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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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이 달의 시단에서 내가 관심을 두고 읽은 시는 기형도의『질투는 나의 힘』(「현대문학」 3월호), 김신용의『지게가 바라본 지게꾼에 대하여』외 4편(「현대시학」3월호)이다. 기형도는 위의 작품말고도 이 달에 『가수는 입을 다무네』외 2편(「외국문학」봄호),『그 집앞』외 1편(「현대시세계」봄호)등 여러 편의 시를 발표하고 있다.
그의 갑작스런 타계가 던져준 심리적 충격이 채 가시지도 않은 터에 그가 남기고 간 시편들을 읽는 심정은 여간 착잡한 게 아니다. 내가 착잡하다고 말하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아는 사람들은 알고 있겠지만 그가 남다른 개성을 소유한 젊은 시인이었다는 점이다.
이 달에 발표된 시들에서도 그의 개성은 여지없이 발휘되고 있다. 이른바 후기 산업시대에 접어든 우리사회의 병적 증후를 유토피아의 상실에서 읽고 있던 그는『질투는 나의 힘』에서 그런 유토피아에 대한 갈망이 결국은 비탄으로 끝나는 게 아닌가 하는 아픈 성찰의 세계를 보여준다.
그에 의하면 이 시대에 유토피아를 추구하는 일은 자신의 마음에「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우는 일과 통하고, 또 지칠 줄 모르고「공중에서 머뭇거리는 삶」과 통한다. 이렇게 공중에서 주저할 때 그가 맛보는 것은 깊은 탄식이다.
이 탄식은「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처럼 진정한 사랑에 대한 질문으로 발전한다. 자기도, 남도 사랑하지 않는 이 시대의 인간들에 대한 비판은 가슴 아픈데 가 있다.
이기심과 자기중심주의에 희생된 산업 시대적 삶의 모순을 우선 자신에 대한 사랑, 그러니까 자기 긍정에서 찾지 않으면 안 된다는 그의 목소리에 겸허하게 귀를 기울여야 하리라.
기형도가 이 시대의 인간들을 사로잡고 있는 왜곡된 삶의 내용을 지식인의 입장에서 비판한다면 김신용은 그것을 노동자의 입장에서 비판한다. 그러나 노동자로서의 그의 입장은 매우 특이한데가 많다.
그는 공장 노동자와는 달리 어떤 집단에도 소속되지 못한, 그야말로 버려진 노동자들의 삶을 노래한다·『지게가 바라본 지게꾼에 대하여』에서 그는 도시 지게꾼의 삶을 형상화하고 있다. 그가 노래하는 지게꾼은 일반 노동자와는 달리 2중의 소리에 시달린다. 그는 어떤 집단으로부터도 소외되어 있으며, 동시에 자신의 노동으로부터도 소외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소외감을 시인은「넌 왜 날 두들겨 부숴 버리지도 못하니/계란으로 바위 내려치듯, 세상이 네게 물려준/이 빠진 네게 밥그릇 하나 내 생애 밖으로 내팽개치지 못하니」처럼 노래한다. 지게가 지게꾼으로 하는 말이다.
자신이 지게꾼이기도 한 시인 스스로 시작 노트에서 밝히고 있는「그 어떤 구조에서 소외되어 있다는 것은 자유가 아니다. 소외 속의 자유는 차라리 감옥이 되다」는 말은 절규에 가깝다. 그는 순수한 행복의 계기들을 상실하고 사는 이 시대의 또 다른 상처를 아프게 지적한다. 이 승 훈<한양대교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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