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밀착마크]김학용 "나경원 주인공 정치만 했다…난 의원 112명 스타 만들것"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초선의 마음을 갖고 열심히 원내대표를 하려고 그러지.”

지난달 29일 오전 8시, 자유한국당 초선 모임에 참석한 김학용 자유한국당 의원이 웃으며 말했다. 3선의 김 의원은 ‘초선도 아닌데 왜 왔냐’는 후배 의원의 질문에 넉살 좋게 대꾸했다. 이날 오전 열린 모임에는 의원 22명이 참석했다. 한국당 원내대표 경선을 앞두고 의원 한 명이라도 더 만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김 의원으로서는 놓치기 아까운 기회다. ‘대목’을 맞은 김 의원을 중앙일보가 밀착마크했다.

초선 모임에서 정견 발표 기회가 주어지자 김 의원은 준비한 발언이 청산유수처럼 나왔다. “내년도 원내대표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문재인 정권과 맞서 가장 잘 싸울 수 있느냐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제가 적임자가 아닐까 감히 생각해 봤습니다. 또한 제가 주인공이 아니라 자유한국당 112분을 스타 전사로 만들어 국민들이 믿고 맡기는 수권 정당을 만들고자 합니다.”

10월 말 국정감사를 마치고 한국당 원내대표 레이스가 막 시작했을 때만 해도 김학용 의원은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자신과 함께 친김무성계로 분류되던 강석호 의원이 지난달 26일 레이스에서 물러나면서 유력 후보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바른정당에서 유턴한 그는 복당파의 지지를 얻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김 의원은 자신의 제1 강점으로 ‘투쟁력’을 꼽았다. 본인과 가장 닮은 동물은 ‘진돗개’라고 소개할 정도다. 현재 김 의원은 친박계 지지를 얻는 것으로 알려진 나경원 의원과 양강 구도를 형성 중이라는 게 당내 평가다. 나 의원과 비교했을 때 경쟁력을 묻자 “대여투쟁력, 흙수저, 조연 역할” 세 가지를 꼽았다. 그는 “나 의원은 주인공이 되려는 정치를 쭉 해온 분이고 저는 그동안 남을 돕는 역할을 많이 해왔다”고 강조했다.

김 의원이 하루를 시작하는 무대는 국회 목욕탕이다. 오전 5시 30분에 일어나 6시 30분에 도착한다. 이른 아침 목욕탕에서 자연스레 다져진 의원들과의 친밀감이 선거에 나선 그에게 ‘자산’과도 같다고 한다. 1시간가량 목욕탕에서 시간을 보내고 나면 이날 초선 모임처럼 동료 의원들이 주최하는 각종 토론회나 세미나에 참석해 ‘얼굴도장’을 찍는다. 이날도 오전에만 4건의 행사에 참석했다.

행사 사이에 잠시 짬을 낸 그는 휴대전화를 들었다. “의원님, 저 김학용입니다”라고 깍듯이 인사한 그는 “제가 이번에 원내대표 선거에 나가게 됐습니다. 나경원 의원, 유기준 의원 등과 경쟁합니다”라며 선거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수신자를 묻자 “이해구 의원님”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김 의원은 딱 30년 전인 1988년 이 전 의원의 비서로 국회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정치권 밑바닥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국회와 정당이 돌아가는 방식에 대해 구석구석 잘 안다”며 ”원내를 책임지는 역할을 누구보다 잘할 수 있다고 자부한다“고 강조했다.

