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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에 취해 조직 내서 군림한 카를로스 곤, 제왕적 CEO 몰락의 정석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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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1호 14면

22일 도쿄 거리의 대형 스크린 앞에서 행인들이 자동차 회사인 닛산의 이사회가 카를로스 곤 회장을 해임했다는 뉴스를 보고 있다. [AFP=연합뉴스]

22일 도쿄 거리의 대형 스크린 앞에서 행인들이 자동차 회사인 닛산의 이사회가 카를로스 곤 회장을 해임했다는 뉴스를 보고 있다. [AFP=연합뉴스]

일본 닛산자동차 이사회가 22일 카를로스 곤을 최고경영자(CEO) 자리에서 해임했다. 그가 1999년 프랑스 르노와 일본 닛산을 묶어 르노닛산 그룹을 세운 지 19년 만이다. 또 한 명의 ‘제왕적 최고경영자(imperial CEO)’가 몰락했다. 중앙SUNDAY는 미국 기업지배구조 전문가인 리날도 브루토코 월드비즈니스아카데미 대표에게 23일 전화를 걸어 제왕적 CEO의 등장과 몰락 이유를 물었다. 그는 지난해 제왕적 CEO에 관한 글(Demise of Imperial CEO)을 발표해 관심을 끌었다. 그는 추수감사절을 맞아 캘리포니아 오하이(Ojai)에 있는 집에 머물고 있었다.

미 기업지배구조 전문가 브루토코 #제왕적 CEO는 2차대전의 산물 #군대처럼 신속한 의사결정·집행 #위기 맞은 기업 제왕적 CEO 영입 #GM 등 미 자동차 회사 많이 채택 #성공하더라도 장기적 결과 안좋아 #CEO는 오케스트라 지휘자 같아 #유니레버 폴 폴먼, GM 메리 배라 등 #협업적 의사결정 포용적 리더 필요

곤이 체포됐다. 그런데 먼저 궁금한 게 있다. 곤이 당신이 말한 ‘제왕적 CEO’에 속한 사람인가.
“분명히 그는 제왕적 CEO다. 그는 90년대 후반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이 시원찮은 일본의 닛산과 프랑스 르노를 묶어 회사 규모를 4배 이상 키워냈다. 이 성공으로 그는 조직 내에서 군림했다.”
‘군림했다’는 말이 무슨 뜻인가. CEO가 기업 조직을 장악하고 이끄는 것은 당연하지 않는가.
“기자가 동아시아 지역 사람이라 군림을 당연하게 여기는 듯하다(웃음). 현대 기업은 너무 복잡하다. 한 사람이 모든 사안을 알고 올바른 결정을 하기는 불가능하다. 곤은 성공에 취해 교만에 빠졌다. 그는 임직원과 주주, 공동체 등 르노닛산을 둘러싼 이해당사자들의 의견보다 자기 의견을 중시한 인물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곤이 누구의 말을 무시했는가.
“주식회사는 인위적으로 구성한 법적 존재다. 여기엔 이사회라는 의사결정 최고 기관이 있다. 곤은 이사회를 무시했다. 임직원들의 의견이나 제안보다 자신의 믿음과 철학을 강조했다. 그 바람에 내부 반발이 거셌고, 결국 내부 고발이 이뤄진 듯하다. 이는 제왕적 CEO 몰락의 정석이다.”
리날도 브루토코

리날도 브루토코

실제 닛산의 전직 간부는 이날 중앙SUNDAY와 통화에서 “곤은 자기 주장이 아주 강한 CEO였다”며 “그가 강한 리더십으로 르노닛산 그룹을 구축하고 글로벌화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룹이 자리잡은 뒤엔 여러 의견과 정보를 듣고 합의(컨센서스)를 유도하지 못하는 그의 성향이 조직내 피로를 야기했다”고 귀띔했다.

