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국회] 월드컵 분위기 띄우기, 그 도가 지나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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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월드컵 개막일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지역별로 치열한 예선을 거쳐 확정된 32개국의 선수단들이 각기 나름의 우승을 향한 꿈을 가슴에 품고 독일로 속속 입성하고 있다. 우리의 태극전사들도 모든 준비를 마치고 이제 결전의 순간을 기다리며 오늘 독일의 퀼른에 도착하여 교외의 한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고 한다. 이제 사흘 후면 세계는 축구의 광풍에 휩싸여 들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열병에 가까운 응원 열기로 월드컵 기간 내내 잠 못드는 밤으로 지새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에겐 ‘2002 월드컵’의 감동과 흥분이 아직도 진한 여운으로 기억되어 있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의 잠재의식은 그날의 함성과 전율을 빨리 다시 느끼고 싶어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요즘 언론과 일부 기업, 단체들의 월드컵 분위기 띄우기가 도를 지나친 느낌이 든다. 거기에다가 일부 정치 세력들이 국민들의 순수한 월드컵 열망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의도도 감지된다.

이런 변질된 월드컵 열기는 자칫하면 심각한 월드컵 후유증으로 남겨질 우려도 있다. 또 지나친 승리에 대한 기대감의 표출은 경기에 임하는 선수들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어 오히려 경기력에 나쁜 영향을 줄 수도 있다. 스포츠는 어디까지나 스포츠로 만족해야 한다. 선수는 최선을 다하여 경기에 임하고 우리는 그냥 그들의 선전을 즐기면 그뿐이다. 이것이 스포츠다.

물론 스포츠의 경제적 부가가치 창출이 가히 기하학적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우리 선수들이 선전하여 우리가 바라는 이상의 성적을 내 준다면 더없이 기쁜 일일 것이다. 우리 국가의 인지도는 한없이 높아질 것이고, 더불어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시너지 효과도 거두어질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스포츠의 지나친 상업화나 정치화는 바람직하지 않다. 스포츠를 스포츠로 즐기지 못하고 이에 정치세력들의 순수하지 못한 목적이 개입되어 이용되어 진다면 오히려 국가의 장래에 큰 걸림돌이 될 수도 있음이다. 우리는 이미 2002년에 그런 뼈아픈 경험을 하였고, 그 대가로 나라 경제는 망가졌고 국가의 정체성 마저 흔들리고 있는 것이 현실 아니던가.

2002년의 4강 신화는 우리 국민들에게 현실성을 넘어선 막연한 희망을 심었고, 그 희망은 곧바로 이어진 대선에서 전혀 검증이 안 된 노무현 후보를 단지 신선하고 잘할 것 같다는 생각하나 만으로 대통령으로 뽑아버린 것이다. 그러나 그 때의 신중하지 못한 선택은 우리에게 지난 3년 동안의 힘든 고통이라는 댓가로 고스란히 우리에게 되돌아 와 있다.

지금 우리는 또다시 그런 우를 범하려 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좀더 냉정해져야 한다. 본선에 올라있는 32개국 팀 어느 하나도 우리에 비해 월등히 약한 팀은 없다. 우리가 속한 조의 다른 3개 팀의 객관적인 전력도 결코 우리에 비해 못하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16강은 문난하고 4강까지도 가능하다’는 식의 무책임한 기대를 국민 전체에 심어주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나 또한 우리 팀이 16강을 넘어 2002년의 영광을 다시 한 번 되돌려 주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너무 그것에 목숨 걸지는 말자는 거다. 예전부터 스포츠는 위정자의 독재나 부정을 덮고 감추는 분위기 전환용으로 많이 이용되었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지금 정권이 독재나 부정을 덮으려 할리는 없겠지만 그러나 부정과 독재 못지않은 것이 무능과 독선이다. 어쩌면 현 집권세력들은 자신들의 무능과 오만함에 기인한 지난 5.31 선거의 상처를 월드컵 열기가 덮어 가려주길 바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자신들의 태생이 월드컵과 무관하지 않았으니 이번에도 월드컵이 자신들을 구원해 줄 것이란 막연한 희망을 갖고 월드컵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은 이제 2002년 그때의 그 국민들이 아니다. 불가능을 가능케 한 월드컵 4강 신화에 마취되어 이성이 아닌 감성으로 너무도 경솔한 선택을 하였던 그때의 그 국민들이 아니란 얘기다. 그날의 우리 국민들의 충만한 열정과 하나 된 힘을 제대로 이끌어 국가 발전의 동력으로 승화시켜 줄 것으로 믿었던 노대통령에 대한 우리의 판단이 얼마나 잘못된 것이었는지 이젠 뼈저리게 느끼고 후회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붉은 악마'의 순수함도 2002년 겨울에 이미 사라졌다. 지금 그들은 스스로의 매너리즘에 빠져 어떤 특권 의식을 기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기업이나 정치권으로부터 수억원의 후원비를 받는 어느새 거대한 세력을 가진 조직이 되어버렸다. 어쩌면 첨부터 그들은 어떤 세력들에 의해 만들어진 목적을 가진 조직은 아니었을까?

응원은 형식이 필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꼭 리더가 전면에서 지휘하고 일사분란하게 구호를 외치고 율동을 함해야 잘하는 응원이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나도 2002년엔 붉은 옷을 입고 거리에서 목청 높여 응원을 했다. 나 스스로 붉은 악마이길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곳곳에서 보여지는 붉은 악마들의 응원 행태가 못마땅하다. 개막도 하기 전에 눈살 찌푸려지는 응원행태로 외국 언론으로부터 조롱을 당하는 모습은 화가난다.

응원에도 정도는 있을 것이다. 상대국을 배려하고 주위 사람들을 배려해야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남의 국가가 연주되는데 꽹가리를 쳐대며 응원전을 펼치지를 않나, 선수단이 도착하는 곳마다 떼지어 몰려다니며 질서를 당부하는 현지 경찰의 저지선을 밀어내 가면서 접근하려는 과잉 응원은 선수나 우리 국가를 위해 전혀 도움되는 행동이 아니다.

한달 남짓의 월드컵 기간동안 우리는 세계인과 어울려 하나의 스포츠 축제를 즐기면 그만이다. 우리 팀의 결과에 일희일비해 지나치게 심각한 반응을 보일 필요가 없다. 마음껏 응원하고 이기면 기뻐하고, 설령 우리 팀이 패배하더라도 다음을 위한 격려 한마디 해 줄 수 있는 아량과 여유가 필요한 때다.

이번 2006 독일 월드컵은 정치나 상업성이 지나치게 개입함 없는 순수한 스포츠의 제전으로 즐기고 맞았으면 좋겠다는 것이 내 개인적인 바램이다. [디지털국회 김재홍]

(이 글은 인터넷 중앙일보에 게시된 회원의 글을 소개하는 것으로 중앙일보의 논조와는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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