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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도 '고압 물 폭탄' 쏟아진 고양 백석역 일대…‘아비규환’

중앙일보

입력

지난 4일 오후 8시 40분쯤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백석동 백석역 3번 출구 인근에서 발생한 온수 배관 파열 사고로 주변에 수증기가 가득 차 있다. 김성룡 기자

지난 4일 오후 8시 40분쯤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백석동 백석역 3번 출구 인근에서 발생한 온수 배관 파열 사고로 주변에 수증기가 가득 차 있다. 김성룡 기자

 5일 오전 11시 백석역 3번 출구 앞은 진흙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현장에서는 지난 4일 오후 일어난 사고 수습이 한창이었다. 굴삭기가 뚫려 있는 도로의 구멍을 막고 있었다. 여전히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하수구도 있었다.

화상 1명 사망, 1명 중상 포함 33명 부상 #27년된 온수배관 노후로 사고난 것 추정 #밤새 한파 속 2861 가구에 열공급 중단 #오전 7시 55분 난방과 온수 공급 재개 #“노후된 신도시 온수배관 전체 점검 필요”

 지난 4일 오후 8시 40분쯤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백석동 백석역 3번 출구 인근에서 발생한 온수 배관 파열 사고로 주변에 수증기가 가득 차 있다. 김성룡 기자

지난 4일 오후 8시 40분쯤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백석동 백석역 3번 출구 인근에서 발생한 온수 배관 파열 사고로 주변에 수증기가 가득 차 있다. 김성룡 기자

인근 상가에서는 흙탕물을 씻어내기 바빴다. 삽으로 흙탕물을 퍼 가까운 배수구에 넣거나 호스를 이용해 물을 뿌려 진흙을 치웠다. 사고가 난 도로 바로 옆에 있는 건물 1층 상가 중에는 이날 장사를 포기한 곳도 있었다.
 앞서 지난 4일 오후 8시 40분쯤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백석동 지하철 3호선 백석역 인근 도로 일대는 아비규환을 이뤘다. 한국지역난방공사 고양지사가 관리하는 850㎜ 열 수송관(온수 배관)이 터지는 사고로 섭씨 100∼110도의 뜨거운 고압의 물이 ‘물 폭탄’처럼 도로로 뿜어져 올라왔다. 솟구쳐 오른 뜨거운 물은 주변 도로를 순식간에 침수시키고, 인근 상가건물에까지 흘러 들어갔다.

 사고가 나자 파열된 배관에서는 뜨거운 물줄기가 2.5m 높이의 지반을 뚫고 4m가량 높이로 치솟았다. 뿌연 수증기는 도로변 일대를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뒤덮었다. 주민들은 “밤시간 흰색 연기가 마구 치솟고 도로를 뒤덮어 처음엔 불이 난 줄 알았다”고 말했다. 사고로 주변 200m 구간 도로가 통제됐고, 도로에 뜨거운 물이 차올라 소방관과 경찰관의 접근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해당 배관은 외경 1000mm, 내경 850mm에 압력은 12㎏/㎠로, 지름 약 50cm의 구멍이 난 것으로 파악됐다. 난방공사가 누출 배관을 잠그기 전까지 약 1시간 동안 고온의 물이 주변 지역으로 쏟아졌다. 순식간에 도로에 펄펄 끓는 고온의 물이 무릎까지 차오르며 피해가 속출했다.

 지난 4일 오후 8시 40분쯤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백석동 백석역 3번 출구 인근에서 발생한 온수 배관 파열 사고로 주변에 수증기가 가득 차 있다. 김성룡 기자

지난 4일 오후 8시 40분쯤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백석동 백석역 3번 출구 인근에서 발생한 온수 배관 파열 사고로 주변에 수증기가 가득 차 있다. 김성룡 기자

5일 오전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백석역 인근에서 지난 4일 발생한 사고를 수습하는 모습. 이태윤 기자

5일 오전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백석역 인근에서 지난 4일 발생한 사고를 수습하는 모습. 이태윤 기자

5일 경찰과 소방당국 등에 따르면 이 사고로 손모(69)씨가 차 안에서 전신화상을 입고 숨졌고, 중상자 1명을 포함한 33명이 화상 등으로 중경상을 입었다. 이들은 물이 순식간에 도로에 들어차면서 주로 발 쪽에 화상을 입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이들을 업어 인근 건물로 옮긴 뒤 찬물을 발에 붓기도 했다. 차량이 파손될 정도로 파편이 튀는 등 강한 압력으로 뜨거운 물이 쏟아져 피해가 컸다.

