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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과 조 디마지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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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정제원 기자 중앙일보 문화스포츠디렉터
정제원 스포츠팀장

정제원 스포츠팀장

그는 야구 배트를 내려놓고 총을 들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다. 스스로 내린 결정이었다. 전쟁이 계속되는데 야구만 할 수는 없었다. 실제로 전쟁터에서 총을 쏜 건 아니었다. 대신 군복을 입고 병영을 돌며 병사들을 격려하는 일을 맡았다. 육군 야구팀에서 활약하면서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웠다. 미국은 그가 군복을 입은 모습에 열광했다. ‘미스터 베이스볼’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미국 프로야구의 전설, 조 디마지오(1914~1999) 이야기다. 그가 팬들의 사랑을 가장 많은 선수로 꼽히는 건 여배우 메릴린 먼로와 결혼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나라를 위해서 선뜻 이런 희생을 감수한 것도 큰 몫을 했다.

“손흥민은 되는데 방탄소년단은 왜 안되나” 목소리 높아 #국위 선양한 스타, 복무 기간 탄력적 운영 검토해 볼만

디마지오가 입대한 것은 1942년 말, 그의 나이 29세 때였다. 1941년 56경기 연속 안타라는 대기록을 세운 지 1년 만에 선뜻 군에 간 것이다(56경기 연속 안타는 메이저리그에서도 아직 깨지지 않은 대기록이다). 마치 올해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축구 스타 손흥민이 내년에 입대한 것이나 다름없다.

희생의 대가는 작지 않았다. 디마지오는 전쟁이 끝난 이듬해인 1946년 뉴욕 양키스에 복귀했지만 처음으로 3할 타율을 기록하는 데 실패한다. 메이저리그를 3년이나 떠나 있었기 때문에 실력이 녹슨 것도 당연했다. 그러나 디마지오는 좌절하지 않았다. 이를 악물고 배트를 휘두른 끝에 복귀 이듬해 다시 3할대 타율(0.315)을 기록했다.

2018년, 대한민국에는 변화의 소용돌이가 몰아치고 있다. 그중 하나는 스포츠 스타의 병역 면제를 둘러싼 시각의 변화다.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선수에게 병역 면제 혜택을 줘도 되느냐를 놓고 찬반양론이 한창이다. 더구나 피아노와 바이올린, 발레 등의 국제 예술경연대회에서 입상한 이는 군 면제를 해주는데 대중문화 스타는 무조건 군에 가야 하는 문제도 형평성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참에 병역특례 제도 자체를 손보자는 목소리가 드높다. “금메달을 딴 손흥민은 되는데 빌보드 차트 1위를 한 방탄소년단은 왜 안 되느냐”는 목소리도 일리가 있다.

디마지오는 입영 대상자가 아니었는데도 선뜻 군에 입대했다. 물론 현재 대한민국이 전시 상황은 아니기에 스포츠 스타들에게 디마지오처럼 자진 입대하라고 윽박지를 필요는 없다.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기성용은 최근 인터뷰에서 “조국에 전쟁이 난다면 돌아가서 싸우겠다”고 말했다. 그의 말이 립서비스가 아닐 거라고 믿는다. 대한민국에도 디마지오 못지않게 애국심이 넘쳐나는 스타가 많다.

그렇다면 스포츠와 예술·대중문화 분야의 스타들이 원할 경우 병역 의무를 원활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는 것도 필요하다. 디마지오가 육군 야구팀에서 복무했듯 스포츠 스타와 예술·문화계의 스타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병역의 의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제도를 다변화하는 것도 생각해볼 만하다. 더구나 2020년부터 육군과 해병대의 복무 기간은 18개월로 줄어든다. 복무 제도를 탄력적으로 운용한다면 해외에 진출한 스포츠 선수나 아이돌 스타라 할지라도 병역 의무를 다하지 못할 이유도 없다. 예를 들어 3개월씩 6년에 걸쳐 복무하거나 6개월씩 3년에 나눠 의무를 마치는 방법도 있다. 2개월씩 9년이면 또 어떤가.

자격을 갖춘 사람이라면 꼭 18개월 연속으로 군 복무를 해야 할 필요는 없다. 손흥민 같은 세계적인 축구 스타에게 프리미어리그 출전을 포기하고 18개월 동안 군 복무를 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난센스에 가깝다. 그가 해외에서 활약하면서 국위를 선양하는 것이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하는 것보다 가치 있는 일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축구 스타 손흥민이나 피아니스트 조성진, 아이돌스타 지민이라면 시즌이 쉬는 휴식기에 3개월씩 6년에 걸쳐 군 복무를 해도 되지 않을까. 사회의 패러다임이 변했다면 이에 걸맞게 제도도 바꿔야 한다.

정제원 스포츠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