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위험수위 이른 김명수 대법원장의 사법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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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사법 농단 사건에 연루된 의혹이 있는 판사들에 대한 탄핵을 촉구한 소위 전국법관대표회의의 의결에 대해 대법원이 “특별한 법적 효력이 없다”는 의견을 냈다. 국회에 낸 답변자료를 통해서였다. 대법원은 또 “법관대표회의가 김명수 대법원장에게 어떤 건의를 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같은 이유에서 대법원이 그에 대한 구체적 의견을 밝히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밝혔다.

대법원의 주장대로라면 동료 판사들에 대한 탄핵을 촉구한 법관들의 행위는 법률적 효력이 없는 일종의 보여주기식 시위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더욱이 지난 19일 탄핵을 의결한 회의에 앞서 10여 명의 판사들이 미리 ‘탄핵 동의’에 서명하는 등 법원 집행부와 교감을 한 흔적이 언론 취재 결과 드러났다. 김 대법원장의 요청에 따라 검찰 수사가 이뤄지는 와중에 진보 성향의 판사들은 전직 법원행정처 소속 판사들에 대한 탄핵을 요구하고, 여당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탄핵소추 대상자 선별작업에 나선 것은 정상적인 사법절차라고 보기 어렵다. 이로 인해 법원 내부는 탄핵 의결의 위헌성 여부를 놓고 보혁갈등에 가까운 논쟁을 벌이고 있다. 상황이 악화되고 있는데도 김 대법원장은 사법부의 수장으로서 책임있는 자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법관대표회의를 주도한 판사들이 전자문서 형태로 대법원장에게 촉구안을 제출했는데도 불구하고 정식 건의가 없었다는 애매모호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정치인보다 더 정치에 능한 곳이 법원”이라는 비아냥이 나오는 것도 김 대법원장의 이 같은 ‘치고 빠지기’식 자세와 언동 때문일 것이다.

마침 어제 대법원장의 출근길 차량에 화염병 테러까지 터져 사법부 분위기는 최악을 맞고 있다. 전임 대법원장의 적폐를 파헤치겠다면서 오히려 자신이 앞장서 위험한 사법정치를 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법원 내부의 지적을 김 대법원장은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