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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시윤기자의고갯마루얘기마루] 김천 삼마골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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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적 신라와 백제가 통하던 문인 나제통문. 지금은 같은 면이면서도 통문 양편의 말투가 신기하게 갈린다. 서편은 전라도 말씨, 동편은 경상도 말씨를 쓴다.

삼마골재로 통하는 보기만 해도 시원한 숲길.

백두대간의 인적 드문 숲 속엔 칡나무 덩굴과 등나무 덩굴이 어지럽게 얽혀 있다. 칡 갈(葛)자와 등나무 등자(藤)를 함께 쓴 것이 갈등(葛藤)이다. 얽힌 가지를 풀어주지 않으면 칡이나 등나무나 오래 못 가 죽게 마련이다. 사람살이도 그런 법이다. 봄철 건조기 산불 예방 차원에서 전국에서 실시되던 입산 통제가 최근 끝났다. 백두대간에 다가서는 길이 다시 산꾼들에게 열렸다. 입산 통제 기간에 맞춰 잠시 쉬던 '고갯마루 얘기마루'도 등산화를 들멨다. 한반도의 등줄기 백두대간. 그 넉넉한 품에 사람들을 받아들인 이후로 사람과 사람이 쉼없이 부딪히는 삶 속에 완충지대 역할을 해왔다.

삼마골(김천) 글.사진 = 성시윤 기자

무주구천동 제1경으로 꼽히는 석굴 '나제통문'

이번에 찾아 나선 백두대간 옛고개는 경북 김천시 부항면 해인리 삼마골재다. 삼마골은 경상북도(김천시). 충청북도(영동군).전라북도(무주군) 등 3개 도가 만나는 화전봉(1176m)의 북쪽 자락에 있는 고개다. 화전봉은 산행객들 사이에 흔히 삼도봉(三道峰)으로 알려져 있다. 매년 10월 10일에 3도 도민이 정상에서 삼도 화합제를 지낸 덕에 유명해졌다.

삼마골재 고갯마루는 화전봉으로부터 0.9㎞ 떨어져 있다. 고개 서편은 김천시 부항면 해인리이며, 김천에서 고개를 넘어가면 영동군 상촌면 물한리가 된다.

같은 면인데 통문 서쪽은 전라도 말, 동편은 경상도 말

해인리에 가자면 대전~통영 간 고속도로 무주 나들목을 빠져나온 뒤 백두대간에 이르러 작은 석굴을 하나 통과한다. 이름하여 '나제통문'(羅濟通門)이다. 문자 그대로 옛적 신라와 백제가 통하던 문이다.

굴의 연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백제를 쓰러뜨린 직후 신라가 화합을 도모하기 위해 굴을 뚫었다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 일제시대 때 무주~김천간 신작로(현재의 3번 국도)를 내면서 굴이 처음 생겼다는 주장도 있다. 앞의 견해는 뒤받침이 될 만한 사료가 없고, 뒤의 주장에 관련해선 '일제시대 때 우리 아버지가 석굴 공사에 동원됐다'는 식의 증언을 들을 수 있다. '생기기는 고대에 생겼는데 시대가 바뀌면서 조금씩 굴이 커졌고, 일제시대에도 확장 공사를 했다'는 중간 입장도 나온다. 어쨌거나 굴이 언제 만들어졌는지, 언제부터 나제통문이라 불리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기 어렵다.

다만 이들의 의견이 일치하는 점이 있다. 나제통문 일대가 신라.백제의 접경지대였다는 것에 대해선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증거가 생생하게 남아 있다. 나제통문 일대는 무주군 설천면에 속한다. 그런데 석굴 양편 마을 사람의 억양이 다르다. 굴 서편에선 전라도 사투리를, 굴 동편에선 경상도 사투리를 쓴다. 설천장에서 말투만 듣고도 나제통문 동서 쪽 중 어디에 사는지를 알 수 있을 정도다. 이런 역사성 덕에 나제통문은 연원이 불분명함에도 불구하고 무주구천동 33경(景) 중 제1경으로 꼽힌다.

갈(칡 덩굴 葛) 등(등나무 덩굴 騰) 완충지대

나제통문에서 김천시 해인리까지 첩첩산중 속 24㎞를 달린다. 해인리 깊은 곳에 자리 잡은 '해인산장'에 차를 대놓고 고개를 오른다. 입산통제 초소 앞에서 오른편의 소로를 잡는다. 경운기가 지날 만한 소로. 삼마골재로 가는 길이다. 길옆으로 물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계곡물은 김천시내에서 부항천을 이루고 낙동강에 합쳐진다.

