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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육아에 남녀가 따로 있나요"…전업주부 n년차 남자들

중앙일보

입력

지난달 22일 두 남자를 만났다. 약속 시간은 오전 10시 30분. 각자 집에서 아이들을 깨워 학교와 유치원에 보내놓고 나면 그쯤 시간이 난단다.

김진성(43)·노승후(41)씨는 각각 3년 차, 6년 차 전업주부다. 김씨는 여덟살 여섯살 남매, 노씨는 열살 여덟살 자매와 매일 씨름하며 가사를 도맡아 한다. 원래는 둘 다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어쩌다 전업주부가 됐는지 물었다. "저도 처음엔 이렇게 오래 집안일 하게 될 줄 몰랐어요"라고 노씨가 웃으며 답했다.

노승후(이하 노)="밤늦게 퇴근해서 아이 자는 얼굴을 보는데 문득 '내가 지금 제대로 살고 있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당시 제가 35살이었으니까 좀 이르긴 하지만 다니던 회사 그만두고 애 좀 보면서 10년 뒤를 준비해보자는 생각이었어요. 아내의 커리어도 지켜주고 싶었고요."

김진성(이하 김)="저는 회사원일 당시 세 살이었던 제 아들이 저를 정말 싫어했어요. 그래서 관계를 좀 개선하고 싶어 육아를 시작했죠. 딱 2년 걸렸던 것 같아요. 사이가 좋아져서 애가 저랑 있을 때 엄마를 안 찾게 되기까지."

지난달 22일 전업주부 김진성씨(왼쪽)와 노승후씨가 인터뷰 질문에 답하고 있다. 윤정애 인턴기자

지난달 22일 전업주부 김진성씨(왼쪽)와 노승후씨가 인터뷰 질문에 답하고 있다. 윤정애 인턴기자

육아·살림의 경험을 바탕으로 김씨는 책 『아빠, 잘 좀 키워줘 봐!』, 노씨는 『아빠, 퇴사하고 육아해요!』를 펴냈다. 이제 어느 정도 베테랑 주부이자 아빠의 모습을 갖추게 됐지만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다.

노="처음엔 요리가 제일 힘들었어요. 학원 가서 두 달 정도 요리를 배웠는데 내가 이걸 못하면 주부 생활을 오래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특히 영유아 아이들은 간이 센 거 못 먹잖아요. 한끼에 애들 거랑 우리 부부 거 두 요리를 해야 하는 거예요."

김진성(이하 김)=그래서 우리 가족은 1식 1찬 해요. 우리 부부가 그냥 애들 거 먹어요. 그렇게 매운 김치를 한 5년 안 먹으니까 나중엔 매운 떡볶이만 먹어도 배가 아프더라고요. 속이 쓰려서. (웃음) 근데 저는 요리도 요리고 살림도 살림인데 엄마들 커뮤니티에 끼는 게 너무 어려워요. 아이 키우다 보니 육아 정보나 학교 일 같은 걸 다른 학부모들과 공유해야 할 일이 많은데 다른 아이들은 주로 어머니들이 육아를 담당하시다 보니…."

노="저도 공감해요. 그래서 애 엄마가 들어가 있는 엄마들 카톡방 맨날 봐요."

전업주부 6년차 노승후씨와 두 딸들. [사진 노승후씨 제공]

전업주부 6년차 노승후씨와 두 딸들. [사진 노승후씨 제공]

두 사람은 취재팀의 인터뷰 진행 없이도 한동안 대화를 이어갔다. 김씨는 "동네에서 나름 유명해요. '저 집은 아빠가 애를 봐. 로또 맞은 거 아니야?' 이러더라고요"라고 말했다. 노씨는 이 말을 듣고 단번에 동감했다. 아빠가 일을 안 하면 대부분 주위에서는 '아내가 굉장히 능력이 좋거나 집에 돈이 많은가 보다'라고 생각한단다.

김="가끔 정말 경제적인 부분이 걱정될 때가 있어요. 아내가 언제까지 혼자 일을 할 순 없잖아요. 저도 이대로 살림만 할 순 없는 노릇이고."

노="저도 그런 고민이 컸어요. 근데 또 반대로 생각해보세요. 우리가 여성 전업주부한테 가서 '나중에 뭐 하실 거예요?'라고 묻진 않잖아요. 우리가 자꾸 그런 고민을 하게 되는 것도 결국 '주부는 여자의 일이다'라는 편견에서 오는 것 같아요."

김진성씨가 두 아이와 여행 가서 함께 찍은 사진. [사진 김진성]

김진성씨가 두 아이와 여행 가서 함께 찍은 사진. [사진 김진성]

두 사람에게 마지막으로 어디선가 열혈 살림·육아 중일 전업주부들에게 한마디 해달라고 부탁했다. "진심으로 응원합니다"라며 노씨가 먼저 입을 열었다.

노="아빠는 계속 일만 하는 사람, 엄마는 집에만 있는 사람 이러면 서로 갈등을 해결할 접점이 없더라고요. 주위의 편견이나 시선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자기 생각대로 잘 이끌어 가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김="저도 일할 때 '집안일 별거 있나?'이랬는데 전업주부를 하고 나니까 아내가 2박 3일 출장만 가도 너무 힘들어요. 독박육아를 한다는 것 자체가 정말 힘든 일이거든요. 우리가 하는 일, 결코 가치 없는 일이 아니에요. 다들 힘내세요!"

※더 많은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은 놀러오세요: https://youtube.com/add_contact?c=WOBzUgTzdlFDa-K6p9Y6pKz_unw9Bg

홍상지 기자 hong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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