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전시대통령 권한 너무 많다' 비판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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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발생한 9.11 사태이래 조지 W 부시가 '전시 대통령'으로 과도한 권한을 행사해왔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법원과 의회에서 제기되고 있다.

미국은 9.11이후 3년 넘게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다.부시는 전시대통령을 선언한 부시 대통령의 권한은 을 계속 확장해 왔고 그 폭은 사상 유례가 없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의 전시 권한에 대해 의회와 법원에서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3권분립 정신에 비춰볼 때 지나치다는 것이다.

행정부와 입법부, 사법부의 견제와 균형은 민주정부의 고전적 원칙으로 미국식 대통령제에서는 비교적 잘 정착된 제도다.그러나 행정부의 수반으로 최고 통수권자인 대통령은 통상 전시에는 평상시에 비해 많은 권한을 갖게 되는 경우가 많아 그 한계를 어떻게 정할 것인지 여부를 놓고 늘 논란이 있어 왔다.

부시 대통령은 9.11이래 지금까지 대통령의 권한과 관련한 성명을 무려 750여건이나 발표했다.이는 미국의 역대 대통령이 낸 성명을 모두 합한 것보다 많은 것이다. 이들 성명은 새 법률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밝히는 것이 대부분이었는데 때때로 새 법률이 대통령의 권한을 침해하는 조항을 담고 있다고 선언하는 경우도 있었다.

실제로 부시 대통령은 9.11 테러라는 미 본토에 대한 사상 유례없는 공격을 계기로 역대 대통령에게는 없었던 광범위한 권한을 행사했다.최근 논란을 빚은 국가안보국의 영장 없는 도청행위가 대표적인 사례다.

부시 정부가 이라크 전쟁 등을 계기로 대통령의 권한을 얼마나 확장했는지는 딕 체니 부통령의 발언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체니 부통령은 지난해 말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지금은 어느 정도 대통령직의 적법한 권한을 회복한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공화당이 주도하는 의회는 9.11 테러사태 이후 부시 대통령의 전쟁 관련 각종 조처를 전폭적으로 지지했고, 이런 와중에 대통령의 권한은 점차 확장돼 왔다.그런데 최근 들어 이런 기류에 적지않은 변화가 엿보이고 있습니다.

하원의 공화당과 민주당 지도부가 공동으로 연방수사국의 민주당 소속 의원 사무실 수색에 항의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상원 정보위원회는 그동안 의회 지도자 8명에게만 제공됐던 중앙정보국 (CIA)의 민감한 정보를 정보위 소속 위원 모두에게 제공하도록 요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이같은 의회의 변화는 민주당이 아니라 부시 대통령의 우군인 공화당이 중심이 돼 모색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공화당 소속인 알렌 스펙터 상원 법사위원장은 "대통령의 전시 권한에 대한 의회의 분위기가 바뀌고 있는 것 같다"면서 그같은 기류가 더이상 "외로운 목소리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법원도 마찬가지다. 일부 연방법원 판사들은 최근 부시 대통령의 전시 대통령 권한 발언에 대해 법적으로 다툴 소지가 있음을 내비치고 있다.연방대법원은 오사마 빈 라덴의 전직 운전기사였던 살림 아메드 함단씨가 관타나모 수용소 수감자들을 특별 군사법원에서 재판하려는 부시 행정부의 계획에 맞서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을 상대로 낸 소송을 이달 중 심의할 예정이다.

대법원의 심의는 그 자체가 전시 대통령의 권한은 제네바 협정상의 수감자 보호 원칙에 우선한다는 부시 행정부의 주장을 전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의회와 법원이 이처럼 대통령의 전시 권한에 대한 태도를 바꾸고 있는 이유를 들자면, 9.11 테러사태 이후 테러 위협이 상존한다는 행정부의 주장은 여전히 강력한 설득력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어떤 위기상황이든 3년 이상이 지나면 더 이상 자동으로 모든 다른 쟁점을 압도할 수 없게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부시 대통령의 낮은 인기도다. 최근 하원 지도부가 연방수사국의 의원 사무실 수색에 항의하는 공동성명을 낸 것도 이같은 상황에 힘입은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또 법원의 움직임에 대해서도 "위기 이후 몇 년 간은 법원도 백악관을 존중하는 경향이 있지만 2 ̄3년이 지나면 상황전개에 대해 자세히 따져보게 됐으며 통해 행정부가 백지수표를 갖고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을 상기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주 USA TODAY신문과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갤럽이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절반에 가까운 48%가 부시 행정부의 대통령 권한 확장이 지나쳤다고 응답했다. USA TODAY는 부시 행정부의 대통령 권한 확장 방식으로 비밀주의, 대통령 관련 문건에 대한 접근 제한, 국가안보를 이유로 국내법과 국제협정 무시, 새로 제정된 법률에 대한 자의적 해석, 사법부의 감독권한 제약 등을 꼽았다. 한 예로 부시 대통령은 지난 2001년 행정명령을 통해 현행법에 따라 퇴임한 지 12년이 지나면 공개하도록 돼 있는 대통령과 부통령 문건 관련 규정을 개정했다. 퇴임 대통령이나 부통령의 판단에 따라 필요하면 공개하지 않을 수 있게 만든 것이다. USA TODAY 신문은 의회와 법원의 전시 대통령 권한에 대한 도전은 베트남전쟁 직후 30여년만에 처음 제기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전시 대통령의 권한에 대한 논란은 부시 대통령의 임기 후반으로 갈수록 더욱 가열될 것으로 전망된다.

최원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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