길옆으로는 흰 꽃들이 두루 피었다. 봄꽃이 노랗고 붉다면 초여름에 피는 꽃은 흰 것이 많은 법. 길 위로 가지를 드리운 산목련(함박꽃)의 봉오리는 탐스러우면서도 수수하다. 도시의 목련 꽃이 고개를 쳐들고 하늘을 향해 핀다면 산목련의 꽃은 수줍은 듯 땅을 보고 핀다. 계곡 건너편에서 키가 훌쩍한 층층나무가 층층으로 펼친 가지 위에 하얀 꽃구름을 달았다. 낮은 키에 하얀 꽃 핀 찔레 줄기는 아직까진 연하고 들큼해 심심풀이 삼아 씹을 만하다.

길은 이내 오솔길로 바뀐다. 이따금 화전민이 살았던 산막의 흔적이 눈에 띈다. 아직 무너지지 않은 돌담 옆으로 화전민이 심어놓은 살구나무와 감나무 가지에 새 잎이 무성하게 달렸다. 돌담 옆에는 깨진 항아리가 뒹굴고 있다.

일제시대부터 이곳에 정착한 화전민들은 숯을 구워 팔아 살았다. 이후 한국전쟁 발발을 전후해 이북에서 월남한 사람들이 산 속에 화전민 그룹에 합류했다. 그들은 생활력이 강했다. 참나무를 베어 일주일 만에 산막 한 채를 뚝딱 지었다.

백두대간에 자리 잡은 마을이 대개 그랬듯 한국전쟁 동안, 그리고 휴전 후로도 한참 동안 이곳은 '국방군'과 '빨치산' 사이에 놓인 완충지대였다. 낮, 밤으로 산을 점령한 군인이 바뀌던 시절이었다. 화전민들은 전쟁 동안 며칠씩 산 밑에서 피해 지내다가 산막으로 올라오고, 또 내려갔다가 올라오기를 반복했다. 삼마골 아래의 해인리만 해도 제사를 같은 날 지내는 집이 여러 집 된다.

휴전 뒤 숯은 더 이상 장사가 되지 않았다. 화전민들은 산비탈을 골라 감자와 옥수수를 심고 생계를 해결했다. 외부에서 들여올 수밖에 없는 소금 정도를 제외하곤 모든 것을 산 속에서 만들어냈다. 아니, 산에서 얻었다. 이후 1960년대 말기 김신조 사건 같은 일들이 잇달아 터지면서 화전민들은 정부 정책에 따라 하릴없이 산을 내려왔다. 그게 삼마골에 살던 화전민들의 역사다.

거리로는 1㎞, 쉬엄쉬엄 올라도 한 시간이면 고개 안부에 이르는 삼마골재. 그 주변은 원시림 같다. 발자취 끊어진 고개 옆으로는 칡나무 덩굴과 등나무 덩굴이 어지럽게 얽혀 있다. 백두대간은 이렇듯 사람들 간의 갈등을 말없이 보듬어 왔다. 더 오랜 세월이 흐르면 어지럽게 엉켜 있던 덩굴들도 삭아 없어질 것이다.

여행 정보

■ 드라이브 메모= 서울 기준으로 경부고속도로 → 대전∼통영 간 고속도로 →무주 나들목 나와 무주리조트 방향 30번 국도 따라 진행→ 나제통문 → 무풍면 소재지 → 현내삼거리에서 좌회전해 1089번 지방도로→삼도봉 터널 통과→ 해인동

■ 추천 산행 코스 = 해인산장 → 삼마골→ 삼마골재 마루→ 삼도봉 → 안골 → 해인산장. 3시간30분 소요.

■ 추천 쉼터 = 해인리의 해인산장(054-437-2991). 해인리 출신인 김용원(60)씨가 만 8년째 운영하는 산장이다. 이 집의 돼지고기 숯불구이가 일품이다.

■ 대중교통을 이용한 산행 = 서울역에서 김천행 새마을호를 탄다. 첫차는 오전 5시50분에 있으며 서울역∼김천역 간은 3시간이 걸린다. 김천역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부항면 하대 삼거리에서 내린다. 김천역∼하대 삼거리 구간은 50분 소요. 하대 삼거리에서 해인 산장까지는 3㎞ 정도 거리다. 해인 산장에 전화하면 하대 삼거리에서 해인 산장까지 태워다 준다. 해인 산장에서 식사 뒤 삼마골→ 삼마골재→ 물한계곡 → 황룡사 코스(4.5㎞)를 걸어 넘는다. 3시간 30분 소요. 등산로 주변으로 계곡이 이어지기 때문에 식수는 따로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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