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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3만 달러 진입 무난 … 4만달러 고지까진 곳곳 지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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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올해가 1인당 국민총소득(GNI) 및 국내총생산(GDP) 3만 달러 시대의 원년이 된다. 2일 기획재정부·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1인당 GNI·GDP는 각각 2만9745달러, 2만9744달러다. 올해 성장률을 감안할 때 이 지표들이 3만1000달러대를 기록할 것이라는 게 두 기관의 분석이다. 도규상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장은 “급격한 경제 환경의 변화만 없다면, 올해 3만 달러 돌파는 무난할 것으로 전망된다”며 “선진국으로 향하는 중요한 관문을 통과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1인당 GDP 3만1000달러 전망 #한국, 선진국 문턱 넘은 23개국에 #뚜렷한 미래 성장동력 안보이고 #저출산·고령화로 성장률도 위태 #규제 없애 기업투자 물꼬 터줘야 #좋은 일자리 늘어 성장·분배 해결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는 선진국 진입의 ‘문턱’으로 간주된다. 지난해를 기준으로 1인당 GNI가 3만 달러를 넘는 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도 23개국밖에 없다. 한때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던 한국이 선진국 문턱에 들어선 것 자체가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는 평가다. 하지만 스페인·이탈리아·그리스 등 한국보다 앞서 3만 달러를 넘어선 나라 중에는 ‘후퇴’를 경험한 경우가 적지 않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한국경제연구원이 1인당 GDP가 3만 달러를 넘은 23개국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이들이 3만 달러 고지를 밟았을 때 ‘잠재 성장률’(그 나라의 가용자원을 모두 투입했을 때에 달성할 수 있는 최대 성장률)은 평균 2.8%다. 한국의 올해 잠재 성장률(2.9%)과 비슷하다. 한국 경제의 현재 기초 체력이 중간은 간다는 얘기다.

문제는 앞으로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뚜렷한 차세대 성장동력이 안 보이는 상황에서 산업 경쟁력 등이 조금씩 주변국에 뒤처지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글로벌 보호무역주의로 통상 환경은 악화하고 있고, ▶내수 위축 ▶고용시장 불안 ▶가계부채 급증 등 대내적인 불확실성도 커지고 있다.

김민창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세계 최하위권의 출산율과 인구 고령화 등으로 매우 빠른 속도의 노동력 감소가 예상된다”며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2020년 이후에는 1%대로 하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유환익 한국경제연구원 혁신성장실장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G7 국가들 대부분 잠재성장률이 반등한 반면 한국은 하락했다”며 “성장률 둔화 속도를 감안하면 한국의 4만 달러 진입 시기가 주요 선진국에 비해 늦어질 것으로 보인다”라고 예상했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4만 달러 달성 국가와 비교해 한국은 경상수지나 성장률, 연구개발(R&D) 비중 등 외형지표는 양호했다. 그러나 정부 효율성이나 노동생산성·내수성장률·투명성·비즈니스효율성·출산율 등에선 60~70% 선에 불과했다. 특히 기술인프라, 기술무역수지, 연구원 1인당 특허 등 질적 성과지표가 취약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경제 발전뿐만 아니라, 경제 성장의 부작용을 완화할 수 있는 사회 인프라와 사회적 자본을 갖춰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국민소득 3만 달러에 대한 체감도가 낮다는 점도 문제다. 체감 경기와 밀접한 일자리와 주거 비용, 교육여건, 소득 분배 등이 좀처럼 나아지지 못해서다. 국민소득에서 정부·기업 몫을 제외한 1인당 가계총처분가능소득(PGDI)은 지난해 1만6573 달러다. 2006년(1만2325달러)에서 34% 증가했다. 같은 기간 GNI의 증가율(43%)을 밑돈다. 국가 경제가 성장해 정부 곳간이 넉넉해지고 기업 실적도 나아졌는데, 가계가 받는 몫은 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 늘었다는 얘기다. 여기에 올해 소득 5분위 배율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년 만에 가장 커졌다. 소득 양극화 수준이 악화하고 있다는 의미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술 진보가 빠르게 일어나는 상황에서 분배 악화는 세계적인 흐름이지만, 한국은 그 속도가 빠르다는 점이 문제”라며 “사회 안전망 강화와 함께 중산층을 두텁게 만들기 위해 평균 임금이 높은 제조업을 살리고, 신성장·신산업 분야를 키워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결국 4만 달러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경제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목소리다. 우선 선진국에 진입한 나라들처럼 4차 산업혁명기를 맞아 혁신을 저해하는 규제를  혁파하고, 고비용·저효율 산업 구조를 깨야 한다. 김낙년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제성장의 원천은 기업”이라며 “기업이 더 많은 투자로 일자리를 늘리고, 부가가치를 창출하도록 ‘기업하기 좋은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경쟁력이 떨어지는 산업은 정리·조정해 산업 전반의 활력을 높여야 한다. 노동 생산성을 높이고, 기업이 여건과 환경에 따라 인력을 대체할 수 있게끔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하는 것도 필요하다. 박영범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은 주요 경제 지표 중 유독 노동 유연성만 세계 평균을 크게 밑돌고 있다”며 “노동 유연성을 확보하면 신규 채용 시 부담이 줄면서 전체 고용은 늘어나게 된다”라고 설명했다.

경제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성장의 결실이 국민 개개인에게 골고루 나뉘도록 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최배근 교수는 “양질의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것이 분배와 성장을 한꺼번에 잡는 가장 효율적인 해법”이라고 말했다.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면 4인 가족 총소득 1억원 넘을까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지적이 하나 있다. 4인 가족이면 가구 소득이 12만 달러(약 1억3500만원)가 되어야 하는데, 이런 가구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는 가계뿐 아니라 정부와 기업의 몫까지 들어있는 국민소득 지표를 잘못 이해한 데서 나온 오해다. 예컨대 국민총소득(GNI)은 한나라의 국민이 국내외 생산 활동에 참가하거나 생산에 필요한 자산을 제공한 대가로 받은 소득의 합계를 뜻하는데, 여기에는 기업 소득과 정부 소득까지 합산된다.

가계의 소득만 살피려면 가계총처분가능소득(PGDI) 지수를 보는 게 더 정확하다. PGDI는 GNI에서 기업과 정부 몫을 뺀 가계의 구매력을 나타내는 지표다. 지난해 1인당 PGDI는 1만6573달러(약 1850만원)다.

세종=손해용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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