사고 지점을 지나던 숨진 손씨의 차량은 순식간에 덮친 물 폭탄과 토사에 고립됐다. 이어 앞 유리창을 뚫고 차 안으로 밀려든 끓는 물에 전신에 화상을 입은 손씨는 뒷좌석으로 탈출하려 했지만 결국 숨졌다. 손씨는 이날 결혼을 앞둔 딸, 예비사위와 근처에서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다가 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손씨에 대한 부검을 하는 등 사고 경위를 조사 중이다.
 5일 낮 12시 현재 길을 가던 시민 손모(39)씨가 손과 발 등에 중화상을 입어 병원으로 옮겨지는 등 4명이 입원 치료 중이다. 29명은 병원 치료 후 귀가했다.

 5일 오전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백석역 인근에서 지난 4일 발생한 사고를 수습하는 모습. 이태윤 기자

5일 오전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백석역 인근에서 지난 4일 발생한 사고를 수습하는 모습. 이태윤 기자

인근에 있던 이모(31)씨는 “현장은 아비규환 그 자체였다”며 “연기가 자욱해 앞을 분간하기 어려웠고 뜨거운 물에 데여 화상을 입은 사람들이 잇따라 응급차에 실려갔다”고 말했다. 백석역 인근에서 요가 수업을 듣던 최모(29)씨는 “화재 대피 경보를 듣고 건물 옥상으로 뛰어갔는데 옥상 문은 잠겨있고 연기가 건물 내로 올라와 이대로 죽는구나 싶었다”고 전했다.

사고 당시 거리에 있던 박모(55)씨는 “도로를 건너던 사람들이 발에 화상을 입고 ‘악악’ 소리 질렀다”며 “자욱한 연기가 지옥 불을 보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아버지와 함께 떡볶이 가게를 하는 박모(38) 씨는 “둔탁한 ‘펑’ 소리와 함께 물이 역류하기 시작했다. 수증기가 갑자기 확 피어오르더라. 뭐야 뭐야 하는 순간 수증기가 앞이 안 보일 정도로 퍼지더니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바로 앞에 사람이 있어도 모를 정도 진한 수증기였다”고 했다.

 5일 오전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백석역 인근에서 지난 4일 발생한 사고를 수습하는 모습. 이태윤 기자

5일 오전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백석역 인근에서 지난 4일 발생한 사고를 수습하는 모습. 이태윤 기자

이 사고로 난방공사 고양지사가 난방을 공급하는 일산동구 백석동과 마두동 3개 아파트 단지 2861가구에 난방과 온수를 공급이 중단되는 바람에 주민들이 강추위에 떨며 밤을 지새웠다. 이날 오후 경기도 전역에 올겨울 들어 첫 한파주의보가 내려진 상황이어서 주민은 극심한 추위에 고통을 겪었다.

이날 사고는 낡은 배관에 균열이 생긴 뒤 내부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파열되면서 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사고가 난 수송관은 27년 전인 1991년 설치된 것으로 파악됐다. 지역난방공사 고양지사 관계자는 “수송관이 낡아 사고가 난 것으로 추정된다”며 “자세한 내용은 보수 부위를 좀 더 확인해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국지역난방공사 고양지사는 복구작업을 끝내고 5일 오전 7시 55분 난방과 온수 공급을 재개했다.
 입주자대표회의 측은 “한국지역난방공사 측은 일산·분당 등 1기 신도시 전체의 노후 열 수송관 안전실태에 대한 정밀 점검을 하고 종합적인 사고예방 대책을 즉시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양=전익진·이태윤 기자 ijj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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