출마를 예상한 사람이 많지 않았다. 이번에 원내대표를 꼭 해야 하는 이유가 있나?
정부 입장에서는 거의 재앙의 한 해가 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이 위장 평화가 내년으로 접어들면 엄청난 문제가 발생하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경제문제도 이번에 세수 4조원 펑크난 것에도 확연히 나타났는데, 이명박 박근혜 고생해서 곳간을 채워놨더니 그 곳간을 털어서 선심 쓰는 정치를 해왔다. 하지만 이제 그 곳간의 곡식도 거의 바닥이 났다. 곳간을 채우려면 경제를 살려야 하는데 장기침체로 접어들었기 때문에 아마도 내년에는 안보·정치·경제 전 분야에서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 총체적 난국의 상황이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 한국당이 야당의 역할을 잘하고 야권연대 특히 바른미래당과의 야권 연대를 통해 민주당의 독주를 지속해서 잘 견제해 나간다면 저는 분명히 말씀드린 대로 한국당 지지도 40%가 허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반드시 여러 의원님과 노력해 달성하겠다. 
현 김성태 원내대표도 복당파다. 복당파가 연이어 두 번 원내대표가 되는 것에 잔류파 사이에선 ‘불공평하다’는 불만도 있다.
있을 수 있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런 말은 주로 저를 지지하지 않는 분들이 씌우는 프레임이고 이제는 그런 분류 자체도 옅어졌다. 대다수 의원에게 중요한 것은 ‘과연 누가 내년 1년 잘 싸울 수 있느냐, 능력을 갖춘 사람이냐’ 하는 것이다. 능력과 인물 중심으로 보고 있다. 하나 덧붙이자면 복당파나 잔류파나 모두 보수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서 (탈당과 잔류를) 결행했다. 당시 탈당했던 의원들도 정치적 생명을 걸고 나섰던 건데 폄하되면 곤란하다. 지금 복당파도 아니고 친박계도 아니라는 것을 앞세우는 후보도 있는데 과거 친박도 비박도 아닌 사람이 누가 있었겠나. 한 가지 더 말하자면 단테의 『신곡』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는 걸 알려드리고 싶다. ‘지옥의 가장 중심 자리는 정치적 격변기에 중립에 서 있던 사람을 위해 예약되어 있다.’
당내에서 친김무성계로 분류된다. 김학용 의원이 원내대표가 되면 김무성 전 대표가 배후에서 영향력을 끼치는, 일종의 ‘상왕 정치’가 시작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 어떤 의원은 저에게 와서 ‘김 전 대표에게 출당 권고를 약속하면 무투표 당선도 가능할 정도로 밀어주겠다’라고도 했다. (웃음) 그러나 김 전 대표와 저는 정치적 동지이지 상하 관계가 아니다. 김 전 대표가 공적인 영역에서 무리한 요구를 할 분도 아니다. 다만 김 전 의원과 제가 가까운 건 맞다. 그러니 김 전 대표가 당 대표에 나오고, 내가 원내대표도 하면 그런 건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래서 김 전 대표에게 원내대표 출마 의사를 상의했더니 김 전 대표가 ‘나는 당 대표 출마 생각이 없다’고 해서 마음 편안하게 나왔다.
나경원 의원과 양강으로 분류되는데 비교 우위는 뭔가.
나 의원은 경륜 있고 훌륭한 우리 당의 자산이다. 하지만 나 의원은 자신이 주인공이 되려는 정치를 쭉 해온 분이고 저는 그동안 남을 돕는 역할을 많이 해왔다. 그동안 각종 선거에서 나 의원도 많이 도와드렸다. 국회에서 비서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저를 내세우기보다는 다른 의원들을 스타로 만들 수 있는 조연 역할의 원내대표를 하겠다. 또한 저는 지방(경기 안성)에서 자란 흙수저 출신이다. 한국당의 가장 큰 약점 중 하나는 소위 ‘웰빙 정당’, ‘귀족 정당’ 프레임인데, 우리가 이런 이미지를 벗어나려면 따뜻하고 합리적 보수, 노동자층에게 다가가는 보수가 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도 내가 나 의원보다 경쟁력이 있다. 마지막으로 투쟁력이다. ‘김학용’ 하면 누구보다 잘 싸운다는 이미지가 있다. 동물로 비교하자면 진돗개다. 지금 야당에는 문재인 정부의 독선과 독주를 막을 잘 싸우는 원내대표가 필요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보수 정치세력이 지리멸렬해졌다고 한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복안을 갖고 있는가.
지지층이 온전하게 돌아온다면 우리 당 지지율이 30% 중반까지 와야 하는데, 차기 원내대표가 현재 공중에 떠 있는 민심을 한국당으로 끌어오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1년 동안 잘 싸워야 한다. 당내에서 누구보다 잘 싸울 수 있는 제가 선봉에 서서 여당의 독주를 막고, 떠난 민심이 돌아올 수 있도록 하겠다. 또한 보수를 하나로 모을 수 있는 인화력도 중요하다. 내가 비록 대중 인지도는 떨어지지만, 국방위원회나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위원장을 맡았을 때 이해관계가 첨예한 가운데서도 큰 잡음 없이 모범적이고 화합하는 위원회를 만들었다.
탄핵에 찬성했고, 바른정당에도 합류했다. 그런데 최근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어떤 언론에서는 내가 친박표를 얻으려고 그랬다는데 분명히 말하지만, 평소 확고한 생각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민의 공분을 산 것은 재물을 탐하거나 이권에 개입한 것이 아니라 최순실 씨 국정농단처럼 도저히 대통령으로서 상식 밖의 부적절한 처신을 해서다. 하지만 지금 징역 33년을 선고한 것은 정치 탄압이자 정치보복이다. 이미 탄핵이라는 혹독한 대가를 치른 만큼 재판을 마치면 문재인 대통령이 특사 형식으로 국민통합의 길을 열어야 한다. 빠를수록 좋다.
원내대표 선거에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나?
지금까지 선거를 6번 치러서 진 적이 없다. 제가 정치에 입문한 계기는 9살 때 박정희 전 대통령이 한동 목장 준공식에 온 것을 보고 나서다. 인산인해의 사람들이 모인 것을 보고 ‘저런 사람’(정치인)이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당시엔 안성·평택이 하나의 선거구였는데 안성이 인구가 적으니까 선거 때마다 평택 출신 후보에게 패했다. 그래서 정치인으로 성공하려면 학교를 평택으로 가야 할 것 같아서 평택고를 갔는데, 정작 내가 선거에 나설 때는 중선거구제에서 소선거구로 바뀌며 지역구가 나뉘었다. 안성에서 출마했더니 평택고 출신이라서 힘들었다. 하지만 그래서 더 열심히 하는 계기가 됐고 안성에서 도의원 3번, 국회의원 3번을 했다. 누가 만들어준 낙하산이 아니라 밑바닥에서 출발해 여기까지 왔기 때문에 자신 있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