애플, 스티브 잡스 효과 줄며 흔들려

제왕적 CEO의 탄생 조건이 궁금하다. 1980년대 규제 완화를 바탕으로 한 시장 자유화의 결과라고 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난 제왕적 CEO가 2차대전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세계 대전을 거치며 기업의 조직과 문화가 군대를 닮아갔다. 빠른 의사결정, 신속한 집행 등을 강조하는 문화 말이다. 군대 문화의 강점을 비즈니스 이론화한 곳이 어디였는지 아는가?”
모른다. 사실 난 경제학 가운데 화폐금융이론과 경제이론사를 주로 읽었다.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는 사실이다. 군대식 경영이론을 세워 널리 퍼뜨린 곳이 바로 MIT대학 슬로언비즈니스스쿨이다. 이 대학의 경영 이론가들은 군대식, 상명하복 문화, 피라미드식 조직 등을 적극적으로 옹호했다. 슬로언경영대학원 이름이 알프레드 슬로언 전 GM CEO의 이름을 딴 것인데, 그래서인지 군대식 경영이론은 자동차회사들에 의해 많이 채택됐다.”
그래서 르노가 자기주장이 강한 곤을 영입했을까.
“96년 프랑스 르노가 카리스마가 강한 곤에게 경영을 맡겨 닛산과 결합을 추진했다. 그런데 곤보다 먼저 몰락한 자동차 업계 제왕적 CEO들이 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때문에 디트로이트 자동차 3사인 GM과 포드, 크라이슬러가 사실상 파산했다. 당시 GM CEO인 리처드 왜고너 등이 모두 제왕적 경영자였다. 왜고너 등은 2000년대 초 미 자동차 산업의 개혁가로 칭송 받았다. 하지만 끝내 기업을 망하게 한 사람들로 낙인 찍혔다.”
왜 자동차 회사들이 제왕적 CEO를 선호할까.
“자동차 회사만 제왕적 CEO를 선택한 게 아니다. 미국의 GE도 잭 웰치 같은 ‘차르(Tsar)’를 영입했다. 애플도 폭군 같은 스티브 잡스를 다시 불러들였다. 제왕적 CEO가 등장하는 조건이나 상황이 따로 있다는 말이다.”
어떤 상황일까.
“한 산업의 경쟁이 치열해져 기업이 인수합병(M&A)과 구조조정(정리해고) 등을 단행해야 할 때다. 애플도 MS 기세에 눌려 파산 궁지에 몰린 90년대 후반 잡스를 다시 CEO로 삼았다. 한 기업이 정체돼 위기를 맞으면 메시아를 찾듯이 제왕적 CEO를 고대한다. 하지만 장기적인 결과는 좋지 않다.”
애플은 여전히 돈을 잘 벌고 있지 않는가.
“요즘 주가 하락을 보면 한계에 이른 듯하다. GE는 웰치가 이끌던 시기에 부활한 듯했지만, 그의 사임 이후 쇠락해 지금은 위기를 맞고 있다. 제왕적 CEO가 물러나거나 해임된 이후 회사는 마치 서로마제국 붕괴 직후와 비슷해진다. 회사가 불안과 혼돈에 빠진다는 얘기다. 곤 스캔들 이후 르노닛산도 혼란을 피할 수 없을 듯하다.”

구성원들이 소외되면 조직은 무너져

CEO 유형

CEO 유형

브루토코는 ‘제왕적 CEO의 몰락’이란 글에서 현대 기업에 가장 잘 맞는 리더는 ‘협업적 의사결정(collaborative dialogue process)’에 능한 사람이라고 했다. 임직원뿐 아니라 주주와 협력업체, 공동체 등과 대화를 잘해 합의를 잘 이끌어내는 사람이 CEO로 적절하다는 얘기다.

