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자 때부터 '멀로니' 관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노무현 대통령은 1988년 정치에 입문하기 전까지 부산에서 잘나가던 조세 전문 변호사였다. 상고 출신의 강점을 살려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의 세금 문제를 짚는 데 일가견이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통일민주당에서 처음 금배지를 단 노 대통령은 노동 문제와 함께 서민층의 생존권 문제에 가장 큰 관심을 가졌다.

조세 문제에 해박한 지식을 가진 노 대통령은 빈곤 문제와 양극화 해법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각국의 조세제도 개혁 방안을 접했다고 한다.

노 대통령의 오랜 측근인 이광재 열린우리당 의원은 6일 "고소득층의 숨겨진 세원(稅源)을 밝혀내 세금을 내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이 브라이언 멀로니 전 캐나다 총리에게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이런 연장선상에서라고 한다.

노 대통령 당선 직후 정권 인수위에서 일했던 여당 의원의 말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노 대통령이 당선되기 전부터 멀로니 전 총리를 거론하는 것을 들었다"며 "당선 이후 정책라인과 함께 멀로니 전 총리에 관해 토론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당시 정책라인은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 이병완 청와대 비서실장, 정만호 전 청와대 정책상황비서관(현 KTF 엠하우스 사장) 등이다.

청와대 한 핵심 관계자도 "노 대통령은 당선되기 이전부터 멀로니 사례를 인용했었고, 대통령이 된 뒤엔 청와대 직원들에게 좀 더 연구해 볼 것을 지시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김병준 전 실장도 6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노 대통령이 멀로니 전 총리에게 관심을 갖게 된 배경을 직접 설명했다. 그는 "누가 건의했는지를 떠나 노 대통령이 전 세계 정치 지도자의 개혁 정책과 이면사를 공부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접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멀로니 케이스'가 조세개혁 사례에서 워낙 특이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김 전 실장은 "대통령의 메시지는 조세개혁이 얼마나 힘들고, 아무리 명분이 있더라도 아차 하는 순간에 많은 걸 잃을 수 있음을 강조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면서 노 대통령의 '멀로니 관(觀)'에 쏟아지는 비판적 시각에 대해 불편한 속내를 드러냈다. 그는 "노 대통령은 멀로니가 조세개혁 때문에 그 다음 선거에서 2석을 빼고 다 잃었지만 차기 정부는 증세를 밑거름으로 한 개혁정책을 펼 수 있었다는 정책 이면의 얘기를 한 것"이라며 "대통령이 멀로니를 벤치마킹의 대상으로 삼은 건 아니다"고 역설했다.

이가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