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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이라 믿는 사람, 자기가 얼마나 비정상인지 몰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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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3호 11면

일본 신인문학상 휩쓴 ‘5차원’ 작가 

편의점 알바 출신 작가인 무라타 사야카는 8월 7일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나는 편의점에서 남들처럼 정상적으로 표정 짓고 말하는 법을 배웠다“고 말했다. [사진 살림]

편의점 알바 출신 작가인 무라타 사야카는 8월 7일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나는 편의점에서 남들처럼 정상적으로 표정 짓고 말하는 법을 배웠다“고 말했다. [사진 살림]

무라타 사야카(村田沙耶香·39)는 아쿠타가와상·군조신인문학상 등 일본의 신인문학상 5개를 휩쓸었다. ‘편의점 알바 출신 소설가’로 유명한 그에겐 ‘미친·괴물·5차원’ 같은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17개 언어로 번역된 『편의점 인간』의 영문판이 나오자 뉴욕타임스(NYT)·가디언 등 명품 매체가 큰 비중으로 다뤘다.

『편의점 인간』 저자 무라타 사야카 #내가 페미니스트인 것 최근 깨달아 #절실한 마음으로 ‘미투 운동’ 응원 #육체와 감각을 자신 만의 방식으로 #모두가 거침없이 사랑할 수 있어야 #K팝 걸그룹 춤만 봐도 기분 좋아 #일본 내 한국 음식 맛집 순례 중

그의 작품에서 우선 눈에 띄는 것은 강한 에로티시즘이다. 무라타 사야카는 이 세상의 ‘이방인’을 대변한다. 남들보다 상대적으로 좀 특이하기에 ‘비정상’이라는 낙인이 찍힌 사람들 말이다. 특히 섹스나 정체성과 관련해서다. 그는 ‘특이성의 정상성’을 역설하며 역공에 나선다. 6월 11일 자 NYT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자신이 평범하거나 정상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자신이 얼마나 이상한 사람들인지 모른다.”

『멀리 갈 수 있는 배』무라타 사야카 지음. 김윤희 옮김, 살림

『멀리 갈 수 있는 배』무라타 사야카 지음. 김윤희 옮김, 살림

최근 그의 『멀리 갈 수 있는 배』가 우리말로 출간됐다. 세 명의 여성이 주인공이다. 섹스가 고통스러워 ‘성별 없는 섹스’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리호, 여성성에 집착하기에 밤에도 선크림을 바르는 츠바키, 남성보다는 물체를 성적 대상으로 삼는 치카코다. 작가를 e메일로 인터뷰했다. 그는 “이유도 알 수 없는 눈물을 흘릴 때도 있었다”고 했다.

『멀리 갈 수 있는 배』의 일어판 원제는 한국어로 방주(方舟, Ark)를 뜻하는 ‘상선(箱船)’이다. 제목에 어떤 영적 메시지가 숨어있나.
“‘아무도 타지 않는 노아의 방주’를 이미지화해 쓴 소설이다. ‘타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그 방주의 존재로 말미암아 세계가 확장되며 ‘가고 싶다면 그곳으로 갈 수 있게’ 된다. 작품에 직접적인 영성 메시지는 포함돼 있지 않지만, 구원이나 바람·기도·기원과 같은 것을 많이 넣어두었다고 생각한다.”
한국과 일본은 개인의 ‘순응’을 강제하는 사회적 압박이 거센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압박을 견제할 수 있는, 어떤 건강한 개인주의가 한·일 양국에서 발전할 수 있을까.
“태어난 나라와 관계없이 누구나 자신의 육체와 감각을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개인에게 ‘보통’과 ‘평범’을 요구하는 압력이 일본에서 상당히 뿌리가 깊지만, 조금씩 자기 삶의 방식을 되찾아가려는 사람이 증가하고 있다. 개인주의가 발전해 좀 더 많은 사람이 자기다운 인생을 사랑하며 사는 게 가능해지도록 기도하고 있다.”
작품 상당수가 페미니즘이 제기하는 문제와 밀접하다. 자신이 일종의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는가. ‘미투 운동’에 대한 입장은?
“저는 지금껏 쭉 ‘무의식적인 페미니스트’였다고 생각한다. 제가 페미니스트라고 알아챈 것은 최근이다. ‘미투 운동’에 관해서는 절실한 마음으로 줄곧 응원해왔다.”
‘자기 나라의 난민’ 같은 인물이 작품 속에 많이 등장하는데.
“‘자기 나라의 난민’이라는 말은 ‘자기가 태어난 나라에서도 잘 융화할 수 없는, 다른 나라에서 온 이민자 같은 감각을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라고 이해하고 답변하겠다. 저 자신도 국가 이전에 세계 그 자체에 익숙해질 수 없는 감각을 가지고 자라왔다. 어른이 되고 나서 저 자신의 감각을 겨우 되찾았고 그것을 밖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됐다. 제가 어렸을 때의 세계가 좀 더 다양성을 인정하는 곳이었더라면, 제가 ‘얼마나 거침없이 다양한 문화를 가진 사람들과 서로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었을까’라고 상상해본다. 다양성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이 세상이 변해가기를 죽 기원하고 있다.”
작품 속 등장인물들은 좀 특이하지 않나.
“제 작품 속에는 ‘아주 평범한 고민’을 가진 등장인물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 인물이 어떤 인간인지, 어떤 인생을 보내왔는지, 철저하게 상상하는 것으로 그들만의 언어와 사고가 태어난다고 느낀다. 제게도 상상이 불가능한 언어를, 그들이 저의 상상을 넘어 문장을 만들어나가게 하는 것을 제 글쓰기의 이상(理想)으로 삼고 있다.”
누구나 크고 작은 삶의 고통과 대면한다. 고통을 줄이는 ‘나만의’ 요령이 있는가.
“제 경우에는 ‘계속해서 생각하는 것’이다. 어떤 괴로운 일이 닥칠 때라도 ‘왜 괴로운 것일까’ ‘어디에 괴로움이 있는가’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오로지 그것만 계속해서 생각하면 뭔가 발견하는 지점에 언젠가 다다른다. 그 발견으로 저는 구원을 받는다. 제겐 책 읽기도 그런 사고를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커다란 힘이다.”
주요 일본 문학상을 다섯 개나 받았다. 성공 비결은?
“‘소설 이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다’라는 자세로 임하고 있다. 등장인물만 생각하고 이야기 밖에 있는 저 자신에 대해서는 그다지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집중하면 현혹되지 않고 소설이 끝나기 때문에 제가 자유롭게 남아 있을 수 있다.”
새 책을 쓰고 있다면 어떤 내용인지.
“최근 완성한 작품은 자신이 우주인이라고 생각하는 여자아이 이야기다. 조금 슬프고 그로테스크한 작품이다. 지금 쓰고 있는 작품도 ‘성애’라는 테마가 짙은데, 앞으로 어떤 결말을 향해 변화해갈지는 저도 잘 모르겠다.”
한국 음악이나 음식·영화·연속극 등을 좋아하는지.
“한국 음식을 아주 좋아한다. 아직 한국에 가본 적이 없는데 일본에 있는 맛있는 한국 음식점을 항상 찾고 있다. 한국 드라마에 빠졌고 아이돌 콘서트에도 간다. K팝 걸그룹의 멋진 댄스는 보기만 해도 기분이 아주 좋아진다.”

김환영 지식전문기자 whan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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