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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 속 꽃 핀 명상 … 열 받으면 ‘시베리아 북행열차’ 타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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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2호 10면

[배영대의 명상만리] 장현갑 명상학회 명예회장의 ‘행복 명상’ 

[일러스트=강일구 ilgook@hanmail.net]

[일러스트=강일구 ilgook@hanmail.net]

어느새 한 해를 결산하는 12월이다. 성과가 계획에 미치지 못하면 씁쓸해하곤 한다. 이맘때면 늘 벌어지는 일이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니다. 누구나 그런 경험을 한다. 한 해를 인생 전체로 확장해 보면 어떻게 보일까. 인생의 12월에 내 모습은 어떨까. 아직 만회할 시간과 기회가 남아 있는가. 명상의 존재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명상은 아픔과 관련된다. 고통이 없다면 명상이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인생은 고해라고도 하는데, 고통의 바다를 건너가는 삶의 기술을 명상을 통해 배우게 된다.

56세 때 교통사고로 아내·딸 잃어 #연구주제였던 명상 더 각별해져 #즐거운 마음 지속하게 하는 훈련 #의무나 강요 아닌 필요해 하는 것 #규칙적인 생활·운동·명상으로 #희귀 면역병 중증 근무력증 극복 #허버트 벤슨, 존 카밧진 이론 번역도

장현갑(77) 한국명상학회 명예회장(영남대 명예교수)의 개인사에서도 그런 점을 확인할 수 있다. 27살에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뇌과학 전공)가 되었고, 38세 때 영남대 심리학과 창립 주역으로 스카우트 되어 명상과 심리학을 접목한 연구를 이끌었다. 특히 ‘격리 성장(social isolation)’을 주제로 해외 학술저널에 발표한 30편의 논문 등이 심리학·의학을 연계한 중요한 연구로 인정받으면서 마르퀴즈 후즈후(Marquis Who’s Who)를 비롯한 세계 3대 인명사전에 등재되기도 했다. 보기에 따라선 남부러울 것 없는 인생이었다.

하지만 한꺼풀 겉모양을 들춰내면 아픔과 고통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모든 아픔의 순간을 다 명상으로 극복한 것은 아니지만 어느 순간부터 뚜렷하게 명상의 효과와 의미를 자각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출간한 『심리학자의 인생 실험실』에서 그는 인생의 굴곡에서 만난 명상이 어떻게 그의 삶에 영향을 끼쳤는지 두루 털어놓았다. 지난주에 다시 나온 『명상에 답이 있다』의 개정판을 통해서도 명상을 통해 인생을 조망하고 있다. 현재 적지 않은 나이지만 강연도 계속한다. 11월 27일엔 국회 의정연수원에서 3시간 연속 강연을 했다.

인생의 절정에서 만난 결정적 위기

10년 전부터 ‘중증 근무력증’이란 난치병으로 고생하지만 질병과 함께 잘 살아가는 방법을 찾고 있다는 장현갑 명상학회 명예회장. [김경빈 기자]

10년 전부터 ‘중증 근무력증’이란 난치병으로 고생하지만 질병과 함께 잘 살아가는 방법을 찾고 있다는 장현갑 명상학회 명예회장. [김경빈 기자]

“사람은 살면서 한 번은 생의 결정적 위기, 결정적 장면을 만나게 된다”고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결정적 위기는 인생의 절정에서 다가오는 것일까. 56세이던 1997년 안식년을 맞아 미국 애리조나대학에 방문교수로 가 있을 때였다. 변화는 순식간에 다가왔다.

그해 여름 방학을 맞아 당시 효성여대 심리학 교수로 있던 아내와 딸·아들이 미국으로 건너왔다. 온 가족이 함께 제자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여행을 떠났다가 트럭과 충돌하는 교통사고로 아내와 딸을 그 자리에서 잃었다. 그 자신도 두 다리와 발등이 으스러지는 중상을 입고 4개월 동안 입원해야 했고, 아들도 큰 부상을 당했지만 다행히 살아남았다.

사고가 나기 직전까지 모든 것이 평화로웠다. 모든 것이 달라진 것은 ‘찰나’였다. 하늘이 무너지고 가슴이 찢어지는 절망이라는 말로도 부족했다고 한다.

그래도 산 사람은 산다. 가장 고통스러울 때 명상은 힘이 되었다. 사고 나기 전부터 연구의 중심에 명상이 있었지만 사고 이후 그 의미가 각별해졌다. 같은 책이라도 한 구절 한 구절이 다르게 다가왔다. 하버드대 심신의학연구소 공동소장을 지낸 조앤 보리센코의 책 『마음이 지닌 치유의 힘』의 경우 의식을 회복하면서부터 읽으며 위안을 받아 우리말로 번역해냈다.

