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판 시키신 분 ~" 노인만 남은 농촌 모내기 신풍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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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들이 육묘실에서 일주일 동안 키운 모판을 들어보이고 있다. 장대석 기자

8일 전북 정읍시 과교동 삼산마을 들녘. 농민 신용현(53)씨는 논 18마지기(3600평) 모내기를 오후 3시에 시작해 해가 떨어지기 전에 마쳤다. 신씨가 이처럼 손쉽게 모내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농협이 손 한 뼘 크기만큼 모를 키워 논둑까지 배달해 준 덕분이다. 농협이 못자리 작업을 대신해 준 것이다. 이 때문에 신씨는 다른 삯군을 살 필요도 없이 부인과 단둘이서 이앙기로 반나절 만에 모내기를 끝낼 수 있었다.

신씨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모내기 1~2개월 전부터 못자리를 만들고 모판을 옮기는 등 힘들게 일하고, 모내기하는 날이면 새벽부터 밤까지 작업을 해야만 겨우 마칠 수 있었다"며 "올해처럼 이렇게 쉽게 모내기를 할 수 있다면 내년부터는 논 20마지기를 더 빌려 농사를 지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못자리 공장'인 자동 육묘장(育苗場)이 농민들 사이에 인기다.

정읍 농협은 4월 자동화 공동 육묘장을 설치해 모판 1만5000여 상자를 미리 키워 50여 농가(50여ha)에 공급했다. 김제 백산농협도 올해 처음으로 모판 4만여 상자를 재배해 300여 농가(180여ha)에 배달했다.

자동 육묘장은 2~3년 전 농촌에 첫선을 보인 뒤 현재는 전남.북과 경남.북 일대 지역 농협 20여 곳과 사설 영농조합법인 등이 운영하고 있다.

농협 중앙회 관계자는 "내년에는 35개의 단위 농협이 자동 육묘장을 운영할 계획이며 장기적으로는 100곳으로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육묘장에서는 모판에 볍씨를 담아 싹을 틔운 뒤 물.온도 등이 자동 조절되는 육묘시설에서 모를 키워 농가에 공급한다. 모를 키우는 기간은 10여 일로 10~15㎝ 정도가 되면 모내기할 논으로 배달한다. 200평 한 마지기를 심는 데 가로 50cm, 세로 30cm의 모판 20개가 필요하며 전체 가격은 3만6000~4만원. 인건비 등을 고려하면 농민이 직접 못자리를 만들어 기르는 것과 비용이 비슷하다. 그러나 못자리를 만드는 번거로움과 일손을 덜 수 있어 농민들에게 환영받고 있다. 또 일반 못자리에서는 30~40일 걸리지만 육묘장에서는 10여 일 만에 속성으로 재배돼 볍씨 영양분이 남아 모가 뿌리를 잘 내린다.

특히 한 개에 10㎏씩 나가는 모판을 못자리에서 모내기할 논으로 옮기는 것이 버거워 60대 이상 농민들은 농사를 포기하기도 한다.

농민 이휴열(47)씨는 "모심기.수확 등 대부분의 농사일이 기계화됐지만 못자리 작업은 일일이 손으로 해야 돼 '못자리가 절반 농사'라고 불릴 정도"라며 "육묘장이 생긴 뒤에는 '양복 입고 농사를 지을 수도 있겠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온다"고 말했다.

정읍농협 유남영 조합장은 "기대 반 우려 반으로 자동 육묘장을 설치했는데 농민들의 반응이 예상보다 좋아 내년에는 확대할 계획"이라며 "토마토.고추 등 다른 작물로 품목을 늘려 나가겠다"고 말했다.

정읍=장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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