투자자와 애널리스트 사이 공유됐다.

공시 전에 주가 하락에 ‘베팅’하는 공매도 물량까지 쏟아지면서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불공정 거래 의혹이 일었다.

사전에 정보를 유출한 범인은 한미약품 법무팀에서 계약 업무를 담당하던 직원 A씨로 드러났다.

2016년 10월 4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 한미약품의 주가 그래프가 떠 있다. 그해 한미약품의 수출 계약 파기 늑장 공시와 미공개 정보 사전 유출이 증시를 흔들었다. [중앙포토]

2016년 10월 4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 한미약품의 주가 그래프가 떠 있다. 그해 한미약품의 수출 계약 파기 늑장 공시와 미공개 정보 사전 유출이 증시를 흔들었다. [중앙포토]

한미약품 사건은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 미공개 정보 이용, 주가 조작, 허위 정보 유포 같은 주식시장 불공정 거래 범죄를 가장 자주 저지르는 건 ‘내부자들’이었다.

자본시장연구원이 12일 펴낸 ‘자본시장 3대 불공정 거래 혐의 행위의 특징과 시사점’ 보고서에 드러난 현실이다. 남길남 동향분석실 선임연구위원과 천창민 펀드연금실 연구위원이 공동으로 작성했다.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증권선물위원회에서 심의ㆍ의결한 불공정 거래 혐의 자료와 검찰ㆍ법원의 자본시장법 위반 사건 처리 자료를 분석한 내용이 보고서에 담겼다.

이 기간 코스피ㆍ코스닥 시장에서 ▶미공개 정보 이용 ▶시세 조종(주가 조작) ▶부정 거래(시세 변동을 노린 허위 사실 유포, 협박과 폭행 등) 혐의로 피의자 신분이 된 사람은 모두 753명이었다.

이 가운데 해당 회사 내부 임직원이 125명(16.6%)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다음이 일반 투자자(107명, 14.2%)와 회사 관계자(96명, 12.7%), 업종 전문가(79명, 10.5%), 전업 투자자(71명, 9.4%), 회사 전직 임직원(70명, 9.3%)의 순이었다.

여기서 회사 임직원과 관계자, 전직 임직원을 합치면 291명으로 비율은 38.6%에 이른다. 코스닥 시장으로 한정하면 46.2%로 치솟는다. 증시 불공정 거래 범죄 혐의자 10명 중 4명 정도는 내부자들이란 의미다.

증시 범죄가 자주 일어나는 회사에도 특징이 있었다. 자산 규모가 크지 않고 재무 상태가 나쁜 회사에 불공정 거래 범죄가 집중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불공정 거래 대상이 된 기업의 총자산은 같은 업종 대비 평균 72.6% 수준에 머물렀다. 부채 비율도 동일 업종과 비교해 47.4%포인트 높게 나타났다. 수익성도 업계 평균에 비해 나빴다.

특징은 또 있다. 증시 범죄가 한 회사에서 여러 차례 일어나는 경우가 많았다. 2015~2017년 불공정 거래 혐의 시점이 확인된 회사는 115개다.

이 가운데 23개사(20.0%)에선 두 차례 이상 반복적으로 증권 범죄가 발생했다. 이들 회사에서 일어난 불공정 거래 범죄를 건수로 따져보면 전체의 39.5%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컸다.

증시 범죄가 이렇게 반복적으로 벌어지는 이유를 두고 ‘솜방망이 처벌’이 문제란 지적이 나온다.

보고서는 “(증시 불공정 거래 처벌을 위한) 자본시장법 위반 재판의 집행유예 비율과 상고 기각률이 높게 나오는 특징이 있는데, 사건에 대한 처벌 수준이 높지 않다는 비판을 일부 뒷받침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동시에 복잡한 사건의 속성을 반영하는 결과라는 해석도 가능한데, 형사 절차에 있어 요구되는 매우 높은 증명 수준과 절차의 엄격성, 복잡성으로 비효율이 존재한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기존 형사 제재 방식의 한계를 인정하고 대규모 징벌적 과징금, 임원 선임 제한, 증권 취득 제한 등 금전적 제재와 비금전적 행정 제재를 다양하게 도입해 점점 복잡해지고 정교해지는 불공정 거래에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현숙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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