재활에 성공한 그가 지인과 학생들에게 즐겨 전하는 충고이자 고백은 이런 것이다. “고통이 곧 의미입니다.” 제2차세계대전 당시 유태인 수용소에 억류되면서 겪은 아픈 경험을 담은 『죽음의 수용소에서』(원제 Man’s Search for Meaning)의 저자 빅터 프랭클이 강조한 말인데 그에게 더욱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고 한다. ‘고통 속에서 발견한 의미’야말로 인간의 삶을 보다 값지고 알차게 해준다는 뜻이었다. 다시 살아난 장 교수는 자신의 고통을 치유하는 동시에 이웃에게도 자신이 체험한 고통 치유 방법을 알려주는 일에 매진했다고 한다. 한시도 헛되이 보내지 않으려고 했다는 그는 이렇게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지만,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얻었습니다.”

1990년대 초반 미국의 의학과 심리학계에서는 허버트 벤슨 박사의 ‘이완반응 명상’과 존 카밧진 박사의 ‘마음챙김 명상’이 이미 심리치료 현장에 도입되고 있었다. 그런 흐름을 누구보다 먼저 이해해 국내에 소개했다. 카밧진이 만든 ‘MBSR(Mindfulness-Based Stress Reduction·마음챙김 명상에 기반한 스트레스 감소)’ 프로그램을 벤치마킹해서 한국형 명상 프로그램인 ‘K-MBSR’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카밧진의 대표작 『마음챙김 명상과 자기치유』를 번역한 것을 비롯해 명상 관련 여러 종의 책을 번역하거나 직접 써내며 우리 사회에서 명상이 활성화되는 토대를 마련했다.

상황 맞게 자연스럽게 하는 게 ‘행복 명상’

어려서부터 그는 ‘약골’이었다. 공부만 잘했지 그 외에 잘한 것이 별로 없었다고 한다. 혈압과 당뇨는 평생 그를 괴롭혔다. 10년 전부터는 ‘중증 근무력증’에 시달린다. 희귀한 면역 질병이다. 이 난치병에 지지 않고 병과 함께 잘 살아가는 방법을 그는 찾고 있다. 지금도 하루에 5㎎의 스테로이드를 복용하고 있지만, 규칙적인 생활과 운동 그리고 명상으로 그 부작용을 해소하고 있다.

기상 시간은 새벽 5시 30분. 몸 뻗기를 하거나 주물러 주고, 간단한 운동과 샤워와 명상을 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90년대에는 국선도를 배우기도 했지만, 요즘 주로 하는 운동은 걷기다. 하루 10㎞ 정도는 걸으려고 한다. 실내 자전거도 40분 정도 타고, TV를 볼 때는 제자리 뛰기를 한다. 이 모든 활동의 중심에 명상이 있다. 취침은 밤 10시 30분~11시에 한다.

장현갑식 ‘명상 행복’은 그렇게 어렵지 않아 보인다. 충분한 수면과 건강한 식습관, 규칙적인 운동과 즐거운 마음가짐이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특히 명상은 즐거운 마음가짐을 지속하게 하는 훈련이다.

“명상은 의무나 강요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필요해서 하는 것이죠. 명상까지 경쟁적으로 잘하려고 할 필요는 없어요.” 저마다의 다른 사정과 신체적, 상황적 특성에 맞춰 자연스럽게 하면 된다는 얘기다. 누가 더 오래 앉아 명상을 하는가, 명상하는 동안 누가 흥미로운 경험을 더 많이 하는가 등의 경쟁적 사고는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했다.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요령으로 그는 “시베리아 북행열차에 올라타라”고 했다. 갑자기 화가 나거나 걱정거리 또는 난처한 일이 생겼을 경우 ‘시베리아 북행열차’를 떠올려보라는 얘기다. “먼저 멈추라(Stop). 그리고 호흡하고(Breathe) 상황을 살피라(Notice). 마지막으로 적절한 반응을 선택하라(Reaction)”는 의미다. 영어의 첫 글자를 따면 ‘SBNR’인데, 이를 기억하기 쉽게 시베리아 북행 열차를 타는 것에 비유한 것이다. SB는 시베리아, NR은 북행 열차로 간주했다. 열(스트레스) 받을 때마다 차디찬 시베리아 북행 열차를 올라타면, 열이 식을 것이라고 했다.

배영대 문화선임기자 balanc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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