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 서울 국제 음악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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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지난 20일 예술의전당에서 서울 국제음악제가 막을 올렸다. 1975년 광복 30주년 기념 음악제로 시작해 97년 지금의 이름과 함께 격년제로 바뀌면서 우여곡절 끝에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주최측이 여러 번 바뀌는 와중에 지금은 한국음악협회와 예술의전당이 공동 주최하는 형식으로 2년에 한번씩 열리고 있지만 그나마 국내에 몇 안 되는 국제음악제 중 간판격임에 틀림이 없다. 재정적인 어려움이야 불을 보듯 뻔한데 올해는 그 규모와 외형을 꽤나 번듯하게 차려놓았다.

세계적인 명성을 가지고 있으면서 유독 국내 무대에서 볼 기회가 없었던 해외 연주자들의 무대가 연일 계속되는 것도 그렇지만 그들과 국내 음악계를 대표할 만한 연주자들을 함께 무대에 세우려는 노력이 더욱 돋보인다. 첫날 KBS 교향악단과 바이올리니스트 피호영이 우리 나라 대표 주자로서의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가을에 어울리는 브람스의 곡으로만 꾸민 이날 무대에서 협연한 피호영은 40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한 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대곡을 자신이 의도한 호흡 그대로 끌까지 밀고 나가는 힘을 보여주었다. 어느 부분도 얼버무리거나 소흘하지 않는 정교함까지 들려주었다. 1악장의 폭풍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오보에 선율에 이어지는 부드럽고 아름다운 바이올린의 음색이 귀에 닿는 순간 전혀 다른 또 하나의 세계를 발견하는 듯 했고 그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경쾌하고 현란한 3악장의 유희가 펼쳐지면서 서로 다른 세 가지의 음악세계가 따로 또 같이 공존하는 하나의 공간이 눈앞에 펼쳐지는 감동을 연출했다. 세계 어느 무대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연주를 펼침으로써 우리 손으로 만드는 국제 음악제와 우리 음악계의 위상을 되새기게 했다. 여러 가지로 어수선한 이 가을 서울 국제 음악제가 커다란 위안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서울국제음악제는 24일 인천시향과 첼리스트 지안 왕의 협연 무대에 이어 25일 수원시향과 피아니스트 존 오코너의 협연으로 피날레를 장식한다.

홍승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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