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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펑펑 박정아, 배구 코트가 좁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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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박정아는 올 시즌 국내 선수 중 득점 1위를 달리고 있다. [화성=김상선 기자]

박정아는 올 시즌 국내 선수 중 득점 1위를 달리고 있다. [화성=김상선 기자]

"아, 또 물어보세요? 이제 정말 안 울 거에요."

여자 프로배구 도로공사 공격수 #득점 2위 … 외국인 선수 공백 메워 #리우올림픽 아픔딛고 다시 일어서

지난 7일, 여자프로배구 도로공사 날개공격수 박정아(25)는 KGC인삼공사와 경기 도중 눈물을 보였다. 다시 코트에 들어간 박정아는 스파이크를 연이어 퍼붓고 3-2 역전승을 이끌었다. 경기 뒤 수훈선수 인터뷰를 하던 박정아는 또다시 눈시울을 붉혔다. 지난해 이적하자마자 팀을 통합우승을 이끌고 MVP에 오른 뒤에도 웃기만 했던 그였다.

지난 19일 경기도 화성시 도로공사 인재개발원에서 만난 박정아는 "내 자신에게 화가 나서 울었다"고 했다. 도로공사 외국인선수 이바나 네소비치는 어깨 부상 탓에 제대로 뛰지 못했다. 그래서 박정아가 팀 공격을 이끌어야만 했다. 도로공사는 우승후보 1순위란 평이 무색하게 1라운드를 5위로 마쳤다.

박정아는 "힘들어서 운 게 아니다. 이길 수 있을 것 같은데 경기가 안 풀려 그랬다. 이바나도 아프고, 세터 (이)효희 언니, 센터 (배)유나 언니도 아팠다. 내가 해결해야 하는데 잘 안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실 나도 날 몰랐다. IBK기업은행에 있을 땐 그렇게 많이 진 적이 없었다. 난 승부욕이 강한 사람이었나보다. '어떻게 해야 우리가 이길까'란 고민을 많이 했다"고 떠올렸다.

김종민 도로공사 감독은 "지기 싫어하는 마음이 강해서 그렇다. '에이스가 울면 안 된다'고 박정아에게 말했지만 내심 기뻤다"고 했다. 박정아는 눈물을 유니폼으로 닦고 들어가 양팀 통틀어 최다인 36점을 올리며 3-2 역전승을 이끌었다.

이바나가 결국 퇴출되면서 박정아의 어깨는 더 무거워졌다. 하지만 박정아는 흔들리지 않았다. 22일 현재 득점 순위는 2위(226점). 국내 선수 중에선 1위다. 공격 점유율은 36.52%로 전체 3위다. 박정아보다 높은 점유율을 보인 선수는 어도라 어나이(45.8%, IBK기업은행·등록명 어나이)와 알레나 버그스마(37.82%, KGC인삼공사·등록명 알레나) 두 명뿐이다. 지난해 챔프전 활약으로 생긴 '클러치 박(찬스에서 강하다는 뜻)'에 이어 '갓정아(god 박정아)', '박용병'이란 별명도 생겼다. 박정아는 "과분하다"고 웃었다.

도로공사는 2라운드부터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16일 지난해 GS칼텍스에서 뛴 파튜 듀크를 영입했다. 21일 흥국생명을 꺾고 4위(5승4패, 승점14)로 한 계단 올라섰다. 선두 GS와 승점 차는 고작 3점에 불과하다. 박정아는 "파튜 언니 덕분에 부담이 줄었다. 지난해도 초반에 부진했는데 조금씩 올라갈 것"이라고 했다.

자신감과 여유도 느껴진다. 박정아는 "전보다 여유가 생겼다. 경기 중에 힘들어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동료들을 대하는 태도도 예전보다 적극적이다. 플레이가 끝난 뒤 조용히 박수치고 앞으로 나서지 않던 예전과 달리 이제는 '하나 돌리자'고 먼저 말하기도 한다. 박정아는 "선배 세터인 효희 언니에게는 '언니가 선배니까 나한테 맞춰 줘'라고 부탁한다. 어린 후배인 (이)원정이에겐 부담을 줄까봐 되도록 말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취미생활도 전투적으로 바뀌었다. 박정아의 예전 취미는 피아노였다. 비시즌엔 학원에 다니면서 배우기도 했다. 요즘엔 비디오 게임으로 바뀌었다. 박정아는 "방에서 자꾸 배구 생각만 해서 액션 게임을 시작했다"며 "300번 정도 캐릭터가 죽었다. 불에 타고, 감전되고…. 그런데 꼭 시즌 끝날 때까지 깰 생각"이라고 했다.

박정아는 국가대표로도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네이션스리그에선 김연경(엑자시바시)과 함께 공격을 이끌었다. 세계선수권 예선 5경기에선 김연경(80점)보다 더 많은 108점을 올리기도 했다. 대표팀은 아시안게임 동메달, 세계선수권 1라운드 탈락에 머물렀지만 박정아의 기량은 재평가됐다. 박정아는 "솔직히 별 감흥이 없다. 팀이 졌는데 무슨 소용이 있나"라고 했다. 그는 "세계선수권은 정말 중요했는데 충격이 컸다. 세계적인 선수들과 경기를 해 많은 경험을 쌓은 건 소득"이라고 했다.

2018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 여자 배구 태국과 준결승에서 공격을 시도하는 박정아. [뉴스1]

2018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 여자 배구 태국과 준결승에서 공격을 시도하는 박정아. [뉴스1]

사실 박정아에게 '태극마크'는 떠올리기 싫은 상처다. 2016 리우 올림픽 8강전 네덜란드와 경기에서 박정아는 서브 리시브 실수를 여러 번 저질러 패배의 원흉으로 지목됐다. 예선에서의 활약은 모두 묻히고 박정아에게 비난이 집중됐다. 쏟아지는 악성 댓글 때문에 소셜 미디어 계정도 닫아야 했다. 박정아는 "아직도 댓글을 잘 안 본다. 팬들은 사진이라도 올려달라고 하셔서 다시 하기 시작했지만… 지금도 찾아와서 욕설을 하니까 계속해야 할 지 고민된다. 사실 기사도 누가 보내주지 않으면 잘 보지 않는다"고 했다.

대표팀 차출은 선수들에게 큰 부담이다. 당장 올 시즌에도 많은 선수들이 5개월 간 일정을 소화한 뒤 힘들어하고 있다. 박정아는 "아르헨티나 원정 땐 이틀을 걸려서 이동하고 다음날 낮에 경기를 했다. 한국은 여름인데 거긴 겨울이었다. 그런데 시설이 열악해 입김이 나는 경기장에서 떨면서 경기를 했다"고 웃었다. 그는 "사실 그것도 변명이다. 힘들지만 대표팀에 가는 건 언제나 영광스럽고 좋다. 더 잘하고 싶다"며 2020년 도쿄올림픽 메달에 대한 희망을 드러냈다.

화성=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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