이해당사자 등과 대화를 잘하는 리더를 한마디로 뭐라고 불러야 할까.
“‘포용적 CEO(Inclusive CEO)’라고 부른다. 제왕적 CEO가 일방적 리더라면, 포용적 CEO는 이해당사자들과 관계(relationship)를 중시한다. 관계는 기본적으로 쌍방향이다.”
좀 더 쉽게 설명한다면.
“CEO를 오케스트라 지휘자라고 가정하면 이해하기 편하다. 지휘자는 맘에 들지 않는다고 오케스트라에서 바이올린 파트를 없앨 수 없다. 그들과 관계를 잘 만들어 최상의 화음을 연출해야 한다. ”
포용적 CEO가 매력적으로 들리기는 한다. 그런데 실제 그런 CEO가 있는가.
“난 화장품 등 소비재를 만드는 유니레버의 폴 폴먼을 예로 들고 싶다. 그는 2009년 CEO가 된 뒤 환경 보호와 회사의 성장을 연계시켰다. 수질을 악화시켜도 돈만 벌면 된다는 기존 경영전략을 버린 것이다. 이런 이상적인 경영전략을 추구하는 데도 회사는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그가 공동체의 가치를 경영에 받아들인 결과다.”
또 다른 인물이 있을까.
“GM의 여성 CEO인 메리 배라를 예로 들고 싶다. 그는 군대식이서 남성중심적인 디트로이트 자동차 업계에 최초 여성 CEO다. 그는 일방적인 명령보다 합의를 도출해 강하게 밀고 나가고 있다. 요즘 그가 합의를 바탕으로 내세운 전략이 바로 인공지능(AI) 자동차 개발이다. 그가 일방적으로 무인 자동차를 앞세우고 조직을 몰아붙이고 있는 게 아니다.”

합치고 쪼개고 … 변화 심한 세계 자동차 시장

세계 자동차 시장은 르노닛산얼라이언스가 독일 폴크스바겐, 일본 토요타와 치열한 선두경쟁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1038만대를 판매한 폴크스바겐이 1위를 차지했다. 단일브랜드로는 폴크스바겐이 620만대로 940만대를 판 토요타에 밀리지만 포르셰·벤틀리·아우디·람보르기니 등 산하 브랜드를 합치면 폴크스바겐 그룹의 판매량이 소폭 많았다. 토요타는 산하 브랜드가 프리미엄급 렉서스와 경차 전용 다이하츠 밖에 없다. 르노닛산 얼라이언스는 프랑스 르노, 일본 닛산, 인피니티, 한국 르노삼성 등의 브랜드를 갖고 있다. 2016년 일본 미쓰비시를 인수하면서 지난해 판매실적 3위에 올랐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현대기아차는 725만대를 팔아 600만대 안팎인 미국 GM·포드, 일본 혼다 등을 앞서 4위다. 세계 자동차 시장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게기로 큰 변화를 겪었다. 미국 빅3 가운데 GM은 파산 후 국유화를 거쳐 되살아나는 과정을 겪었고 크라이슬러 역시 구제금융을 받았다가 2014년 이탈리아 크라이슬러로 인수됐다.

세계 자동차 제조업체들의 관심사는 중국 시장과 전기차다. 미·중 무역분쟁 등의 영향으로 중국의 올해 자동차 판매량은 90년 이후 처음으로 감소세를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지만 3000만대에 달해 미국(1750만대)보다 훨씬 크다. 중국제일자동차그룹(FAW), 둥펑(東風), 충칭창안(重慶長安) 등 중국 국영 자동차 기업들은 글로벌 기업과의 합작 생산을 통해 급격한 외형 확대와 높은 수익을 누릴 수 있었다.

지리자동차는 올해 158만대를 판매하는 것이 목표다. 현대차보다 규모는 작지만 2010년 볼보를 인수한데 이어 올해 초에는 메르세데스-벤츠의 모기업인 다임러 그룹의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전기차 글로벌 판매 1위 업체인 비야디(BYD)는 올해 60만대 판매를 노리고 있다.

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
리날도 브루토코 UCLA 법대를 졸업한 변호사다. 기업지배구조와 기후변화 싱크탱크인 월드비즈니스아카데미 설립자 겸 대표다. 그는 어떤 기업이 적절한 지배구조를 갖추고 있는지 평가해 펀드매니저 등에게 조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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